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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판사보다 무단횡단에 엄격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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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무단횡단하던 보행자를 차로 들이받아 숨지게 한 혐의(교통사고특례법 위반)로 기소된 택시운전기사가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비슷한 사건을 다룬 일반 형사재판에서는 대부분 유죄가 선고돼 왔던 것과 차이가 나는 결과다.

보행자 숨지게 한 운전자
국민참여재판서 잇단 무죄
판사 재판선 올해 무죄 5%뿐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 김진동)는 최근 택시 기사 A씨(75)가 무단횡단 사망사고를 낸 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7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4월 낮 서울 강남구의 편도 3차선 도로 1차로에서 무단횡단하던 보행자 B씨(61·여)를 들이받아 숨지게 했다.

배심원들은 “A씨는 시속 68㎞(제한속도 70㎞)로 운행했고 사고 도로 주변에 횡단보도가 없었으며 무단횡단을 막기 위한 울타리까지 있었다. 운전자 입장에서 보행자가 건널 것을 예상하기 어려웠던 만큼 과실이 없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냈다.

지난해 말 왕복 11차선 교차로를 무단횡단하던 보행자를 차로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국민참여재판을 받은 회사원 C씨(46) 역시 배심원 전원 일치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배심원들은 “보행자가 6개 차로와 중앙선까지 넘어 C씨가 주행하던 2차로에서 사고를 당했다”며 “C씨보다 보행자의 잘못이 크다”고 판단했다.

참여재판은 7~9명의 시민 배심원이 유무죄와 양형 의견을 제시하면 법관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법원 관계자는 “비슷한 사안에서 주로 유죄 판결을 해 왔던 법관들 사이에선 이례적 결과라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1월부터 이달 23일까지 전국 법원의 무단횡단 사망사고 관련 판결 147건 중에선 금고형(집행유예 포함)이 93건(63.2%)으로 가장 많았고 벌금형이 41건(27.8%)으로 뒤를 이었다. 무죄는 8건(5.4%)에 불과했다.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참여재판에선 일반 시민들의 다양한 시각이 반영된다”고 말했다.

이유정·정혁준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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