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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도마 오른 공정위의 ‘솜방망이 처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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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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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숙
경제부문 기자

시민단체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임홍규 팀장은 지난달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 사무관이라고 밝힌 사람의 주장은 이랬다. “가습기 살균제 업체에 대한 공정위 과징금은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다.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이란 표현을 더 이상 쓰지 말아달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011년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고발해온 단체다.

2012년 7월 공정위는 가습기 살균제를 인체에 ‘안전한 성분’ 또는 ‘무해한 성분’이라고 광고한 옥시레킷벤키저와 홈플러스, 버터플라이이펙트 3개사에 과징금을 매기고 검찰에 고발했다. 옥시레킷벤키저에 5000만원, 홈플러스와 버터플라이이펙트엔 100만원씩이었다. 같은 혐의로 신고된 롯데마트와 글로엔엠은 과징금 없이 경고 조치만 받았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회사를 대상으로 한 첫 법적 조치였다. 당시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과 함께 공정위 청사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무해하다고 광고한 기업에 5000만원, 100만원 과징금은 솜방망이 처분”이라며 항의 시위를 했다.

4년이 흘러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공정위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임 팀장은 “당시 옥시 제품으로 인한 사망자 수십 명이 이미 확인된 상태였고 경고 처분에 그친 롯데마트 제품으로 인한 사망자도 있었는데 솜방망이 처분이 아니고 뭐냐”며 “공정위 처분을 계기로 검찰 조사가 시작됐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관련 매출액의 1%까지 과징금을 매기도록 한 표시광고법에 따라 최고 처분을 한 것”이라 항변하며 예를 하나 들었다. “도로교통법을 어기고 과속을 한 차량이 사람을 치어 숨지게 했다고 해도 도로교통법으로는 과속 벌금 몇 만원을 매길 수밖에 없다. 사망사고는 도로교통법 대신 형법으로 처벌해야 할 대상이다. 표시광고법도 마찬가지다.”

표시광고법은 허위·과장 광고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법의 허점이 드러났다. 독극물에 ‘안전’ 딱지를 붙인 것과 같은 기만 행위가 가능하다는 게 확인됐다. 도로교통법에도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음주운전에 대해선 징역형으로 다스리는 조항이 있다. 표시광고법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이미 있다. (한국소비자원 『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 법제 및 사례 연구』) 공정위는 현행법을 내세워 솜방망이 처분이 아니라고 우기기 전에 실효성 있는 처벌이 필요하다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건 아닐까.

조현숙 경제부문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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