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종려상 켄 로치 “가난이 너의 잘못이라는 건 잔인”

중앙일보

입력 2016.05.24 01:26

업데이트 2016.05.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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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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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의 나이로 두번째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영국의 켄 로치 감독. [사진 AP=뉴시스]

“우리는 다른 세계가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외쳐야만 한다.”

‘아이, 다니엘…’로 두번째 수상
복지사각지대 노동자 투쟁 그려
‘아가씨’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176개국에 판매 신기록 세워

‘아이, 다니엘 블레이크’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켄 로치(80) 감독의 수상소감에 박수가 터졌다. 영원한 ‘블루칼라의 시인’다운 발언이었다.

22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제69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이 열렸다. ‘아이, 다니엘 블레이크’는 복지의 사각지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투쟁과 연대를 그린 영화. 영국의 노장 감독은 건재를 입증했다. ‘앤젤스 셰어:천사를 위한 위스키’(2012), ‘지미스 홀’(2014) 등 통렬함이 다소 떨어졌던 최근작과 달리 노동자 문제를 파고드는 장기가 제대로 발휘됐다.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유럽의 금융위기를 언급하며 “신자유주의의 이상이 세계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지미스 홀’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던 그가 아직 할 얘기가 많다며 영화계로 돌아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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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사각지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투쟁과 연대를 그린 그의 영화 ‘아이, 다니엘 블레이크’. [사진 AP=뉴시스]

그는 앞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50년 전 만들었던 ‘캐시, 집에 오다’와 비슷한 작품을 아직도 만들어야 한다는 현실이 놀라울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캐시, 집에 오다’(1966)는 탁상공론에 빠진 복지정책으로, 한 가족이 해체되가는 이야기를 담은 TV영화다. 그는 “소외 계층의 문제는 영국뿐 아니라 오늘날 유럽 전체의 일”이라며 “이들에게 ‘가난은 너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잔인함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에 이어 두 번째다. 지금까지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받은 감독은 장 피에르·뤽 다르덴 형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미하엘 하네케 등 7명이다.

올해 경쟁 부문이 스타 감독들의 ‘올스타전’이라 불렸던 것과는 달리 결과물은 아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켄 로치가 체면치레를 하긴 했지만 언론 평가가 박했던 작품들이 대거 수상 명단에 올랐다. 특히 영화제 초반 공개돼 높은 평가를 받았던 독일 출신 여성 감독 마렌 아데의 ‘토니 에드먼’과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 영화제 후반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폴 버호벤 감독의 ‘엘르’가 어떤 트로피도 받지 못한 점을 꼬집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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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대상 수상작 ‘단지 세상의 끝’의 감독 자비에 돌란(27). [사진 AP=뉴시스]

미국 일간지 ‘LA 타임스’는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조지 밀러 감독과 심사위원단을 향해 “어떤 영화가 상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좀 덜 딱딱하고 더 섬세한 개념을 갖춘 심사를 했어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평점이 낮았던 자비에 돌란 감독의 ‘단지 세상의 끝’,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아메리칸 허니’,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퍼스널 쇼퍼’가 각각 심사위원대상·심사위원상·감독상을 수상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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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대상 수상작 ‘단지 세상의 끝’. [사진 AP=뉴시스]

특히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한 캐나다 감독 돌란(27)은 논란 속에서도 ‘칸의 기린아’임을 입증했다. 그는 20세 때 만든 장편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로 2009년 칸에 입성한 이후, 2014년 ‘마미’로 심사위원상 수상, 2015년 26세의 나이로 심사위원에 선정되는 등 칸의 총애를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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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아가씨’(6월 1일 개봉)는 뜨거운 관심을 모은 것과는 달리 본상 수상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176개국 판매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설국열차’(봉준호 감독)가 세운 167개국 판매 기록을 넘어 한국영화 역대 최다 국가 판매 기록이다. ‘아가씨’는 이미 지난해 아메리칸 필름 마켓, 올 초 유로피안 필름 마켓과 홍콩 필름 마트 등에서 120개 국가에 선판매된 바 있다.

미드나잇 스크리닝으로 선보인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7월 개봉),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나홍진 감독의 ‘곡성’ 역시 호평 받았다. 미국 연예지 할리우드 리포터는 “나 감독은 이가 덜덜 떨리는 공포와 웃음 사이에서 영화의 어두운 스타일을 훌륭하게 조절했다”고 평했다. 티에리 프레모 칸 위원장 역시 “나 감독은 다음에는 경쟁부문에 오게 될 것”이라며 애정을 표했다.

장성란·이은선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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