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말고도 위대한 복서…무하마드 알리, 사망

중앙일보

입력 2016.06.04 15:16

업데이트 2016.06.0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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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문 출판사 `타셴`이 사진집에 담은 무하마드 알리의 전성기 때 모습.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사망했습니다. 1942년 생인 알리의 나이는 올해 74세입니다.

ESPN을 비롯한 외신 보도에 따르면 알리는 생명보조 장치에 의존해 병상에서 가족들이 지키고 있는 가운데 숨을 거뒀습니다. 무하마드 알리의 대변인인 밥 건넬은 “세계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3차례 거머쥐었던 복싱 챔피언은 무하마드 알리는 파킨슨 병과 32년 동안 싸움을 벌여오다 오늘 밤 우리를 떠났다”고 발표했습니다.

날렵한 몸매, 앞뒤를 가리지 않고 말을 쏘아대는 ‘떠벌이’, 이슬람교도이자 베트남전 참전을 거부한 정치적 소신 등 주먹 말고도 그를 스타로 만든 요소는 많습니다.

22세였던 1964년, 당시 헤비급 세계 챔피언 소니 리스턴과의 일전을 앞두고 그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라고 말했고, 경기에서 꼭 그렇게 했습니다. 빠른 발놀림으로 상대를 혼란케하는 ‘알리 스텝’은 지금도 복싱 선수들 사이에서 일종의 교본으로 자리잡아 있습니다.

그의 본명은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입니다. 인종 차별에 시달리다가 이슬람으로 개종한 후 1975년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바꿨지요.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적 센터 카림 압둘 자바와 비슷한 케이스입니다.

클레이는 미국에서도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 켄터키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8세에 아마추어 선수로 180승을 올리며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걸고 금의환향했지만 고향의 인종차별은 여전했지요. 햄버거를 먹으러 간 레스토랑에서 “깜둥이한테는 음식 안 판다”는 말을 듣고 그는 오하이오 강물에 금메달을 내던집니다.

내가 로마에서 가졌던 ‘미국을 대표한다’는 환상은 그때 사라졌습니다. 나는 흑인으로서 멸시받는 고향에 와 있었던 겁니다.”

알리는 위대한 복서이면서 민권운동가, 반전운동가였습니다. 1965년부터 1967년 사이에 아홉 차례나 타이틀 방어전에 성공하면서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그에게 미국 정부는 베트남전 징집을 요구했습니다. 알리에 앞서 미국의 1950년대 대중문화 아이콘이었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서독으로 2년 간 파병나갔던 일과 비슷한 요구였죠.

1967년 4월 28일 알리는 징병위원회로부터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거부했습니다. 그는 “베트남에 아무 원한이 없다. 흑인 인권마저 보장해 주지 않는 미국이 무엇을 위해 전쟁을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미 전역을 돌아다니며 흑인 민권운동에 활발히 참여했습니다.

대가는 냉혹했습니다. 선수자격 박탈과 챔피언 타이틀 박탈, 출국금지, 경제적 파산…. 3년 5개월의 투쟁 끝에 무죄선고를 받긴 했지만 이미 알리는 은퇴를 고려해야 할 나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1971년 3월8일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벌어진 조 프레이저와의 재기전에서 그는 패배했습니다. 전 세계 35개 국에 생중계된 경기에서 그가 패하자 사람들은 ‘이제 알리의 시대도 끝난 것 아니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알리는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습니다. 생애 첫 번째 패배였지만 좌절하지 않았고, 3년 후 다시 링에 올라 결국 프레이저를 이겼습니다.

1974년 선수로서는 황혼기인 32세 나이에 그는 당시 WBA(세계권투연맹)ㆍWBC(세계권투평의회) 헤비급 통합 챔피언 조지 포먼과 맞붙습니다. 아프리카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샤에서 둘은 세기의 결전을 벌입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포먼과 이슬람 교도인 알리의 결전은 충분한 화젯거리였습니다(포먼은 이후 목사로 변신합니다).

25세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포먼은 무쇠주먹을 휘두르며 40전 전승에 37KO승을 기록하고 있었죠. 반면 알리는 본연의 스텝이 무너졌고 스피드가 예전 같지 않은 32세 노장이었습니다.

강력한 펀치로 KO 승리를 노린 포먼은 마음이 급했고 그가 휘두르는 펀치는 교묘하게 알리를 빗나갔습니다. 8라운드에 이르자 줄곧 링에 기대 방어 자세를 취하던 알리는 날아오는 포먼의 주먹을 피하며 턱에 카운터 펀치를 날렸습니다. 연이은 좌우 스트레이트. 휘청거리던 포먼이 링에 쓰러졌고 끝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킨샤샤의 기적’이라 불리는 역대급 일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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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포먼(왼쪽)의 턱에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리는 무하마드 알리. [중앙포토]

통산 56승 5패, 그의 최종 전적입니다.

알리는 선수 은퇴 3년 후인 1984년 파킨슨병을 진단받았고, 이후 30여년 간 투병 생활을 이어왔습니다. 오랜 투병 생활 중에도 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최종 성화 봉송자로 나서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파킨슨병 증상으로 손을 떨면서도 꿋꿋이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그의 모습에 전 세계인이 감동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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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최종 성화봉송자로 등장했던 알리.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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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영웅 무하마드 알리가 별세했다. 향년 74세.

1999년 영국 BBC와 미국 스포츠저널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알리를 ‘20세기의 스포츠맨’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의 장례식은 고향인 루이빌에서 엄수될 예정입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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