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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에디터의 FRONT ROW] 풍만한 몸이 아름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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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왼쪽부터 기원전 2만5000년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상, 유명 패션 매거진의 표지 모델로 활약 중인 모델 타라 린. 하단 왼쪽부터 근육질의 건강한 몸을 자랑하는 이종격투기 UFC 챔피언 론다 로우지, 글래머 모델로 이름난 캔디스 허핀.

프랑스, 저체중 모델 쓰거나 사진 보정 감추면 벌금
엘르 표지모델 애슐리 그레이엄, H&M 타라 린 등
건강하고 육감적인 ‘커비 모델’ 패션업계서 약진

세상의 모든 미디어가 비추는 여성의 몸이란 하나같이 완벽하고도 비현실적으로 날씬합니다. 어떤 경우엔 저리 말라서 밥은 먹고 있는 건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많은 여성은 그들을 보면서 오늘도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또 결심합니다. 여성들의 몸매를 규정한 데에는 패션계가 적지 않은 책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패션쇼 캣워크 위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깡마른 소녀 모델이 즐비하고 럭셔리한 광고 속 완벽한 몸매의 모델들 역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사실 해외 패션계에는 이런 걱정스러운 상황에 대해 각성을 요구하는 시도가 수년 전부터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프랑스에서는 거식증이나 식이장애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마른 모델들을 선호하는 패션계의 관행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난해 12월 프랑스 정부는 일명 ‘스키니 모델’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법안의 내용은 모든 모델은 비정상적 저체중이 아닌 건강한 상태라는 것을 증명하는 의사의 소견서가 있어야만 프랑스 내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절차를 어기고 모델을 고용하는 패션 브랜드나 매거진이 있다면 최고 징역 6개월 혹은 7만5000유로(약 980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됩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프랑스 내의 모든 매거진과 광고 캠페인 제작 시 모델 사진을 보정했다면 보정한 이미지라는 것을 사진 안에 필수적으로 명시해야 합니다. 이를 어기면 최고 3만7500유로(약 4900만원)의 벌금 혹은 총 광고비의 30%를 벌금으로 내야 합니다. 이 법안은 2017년 1월부터 시행된다고 합니다. 꽤나 강도가 센 법안이지요?

프랑스와 비슷하게 2007년에 미국 패션협회인 CFDA는 ‘헬스 이니셔티브’ 가이드라인을 내놓았고, 2012년 미국 모델협회와 손잡고 그보다 심화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패션계에 경각심을 촉구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뉴욕 출신 패션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는 스스로 16세 이하의 모델들은 고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자신의 패션쇼에 서는 모든 모델의 신체질량지수(BMI)를 확인하겠다고도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고 대다수 패션 브랜드와 모델 에이전시, 패션 매거진들은 아직도 마르고 날씬한 모델을 쓰고 싶어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 이어 건강하고 육감적인 모델들이 약진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커비(curvy) 모델’ 혹은 ‘빅모델’ 혹은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이 점점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라는 용어보다는 ‘커비 모델’이라는 이름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플러스란 것 자체가 이미 기준을 더 작은 쪽에 두고 있기 때문이죠. 그보다는 마른 몸, 작은 몸, 긴 몸, 둥그런 몸 등 형태의 다양성에 초점을 둔 용어인 ‘커비’, 즉 ‘굴곡이 있는 몸’으로 부르는 게 더 옳다고 생각됩니다.

아무튼 이 ‘굴곡 있어서 아름다운’ 몸매의 소유자들이 서서히 대중의 눈에 또 다른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애슐리 그레이엄(Ashley Graham)입니다. ‘포브스’가 꼽은 ‘30세 이하의 톱 피플 3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그레이엄은 란제리 브랜드 모델로 이름을 알렸고, 현재는 ‘긍정 몸 운동가’(body-positive activist)라고 불립니다. 그는 테드(TED) 강연회를 비롯 여러 자리에서 몸의 사이즈는 미의 기준이 될 수 없고, 건강을 정의하는 척도가 될 수도 없다고 말해왔습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스몰 사이즈도 엑스트라 라지 사이즈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운동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우리 스스로에게 아름다움의 기준을 강요할 수 없다고, 나의 건강과 나의 아름다움은 스스로 정의하고 지켜나가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열정적으로 주장하는 그레이엄은 이미 ‘엘르’ ‘코스모폴리탄’ ‘얼루어’ ‘맥심’등 유명 패션 매거진의 러브콜을 받아 당당히 표지 모델이 됐습니다.

그다음엔 론다 로우지(Ronda Rousey)가 있습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름을 기억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종격투기 UFC 챔피언이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에는 여자 70kg급 유도에서 동메달을 따기도 한 스포츠 스타입니다. 요즘에는 페미니스트 혹은 ‘긍정몸’의 대변인으로 불립니다. 지금도 이종격투기 선수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그는 최근 매거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스윔수츠’ ‘맥심’등의 표지를 장식하며 건강한 몸매를 과시했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소녀 시절 근육질 몸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야채만 먹는 지독한 다이어트를 하면서 수년을 지내기도 했으나 지금 로우지는 “커서야 알았다. 그때 나를 놀렸던 사람들은 다 바보였고, 나는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너무 멋지다고 생각한다”라며 70kg의 몸매에 대한 당당한 자신감을 드러냅니다. 그 외에도 란제리 모델로 활동하다가 최근 ‘보그’ ‘엘르’ ‘V’ ‘타임’ 매거진 등에 표지 모델이 되면서 패션계의 라이징 스타가 된 타라 린(Tara Lynn)도 그중 하나입니다. 늘 완벽한 몸매의 슈퍼모델만을 기용해 온 패션 브랜드 H&M은 올해 광고 캠페인 모델로 린을 낙점했습니다.

인간의 몸에 대한 아름다움의 기준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꽤 자주 변해왔습니다. 특히 여자 몸의 아름다움은 주식시장의 지수만큼이나 자주 그 기준이 오르락내리락한 게 사실입니다. 두꺼운 미술사 책의 첫 장을 자주 장식하는, 기원전 2만5000년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상만 봐도 풍만한 몸매가 그 시대 인류의 아름다움과 숭배의 기준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시대 아프로디테 상과 이후 인상파 화가들의 유화에서 발견하는 여성의 누드도 풍만했고, 20세기 중반에는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와 허벅지를 가진 여배우들이 미의 아이콘이었습니다. 80년대 슈퍼모델 신디 크로퍼드, 나오미 캠벨 역시 제일 작은 사이즈를 입을 몸은 아니었죠.

하지만 유독 최근 수년간의 패션 트렌드는 불가능할 정도로 마른 몸매를 선호했습니다. 패션계를 리드하는 파리나 뉴욕뿐 아니라 한국 K팝의 소녀 아이돌 역시 대체로 건강함보다는 깡마르고 비현실적인 몸매를 보여줍니다. 이런 와중에 일어나고 있는 작지만 큰 움직임, 사이즈를 초월해서 아름다운 모델의 등장은 특히 한여름의 노출을 앞두고 있는 요즈음 더욱 반갑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어느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나만의 행복한 아름다움을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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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론트 로(front row)는 패션쇼 맨 앞줄을 뜻합니다. 패션 매거진 편집장이나 셀레브리티 등 패션계 주요 인사들만이 프론트 로에 앉을 수 있습니다. 프론트 로에서 관찰한 패션, 스타일, 트렌드와 여기에 담긴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재미있는 수다로 풀어냅니다.

줄리아 에디터는 패션 매거진 ‘엘르(ELLE)’ 강주연 편집담당의 별명이다. 강 편집담당은 런던 패션칼리지에서 공부했으며, 제일모직 여성복 디자이너, 패션 매거진 ‘하퍼스 바자’ 패션 디렉터 등을 지냈다. 엘르 편집장을 거쳐 현재 엘르 편집담당 이사와 제이콘텐트리 영상제작실장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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