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부터 『흰』까지 한강의 질문은 이어진다

중앙선데이

입력 2016.05.2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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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호 14면

한강 바람이 거세다. 지난 16일 작가 한강(46)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면서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들로 그 열기가 번져가고 있다. 공동수상한 데버러 스미스의 번역으로 영미권에 함께 소개된 『소년이 온다』는 물론 새로 출간된 소설『흰』에 대한 관심도 상당하다.


사실 한강의 작품을 읽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묘사와 전개에 “내용이 불편하다”는 독자들의 항의가 있기도 했고, 답하기 어렵거나 힘든 질문들 속에 머무르며 글을 써내려가는 작가의 스타일 때문에 그 고통이 고스란히 읽는 이에게 전가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녀의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아마 그 고통이 우리 삶 속에서 진행되는 현재진행형의 과제이기 때문 아닐까.


창작자로서 그녀 개인이 감내해야할 무게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눠서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할 숙제일 수도 있다. 24일 서울 홍대 카페꼼마에서 열린 신작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그녀를 만났다.

몰려든 기자들과 연신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가 어색한 듯 한강 작가는 연신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깊이 잠든 한국 사회에 감사한다”는 짧은 말로 수상 소감을 밝혔던 그날처럼 “수상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갔는데 상을 받고 많은 분들이 기뻐해주시고 고맙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그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많은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늘 그랬던 것처럼 조용하면서도 담담한 어조였다.


“『채식주의자』를 완성한 게 벌써 11년 전이에요. 책이 출간된 지도 9년이 지났으니 저로서는 그 소설에서 많이 걸어나왔죠. 그 뒤로도 다른 장편 소설을 계속 써왔는데, 저는 한 소설의 끝에서 다음 소설의 시작으로 이어져가는 방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시대를 견딜 수 있을까 2004년 ‘창작과비평’에 발표된 중편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거부하게 된 여자 영혜의 이야기다. 하지만 2007년 ‘몽고반점’ ‘나무 불꽃’과 함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로 출간되자 같은 텍스트지만 다른 의미를 지니는 이야기가 됐다. 영혜를 욕망의 대상이자 예술의 뮤즈로 보는 형부의 이야기가 되기도 했고, 자신의 평온한 삶을 파탄 낸 동생을 돌봐야만 하는 언니의 이야기가 담기기도 하면서 사실 서로가 어느 정도의 폭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 것이다.


작가에 따르면 이 소설은 ‘우리가 이토록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시대를 견딜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끝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 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바람이 분다, 가라』(2010)로 이어지는 식이다. 이 작품에선 나무를 닮은 작품이 등장한다. 닥나무 껍질로 만든 한지에 모세혈관 같은 무수한 섬유질의 길들을 따라 먹의 모양이 이리저리 퍼져나가는 독특한 양식의 수묵화. 주인공 인주는 그것을 남기고 죽은 친구의 향방을 좇는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죽음을 때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불 속을 배로 기어서 빠져나온 여자가 던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다음 작품 『희랍어 시간』(2011)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다시 『소년이 온다』(2014)를 통해 “폭력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작가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었다.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제가 갖고 있는 질문들이 변화하는 걸 느꼈어요. 인간의 밝은 지점을 조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엄마의 손을 잡고 밝은 쪽으로 끌고 가는 마지막 장면을 쓰면서 우리에게는 무엇으로도 훼손되지 않는, 더럽혀지지 않는 무엇이 있지 않나 하고 되물었죠. 깨어져도 복원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고민하다 흰 것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게 됐습니다. 이어지는 소설은 사실 두 편인데요, 하나는 『흰』이고 다른 하나는 단편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으로 시작하는 혼에 관한 3부 작이에요. 전자가 좀 더 내밀한 이야기라면, 후자는 사회적인 맥락을 가져가면서도 윤리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2014년 가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머물며 쓴 소설 『흰』은 전작과는 사뭇 다르다. 시로 먼저 등단한 작가의 사전 속에 있던 단어들은 흰 것을 중심으로 긴밀하게 맞붙는다. 이를테면 달떡같이 얼굴이 흰 여자아이가 눈처럼 하얀 강보에 싸여 있는 식이다. 배내옷이 수의가 되고, 강보가 관이 되는 상실은 한층 더 역설적이고 함축적이다.


“90% 이상이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가 재건된 도시에 머물면서 그 도시를 닮은 어떤 사람을 상상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이 세상에 잠깐 머물렀다 떠나간, 말하자면 저의 언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형식을 써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썼다기 보다는 제가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생명과 밝음, 더럽혀질래야 더럽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쓰자 라는 생각에 그냥 썼어요. 산문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어떤 페이지는 시가 되기도 하고, 언니를 상상하며 허구의 사람이 들어오면서 점점 소설에 가까워졌죠. 하얀은 너무 깨끗해서 솜사탕 같은 느낌이라면 흰이라는 상태엔 삶과 죽음의 서늘함이 모두 담겨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실점 너머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만난 ‘흰’ 것들 꿈에서 본 듯한 이미지를 옮겨온 작가의 회화적 역량을 발휘할 기회도 생겼다. 아예 책 자체를 텍스트와 이미지가 대화를 하듯 구성한 데 이어 사진 작업을 진행한 미디어 아티스트 차미혜와 함께 다음달 3~26일 오뉴월:이주헌에서 전시 ‘소실.점’을 준비한 것. 잠시 펜을 내려놓은 한 작가는 말 대신 몸으로 ‘배내옷’ ‘돌?소금?얼음’ ‘밀봉’ ‘걸음’ 등 4편의 퍼포먼스 영상을 선보인다. 말의 죽음을 통과해 태어난 지 2시간 만에 죽은 언니를 만나고 보내기 위한 의식을 치르는 셈이다. 이는 다시 남겨진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원래 시각 미술은 제게 중요한 분야였어요. 어렸을 때 같이 살던 막내 고모가 미대를 다니셨고 항상 제게 모델을 서게 하셨거든요. 그 방에 가면 그림 도구가 가득했기 때문에 친근한 느낌을 가지고 성장했죠. 미술 작품을 볼 때 제가 빠져드는 상태가 있는데 그 안에 머물러 있는 걸 좋아합니다. 일부러 미술에 대해 쓴다기보다는 워낙 좋아하니까 스며든다는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감사하게 생각해요. 언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바탕 난리법석을 치른 그녀는 이제 다시 동굴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듯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긴 사이를 두며 말하는 그녀의 사전에 쓰인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속히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어하는 모습이었다.


“저는 그렇게 책이 많이 팔리던 사람도 아니고, 이 상황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요. 『채식주의자』도 후보에 오르기 전까지 2만 부 정도 나간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것도 굉장히 많이 팔린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소설이나 시를 대답이나 제안으로 받아들이면 힘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질문으로 여긴다면 이 세상에 어렵거나 지루한 문학작품은 없다고 생각해요. 저뿐만 아니라 조용히 묵묵하게 작품을 쓰시는 동료 선후배 작가들이 너무나 많으니 마음을 조금만 더 여시고 많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더 드릴 말씀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글을 쓰면서 책의 형태로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제 방에 숨어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상을 타고 하는 건 책이 완성되고 먼 훗날의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생각하기에는 여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저는 늘 이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인지 하는 의심과 아마 완성할 수 있을거야 하는 일말의 희망 사이에서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이 세상 어딘가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숙제처럼 여겨왔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편안하고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들의 고통이 줄어들 수 있다면,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고통을 품고 글을 써내려가는 작가의 손길도 훨씬 가벼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ㆍ권혁재 사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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