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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 여론 팽팽 … 브렉시트, EU 해체 도화선 될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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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호 14면

브렉시트를 상징하는 잉글랜드 깃발(왼쪽)과 EU 잔류를 의미하는 EU 깃발(오른쪽)을 묘사한 꽃 장식.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23일 실시된다. [AP=뉴시스]

유럽연합(EU) 잔류냐 탈퇴냐. 영국에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는 오는 23일 오후 10시(GMT·한국시간 24일 오전 7시) 종료된다. 최종 개표 결과는 맨체스터 타운홀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투표율과 상관없이 단순히 한 표라도 많이 얻은 쪽이 승리한다.


게임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결과가 가져올 파장은 엄청나게 클 수 있다. 브렉시트 땐 유럽의 정치·경제 지형도가 급변하고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들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퐁텐블로의 인세아드(Insead) 국제경영대학 더글러스 웨버 정치학 교수는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 기고문에서 “브렉시트는 EU의 해체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웨버 교수는 “원심력이 강해져 다른 회원국들도 잇따라 탈퇴를 결정할 수 있다”며 “유로화와 단일시장이 무너질 수도 있으며 EU 내에서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찬반 여론은 그야말로 팽팽하다. 한 치 앞도 예상하기 힘든 대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ICM의 온라인 조사(5월 31일 공개)에서 브렉시트 찬성이 47%로 반대 44%보다 앞섰다. 일주일 전엔 찬반이 같았다. 그사이 찬성이 3%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이 업체의 전화조사에서도 찬성(45%)이 반대(42%)보다 높았다. ICM은 전체적으로 찬성이 52%, 반대가 48%라고 밝혔다. 유고브·BMG·ORB 온라인 조사 결과도 찬반이 맞서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블룸버그가 여론조사들을 자체 취합한 결과에 따르면 잔류가 3~4%포인트 높았으며 BBC의 경우 반대로 탈퇴가 1%포인트 많았다.


지난해 EU 출신 순이민자 수가 전년보다 1만 명 증가한 18만4000명으로 추정됐다는 통계가 최근 발표된 이후 반이민을 주장하는 탈퇴 진영의 지지율이 약간 올라가고 있는 추세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이민 억제를 위해 EU 탈퇴를 선택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호소했다. 여론조사전문가 린턴 크로스비는 “EU 잔류 지지가 떨어졌지만, 잔류 진영이 여전히 우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U 탈퇴를 주장하는 ‘보트 리브(Vote Leave)’는 영국독립당(UKIP)이 주도한다. 반(反)EU와 반이민을 내세우고 있는 UKIP는 2014년 유럽의회선거에서 보수당과 노동당을 제치고 승리해 돌풍을 일으켰으며, 지난해 5월 총선에서도 13%를 득표했다.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 등 집권 보수당 각료 5명과 보수당 의원 절반가량, 일부 노동당 의원이 동조한다.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도 가담하고 있다.


이들은 영국이 1975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67%의 지지로 잔류를 선택한 이후 영국이 EU에 실권을 내줘 주권을 상실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EU가 영국 경제에 너무 많은 규제를 가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심지어 환경, 교통, 소비자 권리, 휴대전화 충전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에서조차 간섭이 너무 심하다고 주장한다. EU를 상징하는 ‘이동의 자유’와 ‘유럽합중국’ 건설을 위한 ‘보다 긴밀한 연합(ever closer union)’에 반대한다. 국경통제권을 다시 영국으로 완전히 되찾아 오고 노동이민자 수를 감축시키려 한다. 다수의 중소기업은 이번 기회에 EU의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환영한다.


반면 영국이 EU에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럽 안에서의 더 강한 영국(Britain Stronger in Europe)’ 진영은 캐머런 영국 총리가 주도한다. 캐머런 총리의 보수당은 원칙적으로 국민투표 캠페인에서 중립을 지키기로 했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캐머런 총리와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 등 보수당 정권의 각료 16명이 잔류를 원한다. 제1야당인 노동당과 스코틀랜드국민당(SNP), 웨일스민족당, 자유민주당도 영국은 EU 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당수는 2일 “협력과 연대의 유럽”에 투표해줄 것을 호소하며 캐머런을 지원했다.


EU 28개국을 이끌고 있는 쌍두마차인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영국의 잔류를 바라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일 “영국이 EU의 근간으로 남기를 희망하고 소원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2일 영국의 EU 잔류를 희망했다. 대기업들도 주로 잔류를 선호한다. BT그룹의 마이크 레이크 회장은 “다른 신뢰할 만한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영국 내에서는 찬반이 비등하지만 브렉시트가 영국과 국제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 일요판 ‘옵서버’에 따르면 영국 경제학자 88%는 향후 5년간 국내총생산(GDP)을 감소시키는 등 영국 경제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EU 잔류 진영은 ‘일자리 상실’ 우려를 집중 부각하고 있다. 오즈번 재무장관은 3일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영국 서비스 산업에서 2년 내 일자리가 40만 개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탈퇴 찬성 측은 유권자들에게 영국이 EU를 떠나더라도 일자리는 안정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는 “영국이 EU를 떠나면 우리는 영국 내 비즈니스 모델을 조정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는 상황을 맞게 될지 모른다”며 “브렉시트는 JP모건에 영국 내 일자리 축소와 EU 내 일자리 확대를 뜻할 수 있다”고 말했다. JP 모건 측은 영국 내 일자리 1만6000개 중 4000개를 줄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일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보고서에서 2030년 영국 GDP가 잔류 때와 비교해 5% 적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 브렉시트는 영국 경제 전반에 걸친 불확실성으로 이어질 것이며, 금융시장의 급변동이 촉발된다면 불확실성은 더욱 고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영국 내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등의 분리주의자들을 또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브렉시트가 통과되면 다시 독립을 추진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북아일랜드에서도 아일랜드와의 재통합을 묻는 국민투표 가능성이 거론된다. 현재 북아일랜드 의회의 제1당은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추구하는 민주연방당(DUP)으로, 영국의 EU 탈퇴 운동을 지지하고 있다.


국민투표 후 캐머런 총리의 진퇴도 주목된다. 현재 집권 보수당은 찬반으로 정확히 갈라져 있다. 3명의 보수당 의원은 총리 불신임안 투표를 공개 거론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캐머런이 총리직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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