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代作) 시비에 휘말린 조영남씨는 내심 억울할지 모른다. ‘아니 그럼 내가 몽땅 그렸을 것이라 진짜로 믿었어? 왜 이래 선수끼리. 내 스케줄 알잖아, 퀴퀴한 방에 처박혀 온종일 붓질 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일부분이든 전체든 제3자가 그리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게 꺼림칙했다면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시치미 떼지 않았겠나. 대신 그는 “미술계 관행” 운운했고, “앤디 워홀이나 데이미언 허스트 등도 보조 작가를 둔다”며 그럴듯한 논리를 댔다.
검찰은 조씨에게 사기 혐의를 둔다지만 수사는 만만치 않을 듯싶다. 판매액을 돌려주는 등 조씨가 구매자를 회유했다는 정황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조영남 화투 그림을 샀는데, 이건 아니지”라고 선뜻 나설 이가 있을까. 그랬다간 “작가보다 작품이 좋아 산 거 아니야?”라는 핀잔만 들을 게 뻔하다. 자칫 안목은 형편없고, 유명세에만 의존했음을 자인하는 꼴이니 말이다. 심지어 “7년간 화투 그림 200여 점을 그렸다”고 폭로한 송기창 화백마저 본인이 실컷 그린 것을 “이거 조영남이 그렸어. 갖고 있으면 돈 될 거야”라며 주변에 건넸다는 후문이니, 요지경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진실이 무엇이든 수천만원까지 호가한다는 조영남 그림 값이 단지 실력 덕분만은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이번 대작 시비는 한국 사회의 ‘유명인 물신주의(勿信主義)’(한신대 윤평중 교수)의 일그러진 단면이다.
“인지도가 갑(甲)”이라며 현대 사회가 셀레브리티를 추종한다지만 유독 대한민국의 증상은 심각하다. “욕을 실컷 먹어도 알려지는 게 낫다”는 정서다. 왜 그럴까. 서울시립대 서우석 교수는 “한국에서 지명도 이외의 다른 상징 자본은 무너졌다”고 분석한다. 대종상 수상보다 ‘1000만 영화’가 자주 언급되고 칭송받는 게 대표적 예다. ‘상’이라는 권위 혹은 전문성은 인정받지 못한 채 오직 명확한 ‘숫자’에만 목을 매는 게 문화계의 현주소다.
알려지는 것에 집착하는 만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종종 적의감마저 드러낸다. 내가 알면 선(善)이요, 모르면 악(惡)이다. 이런 풍토에서 낯설지만 어딘가에 숨어 있을 보석을 찾아 나설 리 만무하다. 스타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유명 인사에게만 일이 쏠리는 이유다. 그러면 유명인은 몰려오는 요청을 감당하지 못한 채 그저 얼굴마담 행색만 하거나 얼추 컨셉트만 잡고는 실제 일은 다른 이에게 떠넘기곤 했다. 관행이란 미명하에 여태껏 예술계가 지탱해 온,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렇게 짜고 치는 고스톱인 줄 뻔히 알면서 어느 날 느닷없이 “왜 네가 직접 하지 않니?”라고 정색하고 따지니 “어차피 내 이름만 필요한 거잖아. 이제 와서 왜 딴소리야!”라며 외려 떵떵거리는 것 아닐까. 유명세만을 최고의 가치로 숭배하는 한 제2, 제3의 조영남은 또 등장할 것이다.
최민우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