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사람 풍경] 막대 장단에 바위가 깨졌다, 얼마 뒤 쇳소리가 터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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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지리산·선암사서 7년 수련, 명창 배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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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한산 구천계곡을 찾은 소리꾼 배일동. 지리산 폭포 아래서 목소리를 다듬은 그다. “연암 박지원은 글이란 소년이 풀잎의 나비를 잡듯 긴장하며 써야 한다고 했다. 소리도 그렇다”고 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리꾼 배일동(51)의 명함에 찍힌 호(號) ‘구민(口民)’이 눈에 확 띄었다. 풀어 쓰면 백성의 입, 민초의 멍울진 한을 풀어놓는 소리꾼에 더 이상 안성맞춤이 없을 듯하다. “선배 서예가 김병규 선생이 지어줬어요. 20년 전쯤 지리산 달궁계곡에서 소리를 닦을 때 함께한 적이 있죠. 화두나 좌우명 같은 말입니다.”

목소리가 힘차다. 별명이 ‘배바로티(배일동+파바로티)’다. 쇳소리(鐵聲)도 난다. 높으면서도 저 밑으로 깔린다. 머리는 뽀글뽀글. “나이가 드니 머리칼도 주저앉아 몇 해 전에 볶았다”고 했다. 아무것도 감출 게 없다는 태세다. 서울 봉천고개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60㎡ 크기의 소담한 공간. 북과 장구, 돌확과 항아리 등 정겨움이 넘친다. 이름하여 ‘전곡당(?曲堂)’. 향기로운 노래가 흐르는 집이다. 김병규씨가 써준 글귀와 난초 그림도 보인다. ‘난계기향풍(蘭桂起香風)’, 난초와 계수나무가 향기로운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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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풍류 가득한 명창보다 고고한 선비의 거처 같은 느낌이다. 30년 가까이 소리와 공부를 겸비해 온 배씨의 얼굴을 닮았다. 그가 최근 낸 『독공(獨功)』에는 그만의 공력이 낱낱이 담겨 있다. 타고난 재주를 넘어 자신만의 성음(聲音)을 찾고, 또 판소리의 미학을 밝혀내려는 지난한 여정의 보고서다. 고향인 전남 순천 선암사와 지리산 계곡에 초막을 짓고 무려 7년간 폭포수와 벗하며 소리를 만들어 온 한 예인의 절차탁마(切磋琢磨)가 도드라진다.

| 유조선 기관사 일하다 26세에 입문
“하루 20시간 단련, 3시간은 독서
훈민정음 해례본 보며 발성법 익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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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씨의 서울 봉천동 연구실 ‘전곡당’에 걸린 액자.

그래도 만만치 않게 긴 기간이다.
“아둔하고 멍청했기 때문이다. 요즘 소리꾼은 보통 여름 한철 정도 산에서 지낸다. 조선 후기 방만춘(1825~?) 명창은 충남 해미의 한 사찰에서 10년간 공부했다고 한다. 진정한 공부는 홀로 절절하게 해야 한다.”
판소리 입문이 늦은 편인데.
“스물여섯에 시작했다. 순천 명창 염금향(1932~2010) 선생에게 처음 배웠다. 어려서부터 소리를 좋아했다.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당시 어르신들은 일상의 한마디 한마디가 소리에 가까웠다. 사람이 다치거나 슬픈 일이 생겼을 때 ‘아이고 어쩠거나, 짠해서 어쩠거나’처럼 말 자체가 창이었다.”
국립목포해양대를 졸업했다.
“살림이 가난해 대학에서 소리를 공부한다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다. 10만t급 유조선 기관사로 전 세계를 3년간 돌아다녔다. 돈도 제법 만졌다. 당시 웬만한 대기업 부장 월급의 두 배 가까운 100만원을 넘게 받았다. 하지만 소리에 대한 갈증은 어쩔 수 없었다. 나만의 길을 가자고 결심했다.”
산속에서의 일과는 어땠나.
“하루 평균 20시간 정도 소리를 질렀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목을 풀고 가사를 외우며 하루를 열었다. 잠들기 전 3시간 동안에는 반드시 독서를 했다. 예술 관련 동양 고전을 두루 읽었다. 우리 소리의 발성, 장단, 어법 등을 궁리했다. 산에 들어갈 때 이삿짐을 쌌는데 책만 1t 트럭 분량이었다.”
책에 소리로 바위를 뚫었다고 썼다.
“산중에서 바위가 북이라면 나뭇가지가 북채였다. 나무로 바위를 두드리며 단련했는데 어느 날 가로·세로 60~70㎝ 크기의 바위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 격이다. 바위틈에 오랜 세월 빗물이 스며든 탓도 컸을 것이다. 얼마 뒤 목청이 트이면서 쇳소리가 터지는, 즉 통성이 쏟아졌다. 마치 깨달음 같았다.”
옛 명창들은 똥물도 먹었다는데.
“소리를 하면 온몸의 뼈와 근육이 긴장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신이 붓기도 한다. 부기를 빼려고 똥물을 먹었다고 하는데 다 먹을 게 없었던 옛날 일이다. 요즘 누가 그렇게 하겠나. 저도 딱 한 번 마셔본 적이 있는데 바로 토했다. 독이 심해 먹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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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서울의 국악인과 미국 샌디에이고의 뮤지션이 온라인으로 만나 공연하는 모습.

산에서 내려온 배씨는 외국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다큐멘터리 영화 ‘땡큐, 마스터 킴’ 출연을 계기로 해외 무대에 자주 섰다. 호주·미국·일본·터키·이스라엘 등에서 40회 이상 공연과 강연을 했다. 서울대 등 국내 인문학 강연 강좌에도 초청받았다. 국악 전문 레이블 악당이반에서 2010년 그의 ‘심청가’ ‘춘향가’를 최고 음질을 자랑하는 SACD(super audio compact disc) 첫 작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프로젝트 그룹 ‘지리’를 결성해 국악과 재즈의 만남도 시도해 왔다.

| 최근 판소리 이론서 『독공』 펴내
“중국 음악은 2박자, 판소리는 3박자
우리 소리는 음악보다 문학이 우선”

소리꾼이 이론서까지 낼 필요가 있나.
“외국에 나가니 더 절실해졌다. 외국 음악가들이 판소리에 대해 알고 싶어도 책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판소리의 역사나 명창에 대한 책은 있지만 실기자(實技者)에게 바로 도움이 되는 책은 전무한 형편이다. 대부분 주먹구구식으로 배웠다고 보면 된다. 후배들은 이런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한다.”
소설가 한강의 예처럼 번역이 중요한데.
“판소리의 이론적 토대를 정치하게 밝힌 2부를 가을께 낼 예정이다. 원고는 이미 넘겼다. 그것을 토대로 내년께 미국에 번역서를 낼 작정이다. 외국에서는 아직도 판소리가 외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것을 우리가 무시해온 결과다.”
판소리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24절기, 4계절 등 자연의 리듬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중국 음악은 음양 2박자로 구성됐지만 우리 소리는 천지인(天地人) 3박자로 이뤄졌다. 춤도, 태껸도 다 3박자다. 또 서양 성악이 추상적·관념적이라면 판소리는 사실적이고 자연적이다. 판소리는 음악보다 문학이 우선이다. 오장육부를 울리는 사설(辭說)을 음미해 보라. 그런 기초를 알고 소리를 해야 한다. 기교나 재주만 가르쳐서는 진면목을 알 수 없다.”
국수적·신비적 해석은 금물이다.
“당연하다. 우리 소리에 바탕한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판소리의 발성과 장단 원리가 다 들어 있다. 산에 있을 때 방 안에 벽지 대신 훈민정음 해례본을 붙여놓고 공부하기도 했다. 스승들이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음양오행에 뿌리를 두고 있는 판소리의 우수성을 알게 됐다.”
판소리 5마당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심청가’다. 삶의 희로애락이 다 들어 있다. 특히 심 봉사가 눈을 뜨는 마지막 장면이 감격이다.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인도 이 대목에선 눈물을 흘린다. 판소리를 노래라 하지 않고 왜 소리라고 하는가. 원통하고 분한 사정을 털어놓는데 한가한 음률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 국악계에서 아웃사이더로 통해
“소리는 세상사 희로애락 그 자체
광대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국악계에서 아웃사이더 아닌가.
“한자로 유방지외자(游方之外者)다. 앞으로도 그 판에 끼어들 생각이 별로 없다. 원 없이 소리를 했으니 외로울 틈이 없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 어차피 광대의 길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게 아닐까. 명성을 좇다가는 소리를 망칠 수 있다. 또 세상에는 저보다 뛰어난 절창(絶唱)이 수없이 많다.”
평소 즐겨 부르는 가요가 있다면.
“아버지께서 가수 배호를 좋아하셨다. 저도 모르게 흥얼흥얼 따라 부르곤 했다. 배호의 ‘누가 울어’가 애창곡이라면 애창곡이다. 남진도 좋아한다. 나훈아 노래는 기교가 다소 과한 편이고….(웃음)”
[S BOX] 고수(鼓手) 김동원·재즈 드러머 바커와 그룹 만들어 해외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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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知音)이라고 했다. 소리를 알아듣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말한다. 고사성어 백아절현(伯牙絶絃)이 유명하다. 춘추전국시대 거문고 명인이었던 백아가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

배 명창에게는 ‘지음’ 둘이 있다. 그의 예술 도반(道伴)이다. 한 명은 한국인 고수(鼓手) 김동원(사진 왼쪽)씨고, 또 다른 한 명은 호주 재즈 드러머 사이먼 바커(오른쪽)다. 둘 다 2010년 국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땡큐 마스터 킴’으로 깊은 인연을 쌓았다. 우리의 소리에 반해 동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인 김석출(1922~2005)씨를 만나러 한국을 일곱 차례 찾은 바커에게 배 명창을 소개해 준 이가 김동원씨다.

현재 원광디지털대 교수로 있는 김동원씨는 김덕수 사물놀이패 출신으로 중요무형문화재 97호 태평무 이수자이기도 하다. 배 명창은 “1990대 초반 성우향 명창을 사사할 때부터 알고 지내 왔다”며 “동갑내기인 그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이먼 바커는 시드니음대 교수로 있다. 한국 음악을 주제로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만큼 국악에 관심이 크다. 배 명창을 세계 곳곳의 음악인에게 연결해 주기도 했다.

“이들과 함께 6인조 그룹 다오름(Daorum)을 만들어 7년 전부터 세계를 돌고 있습니다. 각자 즉흥적으로 연주하지만 서로가 하나로 엉켜버린 듯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경지를 느끼곤 합니다.”

글=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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