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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의 해가 지면 7개 굴뚝선 연기 뿜어댄다…28%가 수도권 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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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발전소 밀집한 충남 보령·전남 여수 가보니

| 반나절 빨래 널어도 검은 가루 쌓여
관광객 끊기고 농사 짓기도 힘들어
“낮엔 가만히 있다 밤만 되면 배출”
주민 일부는 만성 호흡기질환
발전소 “방진망 설치해 차단”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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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충남 보령시 주교면 보령화력발전소 굴뚝에서 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해질 무렵부터 3시간 동안 배출된 연기는 바람을 타고 수도권과 대전 등 내륙 쪽으로 날아갔다. 기존 8기 외에 2기가 추가로 건설돼 시험가동을 앞두고 있어 주민들이 심각한 대기오염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보령=프리랜서 김성태]

지난달 31일 오후 7시 충남 보령시 주교면 고정리 서해 바닷가에 세워진 거대한 보령화력발전소. 서쪽 안면도 하늘에 저녁 노을이 물들 무렵 150m 높이의 7개 굴뚝에서 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는 바람을 타고 수도권과 대전이 있는 내륙 쪽으로 날아갔다.

하루종일 배출된 연기는 해 질 무렵이 되자 뿌연 연기로 변했다. 뿌연 연기는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점차 사그라들었다. 1984년 1·2호기 가동이 시작된 뒤 거의 매일 이런 광경이 반복되고 있다.

이 발전소는 연간 1327만t의 석탄을 태운다. 이것도 모자라 1㎞가량 떨어진 곳에 신보령화력발전소(2기)를 또 건설 중이다. 주민들은 9월께 신보령화력이 시험 가동에 들어가면 대기 환경오염이 더 심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김기승(55) 주교리 이장은 “2008년 7·8호기 준공 당시 발전소 측은 추가 건설 계획이 없다고 했는데 결국 거짓말이 됐다. 앞으로 얼마나 더 지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창문을 열지 못하고 빨래를 반나절만 널어 놓아도 검붉은 가루가 쌓 인다”고 호소했다.

주교면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지 말라는 학부모들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고 말했다.

이날 낮 12시쯤 보령에서 북쪽으로 85㎞ 떨어진 당진시 석문면 당진화력발전소 인근 왜목마을은 관광객이 없어 썰렁했다. 수퍼마켓 주인 김미화(70·여)씨는 “아무 곳이나 손바닥으로 쓸어보면 시커먼 알갱이가 묻어난다”고 말했다. 인근 식당 주인들은 매일 열 번 이상 테이블을 닦아도 소용이 없다고 푸념했다.

최근에는 발전소에서 날아온 미세먼지가 바닷가 백사장에 쌓인다는 소문이 돌면서 상인들은 올여름 피서객이 줄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발전소에서 5㎞ 거리인 난지도는 올여름 해수욕장 개장 여부를 놓고 주민들이 고민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당진 지역 시민단체는 지난 1일 화력발전소 추가 증설 등을 묻기 위한 찬반 주민투표를 요구하고 나섰다.

충남에는 전국 화력발전소 53기 가운데 26기가 몰려 있다. 보령·당진·태안에 각각 8기를 운영 중이고 서천에는 2기가 있다. 현재 당진과 보령에 각각 2기가 새로 건설돼 시험 가동을 앞두고 있다. 태안에도 2기가 새로 건설 중이다. 충남의 화력발전 설비용량은 1억2400만㎾로 전국(2억6106만㎾)의 47.5%를 차지한다. 지난달 10일 감사원은 충남 지역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된 초미세먼지 28%가 남서풍을 타고 수도권으로 날아간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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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쪽 사정도 비슷하다. 지난달 30일 찾아간 전남 여수시 묘도동 인근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지어진 호남화력발전소. 발전소에서 약 3㎞ 떨어진 창촌마을 어촌계장 김철곤(65)씨는 주민자치센터 옥상에서 손바닥으로 바닥을 쓸었다. 새까만 먼지가 묻어 나왔다. 바닥 곳곳에선 검은 얼룩과 함께 미세한 중금속 물질들이 반짝거렸다. 김씨는 “발전소에서 쓰는 석탄가루가 미세먼지로 변해 날아와서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발전소는 73년 4월 가동을 시작해 올해로 44년째다.

과거 마을에서 키우던 소들은 매일 아침 콧구멍이 시커멓게 변했다고 한다. 묘도동 주민 1300여 명 가운데 일부는 만성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다. 주민 박말례(76·여)씨는 “농사도 제대로 지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농산물이 팔리지 않을까봐 제대로 된 항의조차 못하고 있다.

호남화력발전소 관계자는 “발전소 곳곳에 방진망을 설치하고 수시로 물을 뿌리는 등 먼지를 차단하고 있다”며 화력발전소가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지적을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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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화력발전소 줄이고 경유값은 안 올린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2029년까지 충남을 포함해 전국에 34개의 화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박근혜 정부의 에너지 정책 중 하나가 화력발전소 증설이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3년 ‘제6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2017년까지 화력발전소 28곳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는데 지난해 7월 ‘7차 계획’에서 34곳으로 6곳을 추가했다. 현재까지 확정된 건 2022년까지 20기다.

장영기 수원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는 “ 10년 전부터 학계에서 미세먼지 대책에 발전소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며 “화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오염물질 측정부터 수시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령·여수=신진호·김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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