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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다양성 외화 시장 신흥 강자 ① 오드 김시내 대표 - 현실 감각 100% 예술 영화계의 용감한 승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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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최근 관객 수 30만 명을 돌파하며 다양성 영화 극장가에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나의 소녀시대’(원제 我的少女時代, 5월 11일 개봉, 프랭키 첸 감독). 이 영화를 수입·배급한 이는 오드(AUD) 김시내 대표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헝거’(3월 17일 개봉), 레오 카락스 감독의 ‘홀리 모터스’ 등 작품성 뛰어난 유럽 영화들을 주로 선보여 온 그가 예상치 못한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이모(배우 김부선)를 보면서 영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멋지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김 대표가 업계에 뛰어든 지 10년 남짓. 오드라는 이름으로 직접 회사를 운영한 지는 만 4년 됐다. 그간 인물들의 수화로 이뤄진 ‘트라이브’(미로슬라브 슬라보슈비츠키 감독)나 권력에 맞서는 아버지의 싸움을 그린 ‘리바이어던’(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 등을 개봉시키며 업계에서 ‘용감하다’는 평까지 들었다. 김 대표를 만나 좋은 영화를 고르는 그만의 감식안, 예술영화 시장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청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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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라희찬(STUDIO 706)]

-지금까지의 라인업을 보면 명랑한 청춘영화 ‘나의 소녀시대’는 조금 튀는 선택인데.
“대만 청춘영화를 워낙 좋아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원제 那些年, 我們一起追的女孩, 2011, 구파도 감독)도 구매를 시도했던 영화다. ‘나의 소녀시대’는 지난해 대만·홍콩·싱가포르 등에서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을 무렵, 싱가포르에 사는 친구가 ‘딱 네 취향’이라며 제보해 줬다. 관심을 갖고 있다가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본 후 마음을 굳혔다. 경쟁이 나름 치열했는데 제작사와 끈질기게 접촉했다. 지난해 12월 말일에 계약이 극적으로 마무리되어 올해를 기분 좋게 시작했다.”

-결국 회사의 최고 흥행작이 됐다.
“평범한 여주인공의 로맨스, 학창 시절의 추억을 그린 영화라는 소구점이 분명했다. 마케팅 포인트로 ‘첫사랑’을 내세우고, 대만에서 흥행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점을 강조해 너무 작은 영화처럼 보이지 않게 한 것이 주효했다. 물론 영화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지만, 내가 기대한 최다 관객 수 15만 명을 크게 웃도는 흥행이라 놀랐다.”

-제69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경쟁 부문 상영작 ‘언노운 걸’(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 감독)은 이미 지난해 계약했다고.
“예술영화 수입사치고 다르덴 형제 감독 영화를 안 좋아하는 곳이 없다. 지난해 칸영화제 마켓에서 시나리오를 읽고 구매했다. 평범한 주인공이 누군가에게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선택을 강요하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스타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라는 점도 좋았다.”

-올해 칸영화제 마켓에서 구매한 영화는.
“‘더 킬링 오브 어 새크리드 디어(The Killing of a Sacred Deer)’라고, ‘더 랍스터’(2015)를 연출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신작이다. 아직은 시나리오만 나온 상태다. 그리스의 유명한 비극 시를 바탕으로 란티모스 감독이 살을 붙였다. 의료 사고를 낸 의사와 그 때문에 아버지를 잃은 10대 소년 사이의 이야기다. 한번 함께 일했던 회사와는 꾸준히 관계를 이어 가려는 편이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3, 존 말루프·찰리 시스켈 감독)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 빔 벤더스 감독)으로 인연을 맺은 영국 세일즈 회사 한웨이 필름스(HanWay Films)를 통해 구입했다.”

-그 밖에도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궁금하다.
‘트라이브’와 ‘리바이어던’ 개봉 때는 업계에서 ‘용감한 회사’라는 평이 자자했다. “업계 프런티어를 지향하는 건 절대 아닌데, 이것 참(웃음). 취향에 대해 묻는 거라면, 정말 잘 모르겠다. 철학적인 주제에 끌리는가 싶다가도 ‘나의 소녀시대’ 같은 영화도 사랑하니까. 다만 분수는 지키려고 한다. 내가 끌리는 영화를 고르되 욕심나더라도 가격이 10만 달러 이상이면 포기한다. 외부 투자를 받아 운영하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수익은 못 내도 빚은 지지 말자는 게 나름의 원칙이다. 마켓에서 소위 ‘핫’한 영화에도 크게 신경 쓰지 말자는 주의다. 호러·SF·스릴러는 관심 밖이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 것 같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수입·배급했다. “사람의 인생이 다큐 아닌가. 비현실적인 이야기에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평범한 듯 비범한 스토리가 담긴 인물 다큐를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도 ‘다큐멘터리 3일’(2007~, KBS2)이다. 단, 인물의 불행한 면만 집요하게 들추는 방식의 다큐는 좋아하지 않는다. 만드는 사람의 의도가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회가 된다면 꾸준히 좋은 다큐를 선보이고 싶다. 흑인 남성 누드, 동성애 등을 주제로 도발적인 사진을 찍었던 미국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1946~89)의 생애를 다룬 ‘메이플소프:룩 앳 더 픽처스(Mapplethorpe:Look at the Pictures, 펜톤 베일리·랜디 바바토 감독)도 최근 계약했다.”

-영화 정보를 누구보다 발 빠르게 수집해야 할 텐데.
“천성이 게을러서 부지런히 영화관에 가거나 인맥 쌓는 것엔 취약하다. 그 대신 누워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한다(웃음). 하루에 한두 시간은 반드시 업계 동향을 파악한다. 예전에는 잡지를 주로 봤는데, 요즘은 BBC나 인디와이어(Indiewire) 등에서 제공하는 팟캐스트를 듣는다.”

-최근 재미있게 본 개봉작은 뭔가.
“‘주토피아’(2월 17일 개봉, 바이런 하워드·리치 무어 감독)를 정말 재밌게 봤다. 내가 관객이어도 ‘트라이브’나 ‘헝거’ 같은 영화 말고 이런 영화 보겠구나 싶더라. 주제의식도 좋다.”


-뜻밖이다. 할리우드 직배사 영화는 극장가에서 가장 힘든 싸움 상대 아닌가.

“요즘에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보이후드’(2014,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웨스 앤더슨 감독) 같은 영화를 만들기도 하잖나. 영화 자체의 사이즈도 그렇고 마케팅 규모에서 당연히 군소 수입사들이 사오는 예술영화와 경쟁이 안 된다. 예술영화 시장은 정말 작다. 내가 그 안에 있다고 해서 그게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순간 일이 더 어려워진다. ‘어떻게든 보물을 찾아내겠다’는 마음가짐과 ‘전체 영화 시장의 10%가 될까 말까 하는 작은 시장에서 선보일 좋은 영화를 고르겠다’는 다짐은 차이가 크다. 이러한 현실 감각을 지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예술영화의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거창하게는 잘 모르겠다. 다만 바라는 건 있다. 다양한 영화를 본다는 건 ‘세상의 다양한 가치를 인정할 수 있도록 감수성을 넓힌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적어도 퀴어 예술영화 보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만난 동성애 커플에 무조건적 반감을 드러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명품 브랜드 홍보 마케터 출신이라는 이력이 독특하다.
“하다 보니 나와는 다른 세계 일 같아서 그만뒀다. 알음알음으로 영화 수입사에서 맡긴 자료 번역이나 해외 마켓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더 적성에 맞고 즐겁더라. ‘시네마 밸리’라는 영화 수입사에 들어가 해외 업무를 담당했고, 이후 지금 회사를 차렸다.”

-회사 이름은 왜 오드로 지었나.
“‘오디언스(Audi-ence·관객)’에서 따왔다. 처음 홀로서기할 때 헤어스타일이 오드리 토투와 비슷해 친구들 사이에서 ‘오드’로 불렸던 것도 한몫했다(웃음).”

-오드라는 이름으로 꼭 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고향이 제주도다. 제주에 작은 상영관을 하나 열어서 1년 내내 수입해 온 영화를 틀고 싶다. 이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길게 내다보는 꿈이다. 회사 규모는 확장할 생각이 없다. 조직이 커지면 다양한 시도가 어렵다. 시작하던 때처럼 직원 한 명 없이 나 혼자 집에 노트북 한 대, 팩스 한 대 놓고 일하는 한이 있어도 그건 지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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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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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나의 소녀시대`,`홀리 모터스` 포스터]

2016'나의 소녀시대', '헝거'
2015'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재개봉)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리바이어던', '트라이브'
2014'동경가족', '몽상가들'(재개봉)
2013'홀리 모터스'
"한국 개봉은 힘들 것 같다, 너무 난해하다 등의 우려도 많았다. '난 좋으니까 해 보지 뭐' 하는 마음으로 덤볐다. 수는 적지만 나와 취향이 통하는 관객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 영화다."


AUD 하반기 주요 라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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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매기스 플랜` 스틸컷]

매기스 플랜(Maggie’s Plan)

레베카 밀러 감독│에단 호크, 줄리앤 무어, 그레타 거윅│여름 개봉
뉴요커 매기(그레타 거윅)는 애인의 전부인이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는 걸 깨닫고 두 사람을 다시 이어 주려 한다. 기상천외한 삼각관계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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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테일 오브 테일즈` 스틸컷]

테일 오브 테일즈(Tale of Tales)

마테오 가로네 감독│셀마 헤이엑, 뱅상 카셀, 스테이시 마│여름 개봉
이탈리아 나폴리의 시인 잠바티스타 바실레가 수집한 유명 동화들에 영감받아 만든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신작. 아름답고 괴기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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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언노운 걸` 스틸컷]

언노운 걸(The Unknown Girl)

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 감독│아델 하에넬│연말 개봉
의사 제니(아델 하에넬)는 병원 문을 두드리는 소녀의 목소리를 무시한다. 소녀는 변사체로 발견되고, 제니는 그의 정체를 알아내려 애쓴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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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그린나래 미디어 유현택 대표 - 감정선이 섬세하게 살아있는 영화에 끌린다
③ 엣나인필름 정상진 대표 - 세상을 흔드는 영화라면 무조건 덤빈다



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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