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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드] 소라넷 흥망성쇠 17년… 폐쇄 뒤 100만 회원은 유사 사이트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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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중앙포토]

 

소라넷에는 생생한 사진들과 다양한 체험기가 있었다.”

대학생 김모(24)씨가 소라넷을 찾았던 이유다. 그는 소라넷에서 일반인들의 야한 사진이나 생생한 경험담을 보기 위해 방문했다. 김씨는 “다른 음란사이트는 조작한 썰(체험기)이나, 시시한 사진, 이용자를 겨냥한 광고들만 제공하는데, 소라넷은 생생한 사진들과 썰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소라넷이 다른 음란사이트와는 달랐다는 얘기다. 김씨는 사이트가 폐쇄된 것에 대해 “물론 (소라넷은) 잘못된 것이고 언젠가 없어질 것이라 예상했다”라며 “그렇지만 지금도 대체할 사이트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지난 4월 국내 최대 음란사이트 ‘소라넷’의 서버를 폐쇄했다. 지난해 11월 강신명 경찰청장이 국회에서 “소라넷 사이트의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는 발언 이후 5개월 만이었다. 경찰은 네덜란드와 국제 공조수사를 통해 현지에 있던 소라넷 핵심 서버를 폐쇄하고 사이트 광고주와 카페운영진, 사이트에서 도박을 벌인 회원 등 62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과거 이 사이트의 접속이 일시적으로 차단된 적은 있지만 서버를 압수수색해 폐쇄한 건 처음이다. 압수된 서버 용량만 120테라바이트(TB)에 달한다. 2시간짜리 고화질 HD 영화 7만 여건의 용량이다. 경찰은 폐쇄 당시 소라넷의 회원 수가 최소 100만 명이며 운영자가 얻은 수익만 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소라넷’유저가 콘텐트 공급자로
소라넷은 1999년 ‘소라의 가이드’라는 사이트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초기 사이트의 성격은 웹 매거진 형태였다. 익명의 작가들이 쓴 야한 소설이나 유저들이 구한 야한 사진을 주로 올렸다. 인터넷의 보급률도 낮고 정보도 부족했던 시절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이후 2003년 사이트명을 ‘소라넷’으로 바꾼다. 사이트 성격도 초기와 달리 회원제 커뮤니티로 개편했다. 회원들은 게시판에서 안부를 묻고 친목을 쌓기 시작했다. 운영진이 올린 음란물을 즐기던 유저들이 자신의 성 경험과 은밀한 성적 취향을 공유하며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도촬 사진·영상에서부터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ㆍ헤어진 연인에게 복수하려 유포한 성관계 동영상)’까지 공유하며 수위를 높였다. 소라넷은 음란물을 보는 사이트에서 음란물을 공유하는 사이트로 변했다.

소라넷은“자유로운 성문화를 추구한다”며 도촬 사진과 영상을 공유했다. 스와핑(swapping·두 쌍의 연인들이 서로 상대를 바꿔 관계를 갖는 행위)과 윤간을 제안했고 성매매를 알선하고 강간을 모의했다. 소라넷은 성범죄의 온상이 되어갔다.

▶소라넷 경찰과 17년 숨바꼭질 마침표
소라넷이 단순 음란 사이트를 넘어 사회 문제로 대두하자 경찰도 손을 보기 시작했다. 2004년 6월, 서울 강남경찰서는 소라넷의 제작·회선 임대·광고 대행에 참여한 관계자 71명을 적발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사이트 운영자는 ‘케이 송’‘테리 박’등의 가명을 사용하며 수사망을 피했다. 경찰은 단지 “그가 호주 영주권을 가진 한국계 동포로 추정된다”고만 밝혔다.

소라넷은 2009년 이후 트위터 홍보 등을 통해 몸집을 불렸다. 운영진들이 새 주소를 트위터를 통해 공지하는 방식이다. 2010년 경찰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소라넷의 트위터 접근 차단을 의뢰했지만 효과를 못 봤다. 당시 소라넷 트위터의 팔로워 수는 10만 명을 넘었다. 국내에서 3번째로 많았다. 1, 2위는 각각 피겨 스타 김연아와 소설가 이외수였다.

2013년 소라넷을 통해 스와핑을 알선한 성매매업소가 경찰에 적발됐다. 사이트 내 카페를 만들어 회원 420여 명을 모집하고 업소에서 회원들끼리 성관계를 하도록 알선한 업주와 실장 등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일부 회원들은 업소 여종업원을 성매수 하거나 상대를 바꿔가며 성관계를 맺었다고 진술해 논란이 됐다.

2015년에는 소라넷을 통해 약 9분 40초 분량의 ‘워터파크 여자 샤워실 몰카 동영상’ 2개가 유포됐다. 피해업체 측은 경찰에 유포자와 촬영자를 처벌해달라며 신고했다. 경찰은 일주일 간의 수사 끝에 동영상을 촬영한 20대 여성을 체포했다. 이 여성은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남성으로부터 ‘몰카를 찍어오면 건당 100만 원씩 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상황은 워터파크 몰카 사건 이후 새 국면을 맞게 된다. 네티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해 11월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Megalia·소설 『이갈리아의 딸들』과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의 합성어)’에서 불붙은 ‘소라넷 폐지 운동’이 대표적이다. 여성 회원이 대부분인 메갈리아는 소라넷의 범죄 행각을 담은 게시물을 사이트에 올려 소라넷 폐지 서명을 독려했다.

지상파 시사고발 프로그램도 소라넷의 실태를 파헤쳤다. 방송에는 한 남성이 소라넷을 통해 모집한 남자들에게 술 취한 여자친구를 강간하도록 주선했던 ‘왕십리 강간모의 사건’을 소개했다.

또 잠든 사이 몰래 찍힌 나체 사진이 소라넷에 공개된 여성의 인터뷰가 공개됐다. 소라넷의 인기 회원으로 활동했다는 한 남성의 인터뷰도 다뤘다. “경찰도 날 돕지 않는다. 그냥 성형해서 모습을 바꿔버리고 싶다”는 피해자 여성의 토로와 “거기서 여자는 사람 취급을 안 한다. 그냥 성욕 채우는 도구일 뿐이다”라는 증언에 여론은 분노했다.

경찰은 지난 4월 마침내 소라넷 핵심서버를 압수수색해 폐쇄했다. 17년에 걸친 싸움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한글 유해사이트 세계 2위…함께 성장해온 소라넷
온라인 음란물 신고 활동을 해온 모니터링 요원들은 소라넷 폐쇄 이후에도 온라인상의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소라넷처럼 회원제로 운영되는 유사 사이트가 여전히 존재한다. 전 소라넷 유저들은 이들 사이트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 발표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적발된 국내 성매매·음란 사이트는 총 1만2463개다. 이중 삭제 및 이용 해지, 접속차단 조치를 당한 사이트는 총 1만 1041개로 88% 이상이 문을 닫았다.

KT가 2008년 분석한 ‘언어별 유해 사이트’에 따르면 한글 유해사이트는 17만여 개로 세계 2위(13.4%)를 기록했다. 영어(59.6%)에 이어 두 번째다. 인구 13억이 넘는 중국(11.3%)보다 많았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음란공화국’이라는 씻기 힘든 오명을 썼다. 유형별 유해 사이트는 음란 사이트가 98.3%(도박 1.7%, 엽기 0.02%)로 가장 많았다.

소라넷과 같은 음란 유해사이트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과 아동·청소년이다. 음란물을 접한 적이 있는 초등학생(37.5%)의 대부분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한 경우(51.9%)가 가장 많았다
(‘2013 서울시 청소년성문화연구조사’). 중·고등학생의 경우 주로 초등학교 6학년(19.8%)과 중학교 1학년 (19.7%) 때 처음 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0년간 연구조사 결과 초등학교 때 음란물을 접한 비율은 2007년(23.8%) 이후 2010년(30.3%), 2013년(50.2%)로 음란물을 접하는 시기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최근 한 언론이 조사한 자료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한 달간 수도권 아동·청소년 512명(초등학교 4∼6학년 260명, 중학생 25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음란물을 접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32.8%였다. 남학생이 38.8%, 여학생이 26.6%를 기록했다. 의외로 여학생들도 빨리 음란물을 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상당수의 여학생도 SNS을 통해 야동(야한 동영상)과 야사(야한 사진)를 공유하고 있다.

여성의 경우 소라넷을 실제로 방문했거나 회원가입을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워터파크 몰카’사건 이후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라넷에 접속해 봤다는 회사원 장모(28·여)씨는 “IS 같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여성혐오를 넘어서 여성을 물건 취급도 안 한다는 느낌이었고, 인간으로서 지켜야 될 선을 넘어선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기사를 통해 소라넷을 알게 된 직장인 홍모(31·여)씨는 “여자 입장에서는 소라넷이 폐지된 것은 잘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씨도 소라넷에 대해 “여성혐오라기보다는 여성에 대한 뒤틀린 관심으로 인해 생긴 변태적인 집단 같다”며 장씨와 공통된 의견을 내놨다.

범죄심리분석 전문가 표창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소라넷에 대해 “여성을 같은 인격체로 보지 않고 성적인 도구로 삼고 있다”면서 “어떤 형태로 유린해도 자기만 피해 받지 않고 자기만 처벌받지 않으면 괜찮다는 인식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 이수정 교수는 “남자와 여자 간의 젠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소라넷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로운 성문화’가 아닌 명백한 ‘범죄’다. 여전히 그들은 온라인상에서는 몰카를 찍고 강간 모의를 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일어나는 성범죄를 막으려던 노력은 소라넷의 폐지로 한때 결실을 맺은 것처럼 보였다. 사이트만 폐지됐을 뿐, 성범죄는 여전하다. 이번 압수수색이 소라넷의 영구폐쇄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미리 백업해둔 서버로 사이트를 부활시킬 가능성도 크다.

경찰 관계자는 “새롭게 개설하는 서버도 해외국가와 공조해 지속적으로 폐쇄할 것”이라며 “최종 목표는 소라넷 운영진 검거”라고 말했다. 소라넷 유저들은 여전히 활동중이다. 좀 더 어두운 곳으로 몰아냈을 뿐이다.

배재성 기자·한동엽 인턴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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