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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찰 74조원 주겠다…바이엘, 몬산토 인수 베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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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독일 제약그룹 바이엘이 빅딜에 나섰다. 상대는 세계 최대 종자그룹 몬산토다. 바이엘 회장 베르너 바우만이 23일(현지시간) 몬산토 최고경영자(CEO)인 휴즈 그랜트에게 “현찰 620억 달러(약 74조4000억원)를 주고 몬산토를 사겠다”고 제안한 내용을 공개했다. 바이엘은 메이저 제약그룹이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종자-농화학 분야에서도 톱10에 들어가는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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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는 지난 12일부터 빅딜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바이엘이 400억 달러 정도에 몬산토를 인수하려 한다’라는 루머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인수합병(M&A) 제안 가격이 소문보다 30% 이상 높았다.

종자 8위 기업이 1위 인수나서
몬산토 주가 껑충, 바이엘 급락
거대 GMO 제국 탄생 가능성

시장에서는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논란이 벌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 월가 전문가의 말을 빌려 “바우만이 최대치를 써낸 듯하다”고 전했다.

바우만의 시도는 우호적 M&A가 아니다. 그렇다고 적대적 M&A도 아니다. 월가 사람들이 부르는 ‘베어 허그(bear hug, 힘찬 포옹)’다. 인수하려는 쪽이 피인수기업 주주들에게 M&A 당위성을 설파하는 방식이다.

바우만은 제안서에서 “진정한 세계 농업 리더를 만들자”며 “몬산토 주주에게 이번 거래는 훌륭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몬산토 쪽은 일단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했다. WSJ는 “몬산토 주식을 보유한 펀드들은 바이엘 제안을 환영하지만, 몬산토 경영진의 지침을 기다린다는 쪽”이라고 전했다.

빅딜이 성사되면 사상 최대 현금 M&A가 된다. 톰슨로이터는 “종전 현찰 M&A 기록은 2008년 맥주회사 빅딜인 안호이저부시-인베브(602억 달러)였다”고 소개했다.

워낙 큰 베팅이다 보니 바이엘 주요 주주들의 반발이 거세다. WSJ는 “바이엘 주요 주주인 펀드의 매니저들이 몬산토 사는 일을 마뜩찮아 한다”고 전했다. 한 매니저는 WSJ와 인터뷰에서 “협상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몬산토 가치는 덜 매력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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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람에 M&A 공식화한 23일 몬산토 주가는 4% 급등한 반면, 바이엘 주가는 5% 넘게 떨어졌다. 이날 시장의 판단대로라면 바이엘-몬산토 M&A는 잭 엘치 전 GE 회장이 말한 “포로에 총을 빼앗기는 꼴(reverse hostage)”이 될 수도 있다. 바이엘이 지나치게 많은 돈을 지불하는 바람에 결국 몬산토에 가위눌림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두 회사 빅딜이 이뤄지면 세계 종자와 농화학 업계의 지형이 크게 바뀐다. 이 업계는 1990년 이후 M&A를 통해 집중화가 빠르게 진행돼 됐다. 종전에는 300여 회사가 난립했는데, 1차 짝짓기를 거치면서 이제는 톱10 회사가 시장의 57% 정도를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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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통신은 “종자 업계 8위인 바이엘이 1위를 사겠다고 나선 건 2차 집중화(톱10간 짝짓기)가 본격화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짝짓기가 성공하면 바이엘은 기존 제약에다 농업 바이오를 결합한 거대한 제국이 된다.

영국 런던대학 이어니스 리오니스 교수는 올 2월 보고서에서 “거대한 종자회사가 새로운 유전자변형생물(GMO)을 개발하면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일 수 있는 시장이 종자-농화학 분야”라고 설명했다. 몬산토 경영진은 일단 거절했다. 팔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620억 달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딜이 깨진게 아니다. 두 회사의 밀고당기기는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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