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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EU 떠난 영국, 신고립주의 방아쇠 당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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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설립된 이래 유럽의 ‘통합 기관차’는 정차할지언정 후진한 적은 없다. 그러나 23일 세계 5위이자 유럽연합(EU)에선 독일에 이은 경제대국인 영국이 EU에서 탈퇴하겠다는 결정을 했다. 영국이 ECSC의 후신이자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3년 만에 발을 빼기로 한 것이다.

52% 찬성으로 43년 만에 탈퇴…유럽 대통합 종언
소외 저소득층에 반이민·자국우선주의 주장 먹혀
프랑스 르펜, 네덜란드 빌더르스 “우리도 국민투표”

이날 국민투표에서 유권자의 51.9%가 브렉시트에 찬성했다. 개표 전 열세란 전망을 뒤집었다.

이로써 EU로 대표되는 ‘대통합시대’에도 종언을 고하게 됐다. 영국의 탈퇴가 영국만의 탈퇴로 머물지 않을 공산이 커서다. 당장 각각 프랑스와 네덜란드 극우정당 당수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과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국민투표를 요구했다. 이들은 “영국이 유럽에 해방과 민주주의를 위한 길을 제시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이탈리아에서도 힘을 키워 가던 반EU정당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사실 영국은 EU 국가들 중에선 경제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EEC 가입 후 경제성적표도 여느 국가보다 나았다. 그럼에도 EU를 박차고 나왔다. 개방보단 새로운 고립을, 다자보단 자국우선주의를 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극심한 분열·양극화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전통·보수적인 지방이 코즈모폴리턴적이며 자유분방한 도시를 이겼다. 특히 저소득 근로자들이 몰린 잉글랜드 북동부 벨트에서 탈퇴 의견이 강했다. 그간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계층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기성 체제를 집단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경제적 위험성 경고 보다 반이민·주권·국가정체성에 더 끌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물론이고 영국은행(BOE)과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제도도 강한 반감을 피력했다.

탈퇴 진영의 지젤라 스튜어트 노동당 의원은 "기득권층의 위협에도 사람들이 겁을 먹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이민은 구실이고 진정한 이유는 웨스트민스터(정치권) 엘리트에 대한 봉기”라고 해석한 이도 있다.

영국은 이제 “아무도 걷지 않은 미지의 길”(BBC)로 들어가게 됐다. 잔류 운동을 이끌었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이날 사퇴 의사를 밝혔다. 10월 보수당 내에서 다음 총리가 선출될 때까지 총리직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그러곤 “새 리더십이 협상을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EU 탈퇴를 원하는 국가가 탈퇴 의사를 밝히는 리스본조약 50조를 언제 발동할지는 차기 총리의 몫으로 넘겼다. 일단 발동하면 2년 안에 회원국들과 협상을 마쳐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탈퇴 진영 내에서도 EU 탈퇴 후 모델에 대한 합의나 계획이 없다. 당장 스코틀랜드가 EU 잔류를 위해 독립 투표를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연합왕국으로서 영국 해체 위기이기도 한 셈이다. 이 때문에 “브렉시트로 EU가 약해지겠지만 영국민들이 가장 무거운 부담을 지게 될 것”(우도 불만 EU 의회 의원·독일)이란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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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는 24일 스코틀랜드에 있는 본인 소유 골프장을 찾아 “영국인들이 나라를 되찾았다. 아주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국경을 넘어오는 것에 전 세계인이 화 났다.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도 브렉시트와 같은 맥락”이라며 “미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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