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양평에 가정 문제 치유센터 개장을 앞둔 송길원 목사가 초소형 예배당인 ?청란교회? 앞에서 센터 운영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송길원(59) 목사는 가정치유 전도사로 불린다. 지난 25년간 가족 간의 갈등을 푸는 목회·상담·교육·저술 활동에 몰두해왔다. 지난 25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에 있는 ‘비움과채움 갤러리’에서 송 목사를 만났다. 전원주택 단지가 들어서 있는 야산의 시멘트 포장길을 200여m쯤 올라가자 길 한편 둥그스름한 비석엔 ‘행복으로 가는 길’이란 문구가 음각돼 있었다. 여기서 100m쯤을 더 올라가니 아직 공사 중인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송 목사는 이곳의 야산 9만9000㎡를 매입해 가정치유센터 ‘W-zone’을 만들고 있다. 올 8월에 완공할 예정이다. W-zone은 부부 또는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을 예방하고 치유하기 위한 공간이다. 이곳엔 다양한 가정 치유 프로그램이 이뤄질 3층 규모의 가정선교훈련센터와 주로 선교사들이 머무를 3층 규모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설 예정이다. 지금 이 건물들은 실내외 마감을 앞둔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또 이곳엔 높이 9.7m에 바닥 면적이 14㎡인 초소형 예배당인 ‘청란교회’가 들어서 있다. 6600㎡ 규모의 수목장도 조성했다. 군데군데에 ‘기린목눈썰매장’ ‘바람개비공원’ ‘캠프장’ 등도 만들 계획이다. 송 목사는 “단순히 치유 프로그램만 운영하는 게 아니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며 힐링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일곱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알려주는 ‘이모션 코칭’, 싱글 또는 예비부부를 위한 ‘싱글벙글·연리지’ 세미나, 부모 역할 수업인 ‘아버지학교·아내행복교실’이 있다. 부부행복학교, 영유아부모학교, 가족힐링캠프, 죽음교육도 준비했다. 결혼의 시작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배우고 가족 갈등을 치유하자는 차원이다. 가정의 달인 5월의 끄트머리에서 1992년부터 가정 치유 전문가로 활동해 온 송 목사로부터 가정의 위기와 해결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가정 치유 전문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부산 고신의과대학에서 85~91년에 교목을 했다. 학교에 적응 못하는 의과대생들과 상담해 보니 이들의 문제가 모두 가정에서 출발했더라. 부모의 한(恨), 대리만족 때문에 의대에 진학한 거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이들의 치유 받지 못한 어릴 적 상처가 우울증이나 강박증으로 남아 있었다. 92년에 홀로 부산의 3.5평짜리 사무실에서 가정치유 연구소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문을 열었다.”
-왜 하필 양평에 자리를 잡았나.“가족이 치유받기 위해 마음을 먹고 집을 떠나는 행위 자체부터가 치료다. 이왕 떠난 길이라면 삭막한 도심보단 시원한 북한강 바람을 맞고 수풀이 우거진 자연으로 오는 게 좋지 않겠나. 양평은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을뿐더러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또 경기도 가평군에 자리 잡은 영성센터 ‘필그림하우스’와 ‘생명의 빛 예배당’과 함께 바이블 벨트를 형성하게 된다.”
-목사이니 ‘OO교회’나 종교적 색채가 강한 단어를 이름에 집어 넣지 않았을까 싶었다.“불교의 ‘템플스테이’는 불자들만을 위한 게 아니다. 누구나 받아들이면서 사회 순기능 역할을 하고 있다. 개신교는 개별 교회가 따로 움직인다. 비신자들도 교회에 접근하고 도움을 받으러 와야 하는데 기독교엔 이를 대표할 만한 시설이 없다. 그 반성에서 출발한 게 W-zone이다. 비신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와 교육이 어우러진 복합공간이 필요하다. 이곳은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는 했지만 교회가 아니다. 보다 열린 힐링 공간이다. 그래서 눈썰매장·체육공원·갤러리·수목장이나 사랑의종·아이러브패밀리 같은 조형물도 세운 거다.”
-최근 자녀에 대한 폭력이나 패륜 범죄가 벌어지고 있다. 왜 이런 사태가 생긴다고 보나.“금수저·흙수저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가정 경제의 어려움, 또 사회 생활이 워낙 바쁘게 돌아가니 가족이 함께 대화하는 시간마저 잃어버리고 있다. 그러나 가장 주요한 원인은 가족 구성원들이 가정이 무엇인지 배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도 적다는 말이 있다. 아내가 우울해하는 이유를 알면 아내를 이해하게 되고 결국 사랑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러면 왜 기분 나쁘게 신경질 부리냐며 대판 싸울 일이 없어질 거 아닌가.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으면 골다공증 환자처럼 살아가게 된다. 가정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니 상대를 잘 모르게 되고 이로 인해 사랑의 결핍 증상이 나타나 심하면 가정 범죄마저 일어날 수 있다.”
-치유책은 무엇이라고 보나.“가족 생태계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부부가 밤 12시에서야 집에 들어와 다음날 새벽부터 나가는 생활만 반복하면 가족으로 존재하기 힘들지 않겠나. 거시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의 생태계가 바뀌어야 할 거다. 또 의사들의 모범답안 같지만 병은 치료보단 예방이 중요하다. 갈등이 있어 가족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할 게 아니라 느끼는 갈등이 없더라도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 센터 방향도 ‘낭떠러지의 앰뷸런스가 되기보단 낭떠러지 위 울타리가 되자’는 것이다. 이미 갈등이 심해진 상태에서 치료하려면 비용 부담이 너무 커진다. 또 평소에 가정에선 독특한 가정 문화를 만들어볼 필요가 있다. 밤 10시에는 모두 잠을 청한다거나 가족이 함께 아침밥 먹는 걸 중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가족들과 세워둔 원칙이 있나.“우리 가족도 원칙이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 모임엔 빠지지 말자는 것이다. 시간을 넉넉히 두고 날짜를 잡는다. 다음주가 33주년 결혼기념일이라 모임 약속을 잡았다. 우리는 1년에 한 차례 가족 여행을 간다. 꼭 휴가철에 가는 게 아니다. 지난해 12월엔 2박3일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서른두 살 아들과 서른한 살 아들을 뒀는데 둘째 아들은 나와 같이 센터 일을 보고 있다. 회사일 등으로 바빠 두 아들과 평소 대화가 부족하더라도 이런 여행이나 모임이 좋은 기회다. 가족은 많이 만나고 많이 대화해야 한다. 저녁에 시간을 내서 카페에 가 담소를 나누거나 함께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해도 좋다. 같은 취미를 갖는 것도 좋다. 특히 동일한 지향점을 갖는 게 중요하다. 우리 가족의 지향점은 ‘사람을 소홀히 대하지 말자’다. 10년 뒤에 서로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얘기하고 코치해 주기도 한다. 이래야 가족의 결속력이 강해진다.”
-각 가정이 명심하면 좋은 점이 있을까.“아버지·어머니는 사표를 내고 나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아무도 그 자리는 메울 수 없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가정을 꾸려나가야 한다. 내가 결혼식 주례 때마다 해주는 말이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살아간다면 그건 사랑이 조건이나 이유가 된다. 사랑이 목적이 되도록, 사랑하기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그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