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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셀린 디옹 배출한 대회서 극찬…“중1 때 K팝에 빠져 노래한 덕분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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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사람 속으로 ‘유로비전 송’ 준우승 임다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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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임다미씨가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를 부르고 있다. [사진 소니뮤직]

지난달 14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2016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42개 유럽방송연맹(EBU) 회원국의 대표 가수들이 경연을 펼치는 이 콘테스트 무대에 한 동양인 여성이 올랐다.

검은색 긴 머리에 흰 드레스를 입은 그가 무대 한가운데서 노래를 시작하자 홀 안에 있던 수천 명의 관객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3분 남짓 동안 그의 파워풀한 가창력과 허스키한 고음에 압도된 관중은 마지막 소절이 끝나고 나서야 환호했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호주 대표로 참가한 한국계 임다미(28)씨다. 그는 참가곡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Sound of Silence)’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외신들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고, 국내에도 그의 활약상이 전해졌다. 임씨는 대회 직후 “나는 단지 한국에서 온 평범한 이민자 출신의 사람이다. 하지만 앞으로 내 음악과 영향력으로 세상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달 25일 호주에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녀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서 쾌활하고 통통 튀는 에너지가 전해졌다.

| 9살 때 호주로 가 대학선 피아노 전공
성악전공 엄마 “넌 타고난 목청 아니다”

한국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알려지지 않았다.
“올해로 61회째인 이 대회는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이자 행사다. 전 세계 시청자가 2억 명 정도다. 인기 그룹 아바(ABBA)나 가수 셀린 디옹도 이 대회 출신이다. 큰 기대 없이 참가했다가 결승까지 올라 결승 2주 전부턴 잠도 거의 못 자고 연습했다.”
대회 후에 더 바쁘겠다.
“방송과 인터뷰 등 많은 일정 때문에 정신이 없다. 오는 7~12월에 열릴 호주 전국 투어 콘서트를 위한 연습도 병행하고 있다. 어제는 현재 살고 있는 브리즈번 로건시티 의 시장님이 주민들과 축하 파티를 열어줘 함께 했다.”
호주엔 언제 이민을 갔나.
“서울 영등포에서 태어나 이후 인천에서 살았다. 아홉 살 되던 해 제조업 회사에 다니던 아버지가 지방으로 발령났는데, 부모님은 상의 끝에 내가 지방보다 호주에서 공부하는 게 좋겠다고 결정했다. 그해 어머니·남동생과 브리즈번에 왔고, 아버지는 ‘기러기 아빠’로 한국에 남았다.”
어릴 적부터 가수를 꿈꿨나.
“사실 스스로 노래를 잘 못한다고 생각했다. 연세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도 ‘넌 타고난 목청은 아니다’라고 하셨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 피아니스트를 꿈꿨다. 호주에 온 지 얼마 안 돼 영어도 못하고 친구도 없었을 때 우연히 학교에서 피아노를 쳤는데 아이들이 그때부터 나를 다른 눈으로 보더라. 그 뒤로 더 열심히 피아노를 쳤다.”
노래를 시작한 것은 언제인가.
“중학교 1학년 때쯤 K팝에 빠졌다. 가수 보아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정말 재밌는 거다. 이후 컴퓨터에 녹음 프로그램을 깔고 내 노래를 들어봤는데, 웬걸. 너무 못 불러 충격에 빠졌다. 이후 고3이 될 때까지 틈날 때마다 녹음하며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대학 전공은 부모님의 권유로 피아노를 선택했다.”

 
| 혼자 작사·작곡해 음반 내고 활동
2013년 ‘호주판 슈퍼스타K’서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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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다미씨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아직도 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피아노 강사로 일하던 2013년, 예상치 않았던 기회가 찾아왔다. 호주판 ‘슈퍼스타K’로 불리는 ‘엑스 팩터(X- Factor)’에 출연한 것이다. 처음엔 시큰둥했던 심사위원들은 그가 머라이어 캐리의 ‘히어로(Hero)’를 부르자 파워풀한 가창력을 극찬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그녀는 이후 호주 음악 차트 아리아에서 1위에 올랐다.

엑스 팩터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는 앞서 2011년 CCM(기독교 음악) 앨범인 ‘드림(Dream)’을 내고 한국과 호주에서 활동한 바 있다. 임씨는 “혼자 작사·작곡·녹음해 만든 첫 음반이어서 순수한 열정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호주 가수의 가장 큰 차이는 뭔가.
“한국에선 주로 기획사가 특정 콘셉트에 맞는 가수를 만든다면 호주나 유럽에선 가수가 능동적으로 원하는 음악을 선택해 활동하는 편이다.”
한국에선 아이돌 시장이 뜨겁다. 아이돌을 꿈꾼 적은 없나.
“K팝의 저력을 보면 감탄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외모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웃음). 사실 그보다 시키는 대로 할 자신이 없다. 아이돌은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도 활동하고 싶다. 지난해 MBC 예능 ‘복면가왕’에 ‘자유로 여신상’으로 출연했는데 굉장히 즐거웠다.”

| “기회가 되면 자라난 한국서 활동
노래로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싶어”

이민자로 살면서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다.
“가끔 인종차별을 겪기도 했지만 호주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은 나를 응원해 줬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아직도 하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문화 속에서 자랐고, 한국을 사랑한다. 하지만 학창시절 호주 시민권을 취득했고, 호주를 대표해 큰 대회에 나갔다. 가끔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 같은 때가 있다.”

그는 3년 전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호주에 온 남편을 한인 교회에서 처음 보고 오랫동안 짝사랑했다고 한다. “처음에 남편은 저한테 관심이 없었대요. 남편이 군 복무를 마칠 때까지도 변함없던 제 사랑을 보고는 마음이 움직였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제 가장 큰 팬이에요.”

인터뷰 말미에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묻자 그는 확고한 목소리로 답했다. “제 사명은 노래로 좋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주고 위로할 수 있는 소통을 하고 싶어요.”

[S BOX] “보아 노래 들으면 아직도 설레, 첫사랑 같은 존재”

“첫사랑 같은 존재랄까요. 아직도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설레서 잠이 안 올 때가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가수를 묻자 임다미씨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가수 보아를 꼽았다. 가수의 꿈을 꾸게 된 것도 보아의 노래를 들으면서였다. 사춘기 시절 낯선 나라에서 듣는 그녀의 노래는 큰 위안이 됐다. “깨끗한 음색에다 무대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카리스마에 반했어요.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넘버원’이나 H.O.T.의 멤버였던 강타가 작곡한 ‘늘(Wating)’을 가장 좋아해요. 10년 넘게 그녀는 제 우상이에요.”

2014년엔 한국에서 보아를 직접 만났다. “호주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한국에 갔는데, 방송국에서 깜짝 만남을 준비했더라고요. 만나면 너무 좋아서 기절할 것 같았는데 다행히 정신을 잃진 않았어요.(웃음)”

그는 보아처럼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앞으로 3년 정도는 제 음색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을 찾는 데 주력하고 싶어요. 해외 뮤지션 중에는 얼리샤 키스나 애드 시런을 자신의 개성을 잘 살린 롤모델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음색엔 파워풀한 발라드나 강렬한 댄스곡이 어울리는 것 같은데, 앞으로 계속 찾아갈 생각이에요.”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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