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안철수의 사과, 박지원의 엄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안효성 기자 중앙일보 기자
기사 이미지

안효성
정치국제부문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엉뚱한 사실을 고발했고, 상당히 강압적인 조사를 한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 문제는 한번 따져야겠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2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박선숙·김수민 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데 대해 문답을 하던 중이었다. 검찰에도 한마디 했다. 그는 “안철수 대표가 검찰총장도 아니고 당 대표이기 때문에 검찰이 수사를 공정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38석으로 ‘캐스팅보트’를 쥔 제3당 원내대표가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한 발언치곤 너무 노골적이다. “따져봐야겠다” 같은 표현은 엄포다. 박 원내대표는 다른 방송에서도 “선관위에서 다소 무리한 수가 있었다. 검찰 수사도 굉장히 주시하고 있다” “박선숙 의원은 비리에 관여될 분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저 개인적으로 보증한다”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20일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의 안철수 공동대표(왼쪽)와 박지원 원내대표. [뉴시스]

국민의당에는 박 원내대표처럼 이번 사건을 이미 무죄로 단정한 의원이 많다. 당 소속 박주선 국회부의장은 15일 “모함성 투서 내지는 모함성 고발을 했다면 엄중한 문책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엄연히 공익신고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현행법에 어긋나는 발언이다. 다른 의원들도 “업체 간 계약인데 무슨 문제냐. 국민의당으로 들어온 돈이 없는데”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과연 그럴까.

이번 사건은 전액 국고로 보전하는 선거비용 집행 과정에서 불거진 리베이트 의혹이다. 사적인 거래가 아니라 국민 혈세를 제대로 썼는지가 초점이다. 이미 드러난 것만 해도 국민의당은 보통사람들의 눈높이를 한참 벗어나 있다.

직접 계약서 한 장 쓰지 않고 비례대표 7번인 김수민 의원 회사에 2억3820만원의 일감을 몰아줬다. 선거 홍보 경험이 없는 김 의원의 회사는 당의 TV광고를 기획·제작했다가 ‘애플 광고’를 표절했다는 지적이 나와 폐기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광고대행사는 계약서도 쓰지 않고 국고보전 비용에서 6000만원짜리 체크카드를 만들어 국민의당 홍보를 도운 카피라이터에 전달했다 등.

4·13 총선에서 636만 명(26.74%)의 국민은 창당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국민의당에 표를 줬다. 그 이유를 안철수 대표는 이날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국민의당에 과분한 지지를 보내주신 건 기성정치 관행을 뛰어넘어 새로운 정치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임을 잘 알고 있다”고 정확하게 짚어냈다.

그런 국민에게 박지원 원내대표나 박주선 국회부의장은 20년 전 낡은 정당이 했던 방식으로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검찰이나 선관위를 협박하는 건 ‘갑질 중의 갑질’이다. 국민의당에도 손해다. 박 원내대표의 엄포는 안 대표의 대국민사과를 무색하게 했다.

안 효 성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