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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발달장애 학생들의 영어수업 도전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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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경산시 대구대학교 내 대구사이버대 1304호 강의실. 한국·미국의 발달장애 학생들이 미국 발달장애 학생들과 영상으로 영어 토론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 대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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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외곽에 있는 발달장애 교육기관인 메이플브룩학교 학생들이 K-PACE센터 학생들과 영상으로 영어 토론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 대구대]

25일 오전 9시 경북 경산시 대구대학교 내 대구사이버대 1304호 강의실. 100인치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웹캠·마이크가 설치된 타원형 책상에 발달장애가 있는 20~25세 학생 11명이 둘러앉았다. 이 대학 부설 3년제 발달장애 교육기관인 'K-PACE센터' 재학생들이다. 지능지수(IQ)가 초등학교 2~3학년 수준이다. 이 센터의 황창하(48) 팀장이 학생들 앞에 섰다.

"모니터에 조금 후면 여러분 또래 미국 학생들이 나옵니다. 배운 그대로 영어로 이야기를 해봅시다."

곧이어 모니터에 파란 눈에 금발 등 피부색이 다른 미국 학생 5명이 나타났다. 뉴욕 외곽에 있는 발달장애 교육기관인 메이플브룩학교(Maplebrook School) 학생들이다.

한국·미국 학생들은 서로 신기한 듯 쳐다보며 "Hello, Hi"라고 외쳤다. 즐겁다는 듯 혼잣말로 “I’m Junyoung(나는 준영이야)”이라고 중얼거리는 학생, "Fine(좋아)"이라고 계속 소리치는 학생 등 제각각이었다.

센터의 원어민 교사인 머레이 존슨(49)이 "Today’s topic is Self-esteem, Let’s talk about it(오늘 수업 주제는 자신감이다. 함께 이야기하자)”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금동훈(20) 학생이 'esteem' 발음만 듣고는 "east? 동쪽?”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Mistake very. 아니. 아니. many(난 실수를 많이 해). 계속 영어로?”라고 말했다.

경산에서 1만2000㎞나 떨어진 뉴욕 메이플브룩학교의 세라(20·여) 학생도 디지털을 통해 이 주제를 공유했다. "I have many things to talk about the topic(자신감에 대해 할 말이 많아)"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발달장애 학생들이 국내 처음으로 미국 발달장애 학생과 화상 영어 토론 수업에 도전했다. 이날 수업은 40분간 이어졌다. 학생들은 쉬운 영어 단어를 더듬더듬 나열했지만 어떻게든 주제에 맞게 표현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존슨은 "발달장애 학생들의 영어 습득력은 어린이들이 영어를 배우는 것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듣는 그대로 배워 말하기 때문에 오히려 발음이 더 좋을 때도 있다"고 했다.

발달장애 학생들의 이색 디지털 수업은 지난 지난달 결정됐다. 김화수(55·여) K-PACE센터 소장이 미국 발달장애 교육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메이플브룩학교를 찾았다가 젠 스컬리 입학처장과 디지털 수업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영어·한국어 공부뿐 아니라 문화·사고방식의 다름을 학생들에게 쉽게 알려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 소장은 "걱정을 했지만 디지털 수업은 성공적이었다. 앞으로 2주에 한번 매번 다른 주제로 미국 학생들과 디지털 영어 토론 수업을 계속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2011년 개교한 K-PACE센터는 발달장애 전문교육기관이다. 현재 47명의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졸업 후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센터는 발달장애 학생들을 위해 취업 인턴십을 진행하고 미국 해외연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경산=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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