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석·제기·부장품…전시로 보는 조선왕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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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의 장례를 기록한 ‘철종국장도감의궤’ 중의 행렬 장면 ‘반차도(班次圖)’.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나이 칠십(여든)에 능참봉’이라 했다. 늙은 나이에 겨우 벼슬 하나 얻었더니 ‘한 달에 거둥(임금의 나들이)이 스물아홉 번’이란다. 바쁘기만 하고 실속이 없음을 빗댄 속담이다. 능참봉은 조선시대 종9품의 말단 벼슬이었다. 조선왕릉 관리 실무책임자였다.

오늘부터 국립고궁박물관서
태조 건원릉 내부 VR로 체험도

하지만 속담과 달리 능참봉은 제법 센 자리였다. 왕과 왕비의 무덤인 능에 소속된 전답(田畓)과 나무 등 주요 재산을 출납할 권한이 있었다. 과거시험을 안 보고도 임용될 수 있었기에 관직에 진출하려는 사족(士族)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조선은 왕릉의 나라다. 2009년 조선왕릉 40기(북한 소재 2기는 제외)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왕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했기에 조성부터 관리까지 엄격한 절차를 밟았다. 예컨대 왕이나 왕비가 세상을 뜨면 장례 준비를 위한 임시관청인 도감(都監)이 설치됐다.

도감도 종류가 많았다. 관(棺)을 왕릉에 모시는 국장도감, 빈소를 차리고 상복을 준비하는 빈전도감, 능을 조성하는 산릉도감 등등. 발인(發靷)부터 부묘(?廟·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일)까지 대략 27개월이 걸렸으며, 70개가 넘는 절차가 진행됐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무슨 허례(虛禮)냐고 볼멘소리가 나올 만도 하지만 그게 유교국가 조선의 예법이자 통치원리였다.

조선왕릉의 ‘거의 모든 것’을 살펴보는 ‘조선왕릉, 왕실의 영혼을 담다’ 전시가 21일부터 8월 28일까지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다. 전시장 초입 왕릉을 지키는 문인석·무인성 모형이 관객을 맞는다. 건축·조경·예술·제도·의례 등 조선문화의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왕릉 관련 유물 200여 점이 나왔다. 조선기록문화의 꽃인 의궤(儀軌)부터 무덤에 넣었던 부장품(副葬品)까지 관련 문화재를 망라했다.

고궁박물관 박수희 연구사는 “역대 통치자의 무덤이 이처럼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다”며 “조선왕릉을 주제로 한 최초의 대규모 전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을 위한 ‘서비스 기획’도 눈에 띈다. 왕릉 조성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재연했고, 태조 건원릉을 가상현실(VR) 기술로 둘러보는 체험코너도 마련했다. 관객이 마치 왕이 된듯한 느낌으로 재실(齋室·제수를 준비하는 장소)부터 봉분(封墳·왕이 잠든 곳)까지 왕릉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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