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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은 암도 크게 퍼질 수 있다니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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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환자가 수술대위로 오른다. 이미 마음의 각오가 되었는지 담담한 표정이다.

"잠시만 그 자리에 앉아 있어요. 수술 절개 라인 디자인하게.....수술이 좀 크게 될 것 같아요.."

"교수님, 그래도 예쁘게 해주세요"

"물론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지요. 근데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암조직을 완벽하게 들어내는 것이지요.

암이 옆목으로 많이 퍼져 있어 절개선이 옆목으로 좀 확장 되어야 하거든요. 근데 나중에 보면 옆으로 확장된 절개선은 그렇게 흉터가 흉하게 남지 않아요. 또 레이져 치료하면 더 좋아지기도 하고..."

이 환자는 지난 3월초 왼쪽 옆목에 우둘투둘 큰 염주알 같은 것이 나타나 타병원에서 진찰한 결과 갑상선암이 옆 목 림프절로 많이 퍼져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필자를 찾아 온 것이다.

가지고 온 타병원 초음파영상과 CT 스캔을 보니 이거 정말 기가 차도 이만 저만 차는 것이 아니다.

옆목 내경정맥을 따라 울퉁불퉁 솔방울처럼 생긴 암덩어리들이 이리저리 얼키고 설켜 있다. 큰 것은 진짜 솔방울만하다.,

특히 레벨 3와 레벨 4를 점령하고 있는 놈들이 더 험악한 모양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갑상선 협부(나비의 몸통에 해당하는 부위)

아래쪽 기도전방에도 림프절들이 와글와글 진을 치고 있고 이놈들 중 일부는 오른쪽 기도-식도 협곡과 상부 종격동까지 내려와 있다.

근데 말이지, 이들 전이암의 본거지가 되는 갑상선안의 암은 왼쪽 날개에 두개가 있는데 헐, 그 크기가 0.419cm과 0.4cm밖에 안되는 아주 작은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모양이 암스럽지 않고 동그스럼하게 얌전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암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모양새라는 것이지.

세상에, 이렇게 얌전한 것이 암세포를 저렇게 험악하게 퍼트렸다니....

환자가 마취에 들어가고 난 후 수술조수 닥터 김과 얘기를 나눈다.

"닥터 김, 여기 갑상선안에 있는 요렇게 작은 놈이 저렇게 심한 전이암의 본거지가 되다니........참 모를 일이야.

간혹은 깨알처럼 작은 암이 갑상선의 꼭데기 있으면 바로 암세포가 옆목 림프절로 빠져 나가 저렇게 퍼지는 수가 있기는 하지만 이 환자는 위치도 중간에 있고.......도대체 설명이 안된단 말이야. 오른쪽은 괜잖은지 다시 함 체크해 보자"

"어, 교수님, 오른쪽 레벨 4 에도 전이가 의심되는 것이 있는데요. 사이즈가 1.5cm 정도 되고요. 아, 저번 병원에서 세침검사를 했는데 전이가 있는 걸로 되어 있어요"

"그럼, 수술실 초음파 검사기로 오른쪽 레벨4 근처를 다시 한번 확인 해보자"

"아, 여기 보이네요, 레벨 4지만 깊숙히 내려가서 상부종격동과 연결되어 있어요"

"그럼 오른 쪽 옆목 림프절청소술도 해야 되잖아, 수술이 좀더 커지고 복잡해지겠구만, 페에는 전이가 없을까?

이런 환자는 원격전이도 잘 할 것 같은데...."

"PET-CT 에는 아직 전이가 안보인다고 되어 있어요"

'모르지, 미세먼지 같은 전이는 안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 나중에 고용량요드치료할 때 나타나게 될지도 모르지..."

수술은 갑상선전절제술, 중앙경부림프절 청소술, 상종격동 림프절 청소술, 양측 옆목림프절 청소술이 큰 차질 없이 진행된다.

엄청 큰 수술이지만 환자의 목이 가늘고 길어 수술 조작이 수월했기 때문이다.

좀 걱정되는 것은 워낙 광범위한 절제술이기 때문에 부갑상선 혈액 순환에 장애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수술이 끝나고 휴게실에서 닥터김이 말한다.
"정말 희한 한데요. 저렇게 작은 것이 그렇게 심한 전이를 일으키다니요"

"부모는 얌전한 사람인데 집나간 자식새끼들이 더 세를 불리고 포악한 집단이 된 것이라 보면 되지.

림프절 전이가 없었다면 아마도 암이라고 생각한 의사는 한사람도 없었을 거야.

BRAF와 TERT promotion 돌연변이가 동시에 일어나면 진행이 빠르다고 지난번 학회에서 존스 홉킨스의 Xing교수가 발표를 했는데

혹시 이 케이스가 거기에 해당되는지도 모르지.......좌우간 갑상선암은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몰라지는 것 같애"

"그러게 말이예요"

저녁 회진시간에 병실에서 환자를 만난다.

그렇게 큰 수술을 받았는데도 환자상태는 good이다. 목소리, 어깨 움직임, 눈거풀 처짐 등 수술에 따른 큰 합병증은 없는 것 같다.

부갑선 홀몬수치는 정상보다 약간 낮은 수치를 보이지만 혈청칼슘치는 완전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손발 저리지 않지요?"

"괜찮은데요"

병실을 나오며 필자 혼자 한탄한다.

"이렇게 작은 암이라도 엄청 많이 퍼질 수 있다는 걸 그 무슨 연대 사람들이 알기나 할까? 허참~~"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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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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