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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대박 검사장'에 뚫린 재산검증시스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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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체 넥슨 비상장주식을 사들여 120억 원대 시세차익을 올린 진경준 검사장의 주식 매입 대금을 넥슨이 대준 것으로 확인되면서 검찰 수사가 본격화했다. 검찰이 과연 진 검사장의 넥슨 주식 매입에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할지 유착 주목되고 있다. 문제는 진 검사장이 주식 매입 후 11년 간 검증이 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진 검사장이 주식 매입 자금을 거짓으로 해명하는 등 의혹이 커지자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진 검사장은 주식 매입 자금에 관해 “개인 자금”이라고 말했다가 공직자윤리위원회 조사에서 “내 돈과 장모에게서 빌린 돈”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거짓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넥슨에서 4억2500만 원을 빌려 주식 1만주를 매입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그는 넥슨에 이자를 내지 않았고 차용증도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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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뇌물죄 등을 적용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공소시효가 이미 만료됐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진 검사장이 넥슨 주식을 매입한 시점(2005년 6월)으로 따지면 공소시효 10년(2007년 법 개정 후로는 15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검찰이 별도의 추가 혐의를 찾아내지 못하는 한 형사처벌은 어렵게 된다. 그렇다면 11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공직자윤리위원회와 법무부, 검찰이 진 검사장의 수상한 돈 거래를 걸러내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① 수상한 돈 거래, 연말까지 갚으면 드러나지 않는다.
주식 매입 당시 평검사였던 진 검사장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 등록(신고) 대상이었다. 평검사는 재산 내역을 대검에, 부장검사 이상은 공직자윤리위에 신고하게 돼 있다. 그러나 매해 12월 말을 기준으로 보유 재산을 신고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부적절한 자금 거래를 할 경우도 연말까지 갚으면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 결과 넥슨 주식 매입 자금 차입 사실은 2005년 말 진 검사장의 재산 신고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② 이원화된 신고 시스템으로 크로스 체크 안 된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부장검사 이상이 공직자윤리위에 재산 신고를 하면 검찰 쪽에선 해당 재산 내역을 파악할 수 없다. 공직자윤리법의 비밀엄수 조항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재산공개 대상인 검사장이 될 때까지는 부장·차장검사 재산 내역을 파악하기 어렵다. 진 검사장이 넥슨 주식을 1만주나 갖고 있었음에도 금융 분야 사정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에 배치될 수 있었던 이유라는 것이다.


③ 주식백지신탁위, 제대로 심사했는지도 의문이다.

인사혁신처 산하 주식백지신탁위는 진 검사장 주식의 직무관련성을 제대로 심사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해 2월 재산공개 대상자가 된 진 검사장은 한 달 뒤 신탁위에 넥슨재팬 주식에 대한 직무관련성 심사를 청구했다. 당시 심사에 참여했던 신탁위 관계자는 중앙일보 기자에게 “보유주식 금액이 상당히 큰데도 예외 대상이라고 해서 직무관련성을 다져보지 않는 건 우려스럽다는 일부 의견이 있었다. 현행법을 따라가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공직자윤리법은 외국 상법과의 충돌 우려 등을 감안해 ‘국내 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외국기업 주식’은 백지신탁 심사의 예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는 “넥슨재팬이 매출액 상당 부분을 국내에서 올리고 있는 점을 고려해 심사대상으로 올렸고, 심사 결과 ‘직무관련성 없음’으로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인사혁신처 해명이 사실이라고 해도 당시 강도 높게 심사했다면 과연 같은 결정을 했을지 의문이다.

④ 공직자윤리위의 비공개주의가 의혹 가림막 역할
공직자윤리위가 위법 혐의의 단서를 잡고도 수사 요청 없이 징계만 요구한 것이 대표적 문제다. 윤리위는 지난 4월초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진 검사장에 대한 재산 검증 작업을 벌인 뒤 “일부 사실과 다른 소명이 있었다”며 법무부에 징계를 요구했다. 당시 윤리위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다. “명확한 비공개 규정이 있지는 않지만 공직자윤리법 13조, 14조 취지를 고려해 사유를 비공개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해당 조항들은 재산등록사항을 목적 외 용도로 이용하거나 업무 관련자들이 재산등록사항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두 조문 모두 재산등록사항에 관한 것으로 진 검사장의 경우처럼 거짓 소명에 따른 징계 사유를 공개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진 검사장의 ‘주식 대박’ 의혹은 비단 시스템의 문제만은 아니다. 관련 기관들이 적극적인 의지를 가졌다면 사전에 걸러낼 수 있었다. 그랬다면 진 검사장 사건이 시민들에게 깊은 허탈감을 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2, 제3의 ‘주식 대박’ 공직자가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지금도 수상한 돈 거래를 하고, 가져선 안 될 주식을 받고, 부(富)와 귀(貴)를 함께 탐하는 공직자가 없지 않을 것이란 서글픈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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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윤리법 제1조는 ‘공익과 사익의 이해충돌을 방지하여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가져야 할 공직자의 윤리를 확립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멍 난 재산검증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확고한 검증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재산등록 제도도, 공직자윤리법도 값비싼 장식품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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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윤리위는 조사 내용을 제한적으로 공개할 뿐 아니라 위원장·부위원장 외에 위원들도 비공개로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비공개주의는 윤리위가 공직자들의 내밀한 재산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조사 과정에서 나온 내용들이 통제 과정 없이 외부로 흘러나온다면 해당 공직자의 명예는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 정보는 생명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그 비밀은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공직자 재산 등록·공개 제도는 공직 사회의 깨끗한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지나친 비공개주의는 공직자들의 탈법적 재산 불리기를 은폐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공인(公人)으로 사회적 검증의 대상이 되는 공직자는 일반 시민들에 비해 프라이버시 보호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