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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용수로도 못 쓸 6급수…환경 살려야 돈·사람 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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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시화호 재앙 막으려면
익산 왕궁축산단지 120여 농가
축사 사들여 수질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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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질이 악화돼 지난해 12월 목표 미달인 4급수(목표는 3급수) 판정을 받은 전북 부안군 동진강 하류 쪽 새만금호 도시용지 구간 일대. [프리랜서 장정필], [중앙포토]

지난달 24일 전북 군산시 새만금 방조제 신시배수갑문. 굳게 닫힌 수문을 따라 페트병과 비닐봉지 등 온갖 쓰레기가 둥둥 떠다녔다. 방조제로 막힌 새만금 부지 안쪽의 물은 암갈색을 띤 채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원래 새만금 안쪽에 있던 바닷물의 흐름이 차단되면서 수질이 눈에 띄게 나빠진 것이다.

수질오염 논란은 사업 초반부터 새만금의 발목을 수차례 붙잡았다. 애초 바다였던 곳에 방조제를 쌓은 뒤 개발사업 부지를 만들다 보니 생긴 구조적인 문제다. 새만금은 방조제 건설 이후 사업 부지로 유입된 바닷물의 흐름이 사실상 차단돼 수질이 계속 나빠졌다. 매년 여름이면 갑문 안쪽의 새만금호에서 녹조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새만금이 투자와 사람을 제대로 끌어들이려면 생태 환경 살리기와 생활 정주 여건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살 곳이 못 된다”는 인상을 주는 곳에 아무도 투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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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환경운동연합 이정현 사무처장은 “새만금호(118㎢)의 절반 수준인 시화호(56.5㎢)가 해수를 유통시켜 수질오염을 개선하고 각종 사업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만큼 새만금도 해수 유통을 비롯한 환경친화적인 개발 계획을 다시 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바닷물을 새만금 사업지 안쪽으로 대량 유입시킬 경우 부지를 매립하는 비용이 두 배 이상 늘어난다는 점에서 사업 주체 측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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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부는 새만금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2조6000억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수질은 평균 4급수에서 현재 6급수로 떨어졌다. 6급수는 용존산소가 거의 없어 농업·공업용수로도 사용이 불가능한 물이다. 만경강과 동진강 상류에 환경 기초시설과 가축분뇨 처리시설을 확충해 수질을 개선하려던 계획도 완전히 빗나갔다. 구간별로는 만경강 농업용지 구간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평균 화학적산소요구량(COD)이 6급수 수준에 머물러 2013년 이후 계속 악화하고 있다. 동진강 농업용지의 COD도 6급수 수준이다.

새만금호의 가장 큰 오염원인 익산 왕궁축산단지 정비작업에도 걸림돌이 많다. 현재 이곳엔 120여 농가가 돼지 10만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과거처럼 분뇨를 무단 방류하는 사례는 거의 없어졌지만 추가 오염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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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이를 막기 위해 왕궁축산단지 내 축사 매입을 추진해왔다. 올해 축사 매입 예산으로만 100억원을 책정해 돼지 1000마리당 토지·건물 매입 보상비로 4억2000만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양석호(60) 왕궁축산인 대표는 “타 지역의 이전보상비에 비해 절반도 안 된다”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최근에는 새만금 부지를 메우는 준설토로 석탄재를 사용하려던 계획이 드러나 환경오염 논란을 빚고 있다. 전북도의회 박재만 의원은 지난달 17일 “서천화력발전소에서 연료로 사용하고 나온 석탄재 600만t을 연약 지반인 새만금 산단 3공구를 메우는 데 활용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 간척지 활용 제대로 하려면
뷰티·바이오 등 친환경산업
중국 겨냥 미래형 농업 유치를

사실 새만금 일대에는 2010년 세계 최장의 방조제(33.9㎞)가 완공돼 갯벌 등 기존 생태계의 완전한 원형 복원을 거론하기에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이 때문에 이제 새만금의 미래를 위해서는 사업지 전체를 생태적으로 건강하고 살기 좋은 공간으로 만드는 현실적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현재처럼 수질오염이 가속화될 경우 새만금은 단군 이래 최악의 환경파괴 사업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농지를 줄이고 공업용지를 늘리는 획일적인 용도 변경을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대 이정전(환경계획학) 명예교수는 “당초 농지 확보 차원에서 비롯된 간척사업이 도시형·산업형으로 변질된 만큼 지금이라도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고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사업 부지들에 대한 용도 변경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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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기술(ICT)이나 바이오·뷰티 산업에 기반한 친환경 산업을 적극 육성해 새만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자는 제안도 나온다. 자칫 새만금의 환경을 추가로 오염시키거나 파괴할 수 있는 공장을 무리하게 많이 유치하는 것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미래형 농업이나 바이오 업체를 끌어들이는 게 유리하다는 시각이다.

충남대 염명배(경제학) 교수는 “중국 시장에 먹힐 수 있는 화장품·식품 등의 수출 품목, K팝과 K뷰티 등 환경친화적 품목을 중국 기업과 합작투자하는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환경오염도 막고 투자도 활성화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군산=최경호·김준희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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