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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직무유기가 ‘균열 일터’의 재앙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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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철근 기자 중앙일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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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근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그늘 한 점 없는 전봇대에 올라 2만2900V의 고압선을 직접 만져야 한다. 고무장갑을 꼈다지만 잠시라도 방심했다간 순식간에 장기가 타 들어갈 수 있다. 오늘도 무사히 내려가 가족들과 만나길 빌 뿐이다. 낡은 고압전선을 교체하는 한국전력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일상이다. 이들은 매일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전봇대에 오른다. 한전이 2001년 이른바 ‘활선(活線)’ 방식으로 작업 방식을 바꾸면서 일이 훨씬 위험해졌기 때문이다.

예전엔 대체전선을 따로 연결해 전기가 흐르지 않게 한 뒤 전선을 교체했다. 그런데 작업 중에도 전기가 흐르는 활선 방식으로 변경했다. 공사 중 정전을 하지 않아도 되고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지난 10년간 한전의 송배전 공사 중 감전사고로 549명이 죽거나 다쳤다. 노동자들에겐 활선(活線)이 아니라 사선(死線) 방식이 된 셈이다. 배전노동자들은 활선 방식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전은 활선 방식을 가급적 쓰지 말라는 공문을 하청업체에 내려보낸 것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전국 477개에 달하는 중소 하청업체들은 여전히 활선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전국건설노조는 “한전이 하청단가를 올려주면 모를까, 낮은 하청단가에 맞추려면 하청업체는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노동정책을 설계한 데이비드 와일 노동부 종신행정관은 현재의 노동시장을 ‘균열 일터(Fissured Workplace)’라고 정의했다. 겉으로는 한 직장에서 일하는 것 같지만 직원들은 정규직과 사내하청·사외하청·일용직 등 신분에 따라 갈가리 쪼개진다는 것이다.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해 도입된 균열 일터에서 위험은 대개 하청업체에 전가된다. 미국의 거대 통신업체 AT&T에서 잇따라 발생한 기지국 철탑 보수공사 하청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대표적 사례다. 이 회사 현장에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숨진 노동자만 11명이나 됐다. 안전관리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긴 AT&T는 직업안전보건국의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후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진정성은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본질적 문제를 풀기 위한 제도 개선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19대 국회 때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최악인 산재를 줄이기 위한 법률안이 제출돼 있었다.

정부는 원청업체가 안전조치를 취해야 하는 사업장을 모든 작업장으로 확대하는 등 안전의무를 크게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냈다. 심상정 의원은 2013년 7월 원청 사업주의 산업재해 예방의무를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해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의 불산 유출사고 등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숨지는 산재가 잇따른 것이 계기였다. 이인영 의원도 2014년 세월호 참사 후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는 직접 고용토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러나 3개 법안은 19대 국회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국회 속기록을 뒤져봐도 진지하게 논의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심상정 의원과 이인영 의원은 20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같은 취지의 법률안을 발의했다. 만약 이번 국회마저 직무를 유기한다면 ‘균열 일터’로 인한 재앙은 더 커질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VIP 안전모를 쓰고 사고현장을 찾는 요식행위가 아니다. 원청업체의 책임 회피를 통제하기 위한 제도를 하루빨리 마련하는 일이다.

올해 한국전력의 영업이익은 역대 최대인 13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연말엔 주주들을 위한 배당잔치, 정규직 임직원을 위한 보너스 잔치를 벌일 것이다. 담합한 갑(甲)들에게 목숨을 걸고 전봇대에 올라야 하는 을(乙)의 열악한 현실은 ‘크레바스’ 저편의 딴 세상 이야기다. 어차피 사고가 나도 을들끼리 알아서 책임을 뒤집어쓸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는 탐욕적인 자본이 만든 야만적인 제도다. 효율을 가장했지만 약자의 희생을 담보로 한 착취에 가깝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사회가 손실을 떠안는 모순된 구조다. 이를 방치해 놓고 일류 기업과 선진 국가를 지향할 수 있을까.

정 철 근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