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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다양성 외화 시장 신흥 강자 ② 그린나래 미디어 유현택 대표 - 감정선이 섬세하게 살아있는 영화에 끌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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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외화 수입·배급사 그린나래 미디어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다양성 외화 시장의 큰손으로 성장했다. 2012년 레아 세이두 주연의 ‘시스터’(위르실라 메이에 감독)로 첫발을 뗀 이 회사는 ‘러스트 앤 본’(2012, 자크 오디아르 감독) ‘프란시스 하’(2012, 노아 바움백 감독) ‘꾸뻬씨의 행복여행’(2014, 피터 첼섬 감독) 등을 흥행시켰다. 이 회사의 필모그래피에는 ‘스틸 앨리스’(2014, 리처드 글랫저·워시 웨스트모어랜드 감독,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폭스캐처’(2014, 베넷 밀러 감독, 제67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감독상) ‘디판’(2015, 자크 오디아르·에포닌 모멘큐 감독, 제68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등 주요 영화제 수상작들도 즐비하다. 이쯤 되면, 이 회사의 영화 고르는 안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린나래 미디어의 유현택(40) 대표는 “(영화 수입을) 하면 할수록, 대중의 취향을 더욱 모르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엄살이다. 그가 지난 5월 열린 제69회 칸영화제에서 챙겨 온 보따리에는 예술영화 관객의 구미를 당길 만한 화제작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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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라희찬(STUDIO 7060]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작품인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을 칸영화제 개막 전에 선(先)구매했다고.
“‘디판’ ‘유스’(1월 7일 개봉,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 ‘라우더 댄 밤즈’(2015, 요아킴 트리에 감독)처럼 선구매한 영화가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패터슨’도 그런 경우다. 프랑스 칸에 가서야 ‘물건’을 직접 봤는데, 다행히 퀄리티가 좋았다. 영화전문지 ‘스크린 데일리’의 평점도 높았다. 대본만 보고 선구매한 작품을 영화제에서 확인할 땐 늘 긴장된다. 성적표를 받는 느낌이다.”

-‘패터슨’의 어떤 점에 매료됐나.
“올해 2월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세일즈 부스에서 시나리오를 읽었다. 버스 운전하며 시를 쓰는 주인공(애덤 드라이버)의 일상을 담았는데, 너무 밋밋해서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에 빠져들게 됐고, 마지막엔 펑펑 울었다. 대본을 읽다가 운 건 ‘스틸 앨리스’ 이후 두 번째다. 소소한 일상에서 대단한 감동을 끌어내더라. 돈은 못 벌 것 같지만, 꼭 사고 싶었다.”

-칸영화제의 또 다른 화제작 ‘토니 에드만’(마렌 아데 감독)도 구매했는데.
“무명 감독과 무명 배우의 영화였지만, ‘스크린 데일리’에서 높은 평점을 받으며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냉소적이고 일밖에 모르는 딸(산드라 휠러)의 마음을 돌려놓으려는 아버지(피터 시모니슈에크)의 이야기를 쉽고 따뜻하게 풀었다. 국내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고 판단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구매했다. 진흙 속 진주를 발견한 기분이다. 높은 평점에도 불구하고 상을 받지 못한 두 영화의 한(恨)을 한국 관객이 풀어 줬으면 좋겠다(웃음).”

-칸영화제 필름 마켓에서 또 어떤 작품들을 구매했나.
“가장 뜨거운 작품이었던 ‘원더스트럭’을 따냈다. 브라이언 셀즈닉의 아동 소설 원작을 ‘캐롤’(2월 4일 개봉)의 토드 헤인즈 감독이 연출하다 보니, 현재 촬영 중임에도 불구하고 10여 개 회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대본을 봤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캐롤’만큼 아름다운 영화가 나올 것 같다.”

-올해 칸영화제에서의 수확이 쏠쏠한 것 같다.
“‘원더스트럭’과 곧 제작에 들어가는 ‘원더’(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의 경우 우리가 욕심내기에는 꽤 비싼 영화였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확신 때문에 충동구매했다. 그런 결단이 필요한 때가 있다.”

-언제부터 그런 과감한 베팅을 했나.
“2013년 11월 아메리칸필름마켓(AFM) 때부터다.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구매를 통해 작품을 확보해야 했다. 그때 ‘스틸 앨리스’ ‘내일을 위한 시간’(2014, 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 감독) ‘지미스 홀’(2014, 켄 로치 감독) ‘미스 줄리’(2014, 리브 울만 감독)를 샀다. ‘스틸 앨리스’의 경우 판권 가격이 회사의 첫 작품 ‘시스터’의 10배나 됐지만 과감하게 질렀다. 운도 따랐다. ‘내일을 위한 시간’과 ‘지미스 홀’은 이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스틸 앨리스’는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칸에서 구매한 ‘폭스캐처’가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고, ‘프란시스 하’까지 흥행 대박을 치면서 회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반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디판’은 흥행에 실패했다.
“그렇게 처참하게 외면당할 줄은 몰랐다. 우리가 수입한 영화는 아니지만, ‘나의 어머니’(2015, 난니 모레티 감독)도 관객이 1만 명에 불과했다. 이런 예술영화들이 외면당하는 시장 변화에 충격받았다. 하지만 전통적인 예술영화가 외면받는다고 해서 시장의 파이가 작아지는 건 아니라고 본다. ‘이웃집에 신이 산다’(2015, 자코 반 도마엘 감독) ‘더 랍스터’(2015,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흥행을 보며, 다양한 콘텐트로 시장을 넓혀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국내 관객은 새로운 것, 혁신적인 것에 반응하는 듯하다.”

-수입한 영화 대부분이 캐릭터의 감정선이 세밀한 작품들인 것 같다.
“영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캐릭터들이 이끌어 가고, 감정선이 섬세하게 살아 있는 영화를 택하게 된다. ‘본 투 비 블루’(6월 9일 개봉, 로버트 뷔드로 감독)의 경우 쳇 베이커(에단 호크)의 내밀한 감정이 그의 망가진 삶 속에 잘 녹아 있다. ‘폭스캐처’ 또한 남성적인 영화지만 톤은 굉장히 섬세하다.”

-가장 애착 가는 캐릭터를 꼽는다면.
“‘프란시스 하’의 주인공 프란시스(그레타 거윅)다. 평범한 20대 후반의 여자지만, 다들 나의 이야기 같다고 느낄 만큼 공감대가 넓은 캐릭터다. 그린나래 미디어의 이름을 널리 알린 캐릭터라는 점에서 애착이 간다.”


-작품 구매에 ‘팬심’이 작용하기도 하나.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마리옹 코티아르가 출연한 영화 두 편(러스트 앤 본·내일을 위한 시간)을 수입했는데, 그를 만난 적은 없지만 이미 만난 것 같은 친숙함이 느껴진다. ‘시스터’에 출연한 레아 세이두는 첫사랑 같은 배우다. 팬으로서 그의 영화를 또 수입하고 싶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과는 두 편의 영화를 함께하며 신뢰 관계가 형성됐다.”

-꼭 사고 싶던 영화를 다른 수입사에 넘겨 줘야 했던, 씁쓸한 경험도 많지 않나.
“늘 있는 일이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아이, 다니엘 블레이크’(켄 로치 감독)와 경쟁 부문에 진출한 ‘언노운 걸’(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 감독)이 최근 사례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는 지금도 내내 아쉽다. 칸영화제 마켓 시사에서 그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다. 너무나 탐이 났지만 사지 못했던 영화였기에, 그 이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잘 안 본다.”

-어떻게 영화 수입업에 발을 들여놓게 됐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영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화(홍보)사 어느 곳도 받아 주는 데가 없었다. 외국계 기업에서 잠깐 일하다, 영화 수입 일을 오래 한 외삼촌 밑에서 경력을 쌓았다. 한 해 동안 해외 출장을 열 번씩 나가며 단기간에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다. 12년간 유럽을 안방처럼 드나들면서도 프랑스 파리에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 외삼촌에게 배운 빠듯한 업무 스타일이 몸에 뱄기 때문이다. 2010년 회사를 창립했는데, 회사명은 ‘그림을 그린 듯이 아름다운 날개’란 뜻이다.”


그린나래 미디어 하반기 주요 라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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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더 라잇 비트윈 오션스` 스틸컷]

더 라잇 비트윈 오션스(The Light Between Oceans)

데릭 시엔프랜스 감독│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레이첼 와이즈│연말 개봉
등대지기 부부(마이클 패스벤더·알리시아 비칸데르)가 파도에 떠내려온 보트에서 아기를 발견하고 몰래 키우지만, 아이에게 친엄마(레이첼 와이즈)가 있음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M L 스테드먼의 베스트셀러 소설 『바다 사이 등대』가 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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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패터슨` 스틸컷]

패터슨(Paterson)

짐 자무쉬 감독│애덤 드라이버, 카라 헤이워드, 스털링 제린스│가을 개봉
섬세한 스토리와 스타일리시한 연출력을 인정받는 짐 자무쉬 감독의 신작. 올해 칸영화제에서 ‘아름다운 시와 같은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미국 뉴욕에서 19㎞ 떨어진 도시 패터슨에서 시를 쓰며 살아가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애덤 드라이버) 부부의 일주일을 그리며 일상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해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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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세기 여인들` 포스터]

20세기 여인들(20th Century Women)

마이크 밀스 감독│앨리아 쇼캣, 엘르 패닝, 아네트 베닝│12월 개봉
‘비기너스’(2010)로 재능을 인정받은 마이크 밀스 감독의 컴백작. 아네트 베닝, 그레타 거윅, 엘르 패닝 등 세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펑크가 유행하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세 여인과 그들의 애인이자 아들인 두 남자의 성장담을 감각적이고 세련된 영상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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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사진 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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