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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事思史] 조선 왕을 말하다 : 요약 (50)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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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호 1 면

? 정조 1년(1777) 7월 28일. 국왕의 경호를 담당하는 호위청(扈衛廳) 소속의 호위(扈衛)군관 강용휘(姜龍輝)는 전흥문을 호위군사처럼 변장시킨 후 입궐시켰다. 대궐 별감(別監) 강계창(姜繼昌)이 “왜 칼을 차고 있소”라고 묻자 전흥문은 “존현각 위에 올라가려 하는데, 접근하는 자가 있으면 찌르려는 것이오”라고 존현각(尊賢閣)은 정조의 침실이므로 정조를 암살하겠다는 뜻이었다. ? 정조는 보장문(寶章門) 동북쪽 행랑채 지붕 위에서 들리던 소리가 존현각 지붕 위에 와서 멈추는 것을 느꼈다. 위장(衛將)이 하룻밤에 다섯 교대로 순찰하던 옛 제도를 부활시키고 액예 중에서 근본이 불분명한 인물들을 교체했다. 그리고 존현각이 너무 노출돼 있다는 이유로 거처를 창덕궁(昌德宮)으로 옮겼다. ? 거처를 옮긴 닷새 후인 8월 11일, 비상계엄이 내려진 상황에서 대담하게 다시 대궐 담을 넘던 전흥문이 체포된 것이다. 정조의 친국 결과 배후가 드러났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몬 홍계희의 아들인 홍술해(洪述海)와 홍상범(洪相範) 부자였다. 정조 즉위와 동시에 몰락한 이들은 집안과 당파가 살려면 정조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수사 도중 홍상범의 사촌 홍상길(洪相吉)의 정조 암살 계획도 드러났다. ? 이들이 막무가내로 정조 암살에 나선 것은 정조 사후 노론 천하가 만들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정조 암살의 배후가 모두 노론으로 드러나자 노론은 전전긍긍했다. 이런 와중에 노론의 호재가 발생했다. 국청에서 “네가 성궁(聖躬:임금)을 모해하고서 그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려 한 것이냐?”고 묻자 홍상길이 은전군(恩全君) 이찬을 추대하기로 했다고 답변한 것이었다. 은전군 3형제는 사도세자의 서자이자 정조가 아끼는 이복동생들이었다. 백관은 만사를 제쳐 놓고 은전군의 사형만을 요구했다. 정조가 거부하자 대신들은 의금부 뜰에 은전군을 끌어내 자결을 강요했다. 은전군이 거부하자 승지에게 자진(自盡:자살)하라는 탑교를 쓰라고 명했고 정조가 아닌 대신들의 명으로 전지가 작성됐다. 노론에 포위된 정조의 정치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준 사건이었다.


? 정조 즉위 후 노론이 사실상의 임금으로 여긴 인물은 왕대비 정순왕후였다. 노론은 인목대비 유폐를 명분으로 광해군을 내쫓은 서인의 적자였다. 정조는 쿠데타의 꼬투리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정순왕후는 만족하지 않았다. 영의정 김치인 등은 “이담(상계군)은 이미 죽었지만 화근(은언군)이 그대로 있으므로 지금 역적을 느슨하게 다스려서는 안 됩니다”라고 주창했다. 하나 남은 동생을 죽이라는 요청을 정조가 거부하면서 정순왕후는 단숨에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정조는 대비의 전교가 오빠 김귀주의 죽음에 대한 사적 복수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집권 노론은 정순왕후의 이런 억지를 모른 체 공세를 계속했다. ? 정조는 극도의 인내로 정국을 파탄내지 않고 끌고 갔다. 정조는 부친을 죽음으로 몬 인물일지라도 사사로운 감정으로 처벌하지 않고 스스로 법망에 걸린 후 처벌했다. 정순왕후가 정조의 동생 은언군을 죽이기 위해 시작된 언문전교 사건은 노론 숙장(宿將) 구선복 일가를 몰락시키는 것으로 끝이 났고, 거꾸로 노론이 군부 한 축이 무너지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 정조는 재위 19년(1795) 7월 채제공과 함께 남인의 중심인물이던 공조판서(정2품) 이가환을 충주목사(정3품)로, 우부승지(정3품) 정약용을 금정찰방(金井察訪: 종6품)으로 좌천시켰다. 전 평택현감 이승훈은 예산으로 유배 보냈다. 정조실록은 ‘이때 호서(湖西: 충청도) 지방 대부분이 점점 사학(邪學: 천주교)에 물들어가고 있었는데 충주가 가장 심했으므로 특별히 이가환을 그곳의 수령으로 삼고, 또 정약용을 금정찰방으로 삼은 뒤 각각 속죄하는 실효를 거두도록 한 것이었다’라고 그 배경을 쓰고 있다. 한때 천주교도였던 전력을 씻으라는 뜻의 좌천이었다. ? 전라도 진산에서 양반 천주교도들이 부모의 신주를 불태운 사건 이후 사대부들은 대부분 천주교를 버렸으나 중인들은 계속 신앙을 고수했다.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를 밀입국시켰던 최인길·윤유일·지황 등 중인 신자들이 정조 19년 5월 포도청에서 장사(杖死)한 사건이 발생하자 노론에서 ‘조정 내 남인들이 배후’라는 식으로 공격해 정조는 남인들을 일시 퇴진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좌천에 그친 것만도 정조의 보호와 배려가 작용한 것이었다.


?남인들의 복귀 시기를 모색하던 정조는 재위 21년(1797) 4월 이가환(李家煥)을 도총부 도총관으로 특배(特配: 임금이 직접 임명함)하고, 6월에는 정약용을 승정원 부승지로 등용해 남인들에 대한 신임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노론의 집요한 공세에 지쳤던 이가환·정약용 등은 정계 복귀에 부정적이었다. 이들은 논란 많은 정계를 떠나 고향에 은거하고 싶어 했다. 또한 새로운 나라에 대한 이상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이를 실현할 실력까지 갖춘 남인들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취임을 거부하는 이가환에게는 유배를 명했다가 다시 명을 받들라는 식으로 취임시켰고, 정약용은 황해도 곡산부사로 임명했다. 물론 여기에는 노론의 강한 반발이 있었다.


? 재위 24년(1800) 5월 30일 정조는 오회연교(五晦筵敎: 오월 그믐날 경연의 교시)라 불리는 중대 발언을 통해 정국을 긴장에 빠뜨렸다. 무엇보다 정조가 오회연교에서 ‘모년의 의리(사도세자 사건)’를 거론한 것은 노론 벽파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정조는 이들이 반성하고 옳은 길을 걷지 않으면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정조는 조만간 중대한 인사이동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재상 후보는 남인 이가환이었고, 정약용도 중용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 최근 공개된 어찰에서 정조는 심환지에게 “뱃속의 화기(火氣)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를 놓고 일부 학자가 정조의 유언인 것처럼 해석했지만 이는 특정 당파의 자리에서 역사를 바라본 아전인수에 불과하다. 6월 14일자 정조실록은 정조의 병이 종기라고 말하고 있다. 정조 자신도 ‘가슴의 화기’가 더 큰 병인(病因)인 것처럼 말한다. 실제로 6월 15일 어의 백성일(白成一)은 정조의 진단에 동의했다. 6월 16일 정조는 “이 증세는 가슴의 해묵은 화병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서 그 책임을 조정의 행태에 돌렸다. ? 정조는 조만간 자신의 생각을 행동에 옮길지도 모른다고 시사했다. 이런 상황에서 6월 15일 거의 다 나았다던 정조의 병세는 계속 악화되었다. 노론 벽파에서 작성한 정조실록은 정조 치료의 진상이 모호하게 기록되어 있다. 정조는 6월 27일에는 “혹시 백성들의 일에 관한 사항이 있으면 비록 이런 상황이라도 자주 여쭈어 조치하도록 하라”고 명하는데 이때가 사망 하루 전이었다. 6월 28일 정조실록은 ‘정조가 영춘헌(迎春軒)에 거동해 신하들을 접견했다’면서도 “이때 상의 병세가 이미 위독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서로 모순된 상황을 적고 있다. 같은 날 정조실록은 “주상이 무슨 분부가 있는 것 같아 자세히 들어보니 ‘수정전(壽靜殿)’ 세 자였는데 수정전은 왕대비가 거처하는 곳이다. 마침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므로 신하들이 큰 소리로 신들이 들어왔다고 아뢰었으나 상은 대답이 없었다(6월 28일)”라고 적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순왕후가 직접 약을 받들어 올리고 싶다면서 모든 신하를 밖으로 물리쳤다. 그렇게 방 안에는 위독한 상태의 정조와 정순왕후만 있는 가운데 잠시 후 정순왕후가 통곡으로 정조가 세상을 떠났다고 알렸다. 정조의 임종을 지킨 유일한 인물은 정조의 최대 정적인 정순왕후 김씨였다. ? 정조의 승하는 정조의 최대 정적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의 전면 부활을 의미했다. 정순왕후는 만 10세의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했다. 그러면서 정조의 즉위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몰락했던 친정을 부활시키고 심환지를 영의정으로 승진시키고 노론 벽파에게 전권을 주었다. 정조가 죽자마자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는 그의 24년 치세를 되돌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개혁군주 정조는 세상을 떠났고 그 빈자리를 노론 벽파가 채우면서 조선은 다시 24년 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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