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선물 왕국이다. 보통 1000엔, 비싸도 5000엔 규모를 넘지 않는다. 그러니 선물이 빈번하게 오간다. 민원인이 관청에 들어가 공무원에게 공공연하게 선물을 건네도 이상할 게 없다. 선물이 선물 이외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누구든 서로 인사치레로 주고받는 사회적 윤활유가 된다. 이런 문화에선 뇌물이 발 붙일 틈이 없다. 반면 한국에선 선물의 얼굴을 한 뇌물이 많다. 대가를 바라고 건네는 금품이 음성적으로 오가고 접대성 향응도 뿌리가 깊다. 이렇게 연(緣)을 맺은 갑과 을은 공생관계가 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 스티글러가 설명한 ‘포획이론’의 골자다. 이렇게 되면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해져 창의적 신규 사업자가 있어도 시장 진입이 차단되고 기존 사업자는 독점적 이익을 누린다.
석 달여 후인 9월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을 계기로 이런 관행은 고리가 끊기느냐 마느냐의 시험대에 서게 된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적용 대상자는 직무와 관련이 없어도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원 또는 1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해선 형사처벌을 받는다. 직무와 관련이 있으면 이 기준 이하도 징계 대상이다. 다만 시행령은 음식물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이하는 예외로 허용하기로 했다. 일상에서 이뤄지는 사회적 교제를 어찌 막겠느냐는 취지에서다.
김영란법은 배우자에게도 적용된다. 그래서 대상자가 거의 500만 명에 달한다. 중앙과 지방의 행정기관과 유관단체, 국공립·사립 학교와 언론 종사자가 그들이다. 국회의원과 시민단체는 ‘공익적 목적의 민원을 전달해야 한다’는 이유로 법 적용에서 제외됐다.
첫째 논란은 여기서 나오고 있다. 국회가 빠졌는데 민간 언론사와 사립학교를 대상에 포함시키는 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으므로 헌법재판소가 법 취지에 따라 판단할 일이다.
둘째 논란은 경제 이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소비가 위축될 것이라는 농·축·수산업과 화훼업 종사자의 주장이다. 한우협회는 김영란법이 ‘수입쇠고기 소비장려법’이라고 반발하고, 과일농가는 고가 과일바구니 판매 타격을 우려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대로 되면 우리 경제를 너무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풀 죽은 경제가 더욱 힘을 잃게 될 거란 걱정이다.
이런 우려에 여론은 콧방귀를 뀐다. 오히려 “김영란법이 ‘뇌물제공법’이냐”며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법의 공식 명칭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인데,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연간 최고 300만원 한도까지 금품을 받는 건 괜찮냐는 것이다. 하지만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게 현실인 한국 사회에서 직무 관련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공직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김영란법 도입은 이런 구조에서 구시대적 관행을 끊으려면 혁명적 계기가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라고 봐야 한다.
그래도 거부감이 있다면 김영란법을 더치페이법이라고 보면 된다. 선진국에선 갑·을 사이에 밥을 먹어도 직장 동료와 어울려도 더치페이가 상식이다. 청탁과 향응이 끼어들 틈이 없다. 싱가포르는 부패가 만연했지만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하면서 강력한 부패 척결 정책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은 6만 달러에 육박한다. 청렴성이 높은 국가는 하나같이 국민소득이 높다. 뇌물로 인한 사회적 비용보다 투명성에 따른 경제적 효율이 더 크다는 방증이다.
사실 요즘 공직사회는 많이 맑아졌다. 연금이 든든하고 고용불안도 없으니 그렇게 됐을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도 김영란법이 시행돼도 선물 수요는 많아야 0.86%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다면 김영란법이 공공기관의 신뢰회복 이외에 한국 경제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쓰지만 좋은 약(藥)이 될 것이라는 데 한 표를 던지고 싶다. 투명성이 높아져 경제 효율이 올라갈 것이란 얘기다. 다만 교통 단속에 예외 없듯 국회의원이 예외가 돼서는 안 된다. 국회의원 특권법으로 전락하지 않고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현실에서 나타날 온갖 문제점은 합리적으로 고쳐나가면 될 일이다.
김 동 호
논설위원·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