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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피임약 처방약 유지는 여성 자기결정권 침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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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응급피임약에 대해 지금처럼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하는 전문의약품으로 유지하겠다고 결정하자 시민단체 등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여성단체 등 식약처 비판 잇단 성명
“원치 않는 성관계 때 마지막 선택”
약사회 “2년간 약 부작용 사례 없어”
식약처선 “맹신·오남용 가능성 있어”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여성 보건의료단체연합은 24일 식약처의 결정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들 단체는 “응급피임약은 보호되지 않은 성관계를 가진 경우 임신을 피하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라며 “여성에게는 그 마지막 기회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응급피임약을 전문약으로 묶어두는 건 임신에 대한 여성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도 이날 성명을 내고 “여성이 원치 않는 성관계 등으로 긴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임신을 피할 수 있는 합법적인 대안은 응급피임약이 유일하다. 미국 등 대다수 국가에서 일반약으로 판매하는 건 약의 부작용이나 오·남용 우려가 적고, 접근성 제한에 따른 낙태 시술의 위험이 더 크다는 고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응급피임약은 성관계 이후 복용까지 시간이 지연될수록 피임 효과가 급감하는데 지금은 병원이 문을 닫는 휴일이나 야간에 응급피임약이 필요해도 구입하기가 어렵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응급피임약은 일반약으로 지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약사회도 “지난 2년간 응급피임약의 중대한 부작용 보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는 등 일반약으로 전환할 근거가 분명한데도 식약처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조찬휘 대한약사회장은 “주말이나 야간에 응급피임약을 사기 위해 약국에 달려오는 이들을 ‘아침에 처방전 받아 오라’며 돌려보낼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며 “여성의 건강권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일반약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캐나다·독일·프랑스·스위스·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에 비해 사전피임약은 색전증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의사의 처방을 받아 복용하도록 규정한 나라가 많다.

당초 식약처도 이러한 점을 감안해 2012년 의약품 재분류를 논의하면서 사전피임약은 전문약으로, 응급피임약은 일반약으로 분류하는 안을 내놨다. 하지만 산부인과의사회와 종교계의 반발로 이러한 방안의 시행을 보류했다. 이후 3년간 국내 피임약 사용 실태 조사와 부작용 등을 연구해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식약처 김상봉 의약품정책과장은 “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하게 되면 이것만 먹으면 다 된다는 식으로 맹신하고 오·남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의약품을 분류할 때는 사회 전반적인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약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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