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벼랑 끝에서 겨우 이뤄낸 ‘국회 원 구성 합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벼랑 끝까지 갔던 20대 국회의 원 구성 문제가 어제 겨우 타결됐다. 여야 3당은 전례 없이 빠른 합의를 이뤄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장단 선출일은 7일(15조), 상임위원장단 선출은 9일 이전(41조)으로 규정돼 있다. 어제 합의로 의장단 선출은 이틀, 상임위원장 선출은 나흘 늦어졌으니 이번에도 ‘위법 국회’의 불명예는 씻지 못했다.

입법부가 초법부(超法部)나 무법부(無法部)가 아닌 이상 협상 정치를 한다며 법정 기일을 우습게 여기는 관행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그나마 역대 원 구성 사상 가장 빠른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새누리당이 집권당이라는 이유로 국회의장을 맡아야 한다는 아집을 부리다 여론이 받쳐주지 않자 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장을 강력하게 희망했던 친박의 실세이자 원로인 서청원 의원이 이날 “8선인 내가 미련을 버리고 물꼬를 터주겠다”는 결심을 밝히면서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서 의원의 선택은 개인적으로 쉽지 않았겠지만 올바른 결정이었다. 청와대를 비롯한 집권세력 내부에선 임기 후반기, 여소야대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친박이 당과 입법부를 장악해야 한다는 무리한 주장을 해왔다. 서청원 의원이 계속 고집을 피웠다면 수의 힘에서 야당에 밀리고 명분에서 ‘친박이 다 말아먹는다’는 따가운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결국 시간만 잡아먹은 채 의장도 못 되고 명예도 잃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뻔했다. 그런 점에서 서청원 의원은 적절한 시점에 국회의 최고 어른다운 현명한 판단을 했다. 친박의 다른 실세 정치인들도 시대의 변화와 힘의 한계를 깨닫고 양보 정치의 덕을 보여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원내 1당(123석)의 자격으로 국회의장을 가져가게 됐지만 제2당보다 1석 많을 뿐이며 제3당인 국민의당의 절대적 협조가 있어야 국회 운영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입법부의 수장을 배출한 수권정당으로서 의회권력 행사에 절제가 있어야 한다. 자중자애해야 한다. 함부로 휘두르는 칼은 국민의 반감만 사며 정권교체의 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