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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손실 줄이고 재기 응원할 ‘폐업교육’도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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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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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환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우리 경제에서 폐업은 연간 80만 건에 달한다. 저성장 고착화는 물론 해운·조선 같은 대기업 구조조정과 함께 폐업은 더욱 늘어날 걸로 우려된다.

그런데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 제목에 ‘창업’이 들어간 책을 찾아보면 1400여 권이 검색되는 반면 ‘폐업’이 들어간 책은 두 권뿐이다. 우리 사회는 “갖은 실패와 과오를 딛고서야 성공할 수 있으니 절대로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다. 온통 창업에 관한 교육과 지원에만 쏠리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관심이 폐업 쪽에도 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첫째, 폐업 과정 자체에 대한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다. 벌여놓은 사업을 축소하거나 정리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다. 특히 소상공인이나 신생 벤처의 경우 사업 전환 모색에 활용할 여유 자원이 없다. 무엇보다 폐업을 고려한다는 소문이 나면 종업원·거래처·금융회사 등이 크게 동요하기 때문에 상담을 하거나 조언을 구할 엄두를 못 낸다. 그러다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큰 손해를 보면서 문을 닫곤 한다.

하지만 사업을 접는 것이 더 큰 손실을 줄이기 위해 신중히 내린 판단이라 생각하고 설비·집기 매매, 점포·사무실 양도, 세무·행정적 처리 과정에서 손실을 최소화하면 ‘재기’를 위한 용기를 얻는데 큰 힘이 된다.

둘째, 실패로부터 배우고 그것을 통해 ‘재기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교육도 있어야 한다. 경영학 서적이나 교실에서 통상적으로 다루는 소재는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나 제너럴일렉트릭(GE) 같은 거대 기업이 많다. 그러한 스토리는 비전과 안목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를 헤쳐나가는 데 활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오히려 몸으로 경험한 실패가 내게 맞는 ‘성공의 열쇠’를 스스로 다듬어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오류를 범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적나라하게 끄집어내고, 거기서 실패의 핵심 원인을 찾아내고, 도출된 교훈을 머리와 가슴 속에 프로그램화하는 게 우선이다. 또 첫 창업을 앞둔 사람이라면 기존의 실패 사례를 소재로 간접 학습을 통해 더 철저한 창업을 준비할 수 있다.

셋째, 폐업이 안겨준 심리적 충격과 좌절을 극복하게 돕는 교육과 훈련도 중요하다. 사회심리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서구는 물론 같은 동양권인 중국에 비해서도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월등히 심하다. 그래서인지 안정적 직업을 구할 수 있을 때엔 창업을 하거나 벤처에 취업하지 않다가 은퇴 뒤 떠밀리듯 생계형 자영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의 실패 충격을 줄이기 위해선 자신의 도전이 갖는 의미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주눅 든 심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교육, 아쉬움과 후회는 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실패의 만회는 자숙이 아니라 재기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에 제2, 제3의 도전에 나설 수 있는 힘을 스스로 키울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지환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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