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곽희수의 단편 도시] 도시의 계단은 정원이 될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16.05.25 00:01

업데이트 2016.05.25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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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주민들 반대로 중단한 이태원 계단장
외지인 모이며 임대료 폭등, 민원 속출
지역민 일자리 만드는 꽃계단 조성을

하늘을 긁는다는 의미의 마천루(skyscraper)는 도시 중심부의 상징이다. 그리고 도시 변방에는 하늘과 맞닿은 동네가 있다. 소위 달동네다.

하늘이 붉게 상기될 무렵 달동네의 수많은 지붕과 불빛들은 노을과 어울려 아름다운 도시 풍경을 연출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달동네 사람들의 가파른 삶이 그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달동네의 가파른 계단은 그곳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장소다. 요즘 논란이 되는 이태원 우사단 계단과 이화동 계단도 그런 계단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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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중앙 성원으로 통하는 계단인 이태원 우사단길. 주말마다 이 계단에서 열리던 장터는 지난 3월부터 중단됐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집값이 오르고 주변 상가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민원 때문이었다. 원래 커다란 장미꽃이 그려져 있던 이 계단은 현재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다. 김경록 기자

우사단길에 들어서면 이슬람 중앙 성원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다. 평범하고 조용하던 이 동네는 이 계단에 장이 열리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계단장이라고 불리는 이 장은 청년 장사꾼이 모여 형성했다. 파는 물건이라야 액세서리, 간이 음식, 패션 소품 등이 고작이다. 청년 장사꾼의 목적은 대부분 돈이라기보다 앳된 흥미와 놀이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즐겁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이면 우사단 계단은 여지없이 계단 장터를 경험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계단장은 지난 3월부터 열리지 않는다. 동네에 외지인들이 모여들면서 주변 임대료가 폭등하고 주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민원이 쏟아지면서 중단됐다.

종로구 이화동 벽화마을도 비슷한 경우다. 이곳은 공공 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계단에 벽화가 그려지고 인기 드라마의 배경으로 소개되면서 한류 관광객들 사이에 여행 명소로 떠올랐다. 그런데 얼마 전 이화동 계단의 물고기와 꽃 그림을 주민들이 지워버렸다.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이 사건은 법적인 문제로까지 번진 상황이다.

관광 명소가 된 우사단길 계단

서울에는 계단이 많다. 한국은 산지의 면적이 전 국토의 70% 이상인 산악 지형이다. 서울은 남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다. 그러니 서울에 계단이 많은 건 당연하다. 특히 근대화와 도시 개발의 와중에 도시 중심부에서 밀려난 이들이 산기슭 고지대에 터를 잡았다. 그곳의 주민들에게 가파른 계단은 생활의 공간이다. 그런데 이런 계단에 몇 해 전부터 시작된 공공미술과 도시재생 사업이 이뤄졌다. 계단에 예쁜 그림을 그리고, 계단에 장터를 만들었다.

그런 우사단과 이화동 계단은 도시인들에겐 희귀한 보석과 같은 공간이 아닐 수 없었다. 탁 트인 조망, 미로처럼 펼쳐지는 골목과 계단, 주머니처럼 올망졸망한 공간들은 반듯한 도시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이색적 풍경이다. 꾸밈없고 질박한 동네의 모습과 주민들에게서 느껴지는 순박함은 시계가 멈춰버린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공공미술의 화려함이 보태지고 인기 드라마에까지 조명되었으니 각박한 도시생활에 매력적인 장소로 부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각박한 도시인들에게는 낭만으로, 외국인들에게는 이국적 공간으로 느껴졌다.

문제는 동네 사람들의 놀이터이자 친교 공간이던 가파른 계단과 비좁은 골목이 관광 명소로 바뀌는 바람에 주민들의 생활 환경이 송두리째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외지인들의 낭만과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부딪히기 시작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행정당국이 주민들에게 법적으로 손해를 따지고, 어렵사리 만든 도시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게 유일한 방법일까.

계단에 꼭 필요한 게 장터일까

문제의 핵심은 계단을 공공재로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그곳에서 생활하는 주민들 모두가 만족할 만한 프로그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계단 같은 도시 공공의 인프라를 그 사용 권리만을 중심으로 보는 건 이해 당사자들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 지역 주민도, 계단을 활용하려는 이들도, 모두 시민이고 동등한 사용의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모두가 상생할 방법을 중재하고 대안을 찾는 것이 도시를 사는 사람들의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계단으로 돌아가 보자. 뉴욕의 도로에는 신문과 잡지 등을 파는 거리 판매대(키오스크)가 즐비하다. 하지만 신문 가판대를 두고 내 상점 앞의 권리를 앞세워 이해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싱가포르에는 음식을 파는 키오스크가 많다. 이 또한 시민들의 원성을 사지 않는다. 공공장소에 자신들에게 유익한 시설이라는 인식이 경쟁 구도를 만들지 않은 것이다.

마찬가지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있는 계단도 그런 쓸모를 찾아야 한다.

우사단 계단 장터 프로그램과 이화동 벽화 환경미화 사업의 공통점은 도시에서 필요하지 않은 시설이 계단에 생겼다는 것, 그리고 주민 참여가 배제된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우사단 계단장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은 불필요한 프로그램이 계단에 접속되면서 생긴 결과다. 장터는 구태여 계단에서가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마트, 편집숍, 심지어 인터넷 쇼핑으로도 가능한 프로그램이다. 계단장은 이웃 상점과 불필요한 경쟁만 초래한다. 계단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계단의 가장 중요한 기능과는 거리가 있다.

주민이 참여하는 도시재생사업

계단에 필요한 것은 다른 기능이다. 계단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곳이다. 또 계단은 사람들이 앉아 쉬며, 도시를 관람하는 스탠드 역할도 한다. 이런 계단의 기본적인 기능 위에 프로그램을 입히면 된다. 그리고 영역을 구분하면 된다. 이웃과의 이해가 충돌하는 건 영역이 구분되지 않아서다. 영역 구분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주민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도시 활용 아이디어는 수명이 길지 않다. 우사단과 이화동처럼 실제 사용자들에게 불편을 주면 문제가 생긴다.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한 뉴욕 프라다 에피센터의 내부 계단은 통로, 이벤트 스테이지, 판매 공간 등 그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을 고려한 디자인이다. 비를 맞지 않고 사람들이 만날 수 있도록 디자인한 쿠알라룸푸르의 파빌리온 쇼핑센터도 계단의 효용성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다.

이웃과의 영역을 구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계단을 사용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서울은 과거 산골이었다. 나무와 숲이 우거진 산길에 접어들면 자연스레 계단이 있었고, 수많은 전설이 그곳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현대도시에서 숲과 나무를 복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꽃계단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파고라(기둥을 세우고 나무를 가로세로 얽어서 포도·장미 등의 덩굴을 올라가게 만든 장치)나 꽃벽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관리는 지역 주민들이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넝쿨, 나팔꽃, 장미 등 계절마다 피는 꽃을 가꾸면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여들고 관리하게 된다. 어차피 공공근로 사업의 예산도 있으니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도 생길 수 있다. 장터가 열린다면 꽃장도 좋겠다. 누가 꽃을 싫어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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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에 기둥벽을 세우고 거기에 꽃과 나무를 설치해 꽃벽을 만들어 보자. 계단 오르내리는데 방해받지 않으면서, 도시 속 정원을 거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스케치 곽희수]

이태원 일대만 해도 우사단을 포함한 40여 개의 계단이 있다. 이곳이 꽃계단이 된다면 도시 가꾸기에 기여할 수도 있다. 계단이 꽃을 갖게 되면 지역 주민들도 꽃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을 반갑게 대할 것이다. 자신들의 수고로 만들어진 길은 오히려 동네에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농업진흥청과 연계하여 야생화를 연구하는 장이 되어도 좋을 듯하다.

서울의 계단은 단순한 통로가 아닌 도시의 정원이 될 수 있다. 대만에서는 자전거에 꽃바구니를 싣고 다니는 이동 정원, 즉 모바일 가든이 유행이다. 수경재배, 도시농업, 루프가든의 목적은 결국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것에 있다. 서울과 같이 계단이 많은 도시에서 꽃계단, 꽃정원은 상상만으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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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희수는 홍익대를 졸업했으며, 현재 이뎀도시건축 대표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KIA 신인건축가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서울시 건축상, 한국공간디자인 대상을 수상했다. 최근 장동건·고소영 주택으로 알려진 신천리주택으로 세계건축상를 받았다.

※  도시는 변화무쌍합니다. 때로 앞면과 뒷면이 다르고, 그 이면에 예상 외의 모습을 감추있고 있기도 합니다. 단편 도시는 도시의 다양한 면면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할 예정입니다.

[건축가 곽희수의 단편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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