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 폐 손상은 빙산의 일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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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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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택 기자 중앙일보 차장

가족 건강을 위한다며 사용했던 가습기 살균제가 임산부·신생아를 비롯한 무고한 생명을 130명 넘게 앗아가는 희대의 사건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광고까지 해 가며 판매에 열을 올리던 제조사들은 사건이 불거지자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이다. 이를 보는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 사건이 이 지경이 되도록 제대로 손을 쓰지 못했던 정부는 속 시원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우와좌왕하는 상황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앞으로 이런 일의 재발을 막으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환경성 질환과 화학물질 관리 전문가인 임종한(인하대 의대 작업환경의학과 교수) 환경독성보건학회 회장을 만나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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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한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은 정부와 기업의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의식 부족이 부른 인재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에 소비자 안전 책임을 지우고 시민사회가 이를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오종택 기자]

지금까지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에게서 중증 폐 손상만 확인됐는데 다른 유형의 피해는 없나.
“간이나 콩팥에 대한 독성이나 태아에 미치는 영향까지는 아직 확인이 되지 않았을 뿐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관련 자료를 축적하는 단계다.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자료가 나오기 시작했다. 유해물질은 폐에 국한되지 않고 전신을 따라 돌 수 있다. 따라서 폐뿐 아니라 다른 장기에도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동물실험 결과로도 확인됐는데 태반을 통과해 태아에 영향을 끼치고 있을 가능성도 커 보인다.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되고도 생존한 아이가 있었는데 폐 기능이 잘 발달하지 않았고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니 폐 손상 소견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그것은 태아 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임신 중에 태반을 통과해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에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인과관계를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이런 부분의 독성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기반이 돼 피해 범위 자체가 중증 폐 손상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부위까지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역학조사, 새로운 사례연구, 동물실험 결과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전문가들끼리 모여 이야기하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현재 진행 상태라는 게 중론이다. 일부 성분은 발암성도 의심할 수 있어 노출 몇 년이 지난 뒤에 암 발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이 폐 손상뿐인 것이지 앞으로 암이나 간, 신장 손상 등 어떤 문제가 새로 나올지 모른다는 것인가.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자연환기가 잘 안 되는 환경에서 고농도로 쓴 경우가 많아 문제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지금까지 매년 40만 명 정도가 의미 있는 노출이 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렇게 20년을 사용했다면 실제 노출자는 800만 명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 물론 인간은 자연치유 능력이 있어 노출된 사람 전부가 피해자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노출자가 많은데 어떻게 아직 사망자가 130명에 불과한지를 지적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알려진 피해자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현재의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은 더 큰 비극의 시작일 수도 있다.”
유독 한국에서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발생했다. 도대체 왜 이런 비극이 발생한 것인가.
“배경은 한국이 아파트 중심의 주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아파트의 비극이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를 제외하고 한국처럼 주거 형태로 아파트를 선호하는 나라가 별로 없다. 주거 형태의 50%를 넘을 정도다. 그런데 아파트에 살게 되면 건조해지기 쉽다. 그러면서 그동안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생활수준도 높아졌다. 이 두 가지 요인 때문에 아파트에서의 가습기 사용이 보편화됐다. 사용하다 보니 물때나 곰팡이 같은 문제가 생기면서 1991년부터 관련 제품이 나왔다. 가습기를 위생적으로 사용하자는 필요성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91년도에 미국에서도 가습기 세정제 출시가 허용됐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이를 다루는 매뉴얼을 만들었는데 거기에는 ‘세척을 한 뒤 물로 잘 헹구지 않으면 가습기 사용 시 살균제가 공기 중에 퍼져 나가면서 호흡기에 들어와 위험하다’는 경고문을 넣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출시 과정 중에 외국의 가이드라인에도 나올 정도의 이런 내용조차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사고는 기업과 정부의 무책임과 무성의가 빚은 인재 측면이 있다.”
EPA 매뉴얼만 확인했어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
“그렇다. 이렇게 놓친 경우가 상당히 많다. 화학물질 관리체계가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아서다. 91년 화학물질을 등록·평가해 유해성 심사를 받도록 했다. 그런데 당시 기존에 2만8000~2만9000개의 화학물질이 있었는데 그 독성을 모두 평가하는 게 부담이었다. 그래서 기존 물질에 대해 기득권을 인정해 유해성 평가를 면제해줬다. 한 해에 20~30개 정도인 신규 물질만 유해성을 평가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오래전부터 써 온 물질은 오히려 어떤 유해성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한마디로 화학물질 관리에 구멍이 숭숭 뚫린 셈이다.
“그렇다. 당시 화학물질 관리는 환경부 소관이었지만 제품 관리는 산업자원부 소관이었다. 그래서 용도 변경은 산자부에서, 화학물질 관리는 환경부에서 했다. 산자부에서는 화학물질 노출에 의한 인체 피해 등을 다룰 수 있는 기반이 없었다. 유해성 평가를 이해하는 전문가도 없었고, 평가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기업이 알아서 ‘자율 인증’을 하도록 했다. 비극의 씨앗이다.”
국민 생명을 정부나 전문가 집단이 아닌 기업에 맡긴 것인가.
“그렇다. 공산품 관리를 하면서 품질관리 기준도 없고 그냥 자체 인증 기준으로만 했다. 인체에 안전성이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KS마크가 찍히기도 했다.”
왜 그런 일이 생겼다고 보는가.
“과학적으로 국민 건강을 보호해야 한다는 합리적인 사고의 부족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산자부의 인식은, 산업 발전을 위한 생각은 있었지만 이것으로 인해 소비가 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피해나 안전에 대한 문제는 관리 시스템 과정에서 아예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모든 것을 환경부에서 맡는 것으로 바뀌었나.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생긴 뒤 생활용품 중에 유해성 평가를 요하는 부분들은 종류를 정해 환경부로 이관했다. 그것도 사고가 나고 난 다음의 일이다. 그만큼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화평법은 2015년 1월부터 시행됐다.”
91년에도 그런 아쉬운 일이 있었고, 2006년 이후에도 학회에 피해자 보고가 나왔는데 정부가 역학조사를 안 했다. 그것도 기회를 놓친 것인가.
“당시 문제 제기를 하고 관련성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역학조사의 기회를 놓쳤다. 질병관리본부 쪽에서 시작했는데 문제는 질본의 체계가 감염성 질환 위주라는 점이다. 만성질환을 일부 다루기는 했으나 전문가가 배치된 쪽은 감염 파트뿐이고 화학물질 사고는 다룰 역량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역학조사 필요성이 제기됐을 때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문적 인력이나 관리체계가 없었기 때문으로 본다.”
화학물질 위해는 한마디로 정부 업무의 사각지대라고 봐야겠다.
“그렇다. 질본에서는 이를 맡을 역량이 확보되지 않았고, 산자부에서는 이를 추진할 능력이 없고, 환경부는 화학물질 관리는 하지만 제품 관리에 대한 능력은 없기 때문에 자기 소관 부서 바깥으로 봤다. 식약처라면 의약외품으로 위생제품 일부는 관리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사실 이번 가습기 살균제는 어떤 정부 부처도 관리할 책임이 없는 사각지대에 위치했다. 사각지대를 제대로 없애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국민 건강과 안전에 관련한 정부의 총체적인 난제라고 봐야겠다.
“정부 시스템이 제대로 안 돌아간 것이 큰 문제다. 정부의 관리 실패가 비극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 시장 실패도 있다. 기업이 흡입독성에 대한 가능성이 충분히 예상되고 출시 당시 PHMG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 유사 계열 물질인 PHMB를 보면 독성 여부를 충분히 추정할 수 있었다. PHMB는 이미 흡입독성과 발암성에 대한 보고가 나온 상태였다. 그런 부분들에 조금만 신경 썼더라면 이런 비극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최소한의 흡입독성 자료도 없이 시장에 출시하고는 안전하다고 광고까지 했는데 무슨 근거로 안전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명백한 과장 광고였다. 원재료 제조사도 문제고 이를 갖고 소비자가 쓸 제품을 만든 제조사도 문제다.”
원료 제조사, 제품 제조사, 유통업체까지 각각 전부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이야기인가.
“원료 제조사는 위해성을 알고 이를 제품 제조사에 넘겨줬을 텐데 자기네들은 최종 소비자 제품에 대한 정보를 몰라 어떤 용도로 쓰이는 줄 알 수 없었다고 변명한다. 이 제품을 직접 만들고 판 제품제조사는 원료 자체의 독성에 대해선 몰랐다고 변명한다. 소비자 생명과 건강이 걸린 사안을 서로 정보를 주고받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사고가 터지자 발뺌과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안전사회로 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한국 사회는 국민 건강 안전과 위험물질 관리 측면에서 지금까지 정부가 할 일, 기업이 할 일, 시민사회가 할 일이 제대로 맡겨지지 않은 채 표류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필요한 정보 제공이라든지, 실험데이터 제공, 소비자 활동, 법률 체계가 총체적으로 미비했다가 이번 사건으로 문제가 한 번에 터진 것으로 봐야겠다. 전에는 정부가 기업만 관리 단속하면 됐지만 이제는 정부 능력만으론 관리가 힘든 시대를 맞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 이를 감시하는 시민사회가 각자 자기 역할을 하고 이것이 서로 균형점을 찾아야만 비로소 안전 체계가 만들어질 것으로 본다. 이제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 시민이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임종한 회장은…

[채인택의 직격 인터뷰] 임종한 환경독성보건학회 회장(인하대 의대 작업환경의학과 교수)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보건학 박사를 받았다. 연세대 의대 산업보건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99년부터 인하대 의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현재 작업 현장이나 환경과 관련한 질환을 중점 연구하는 작업환경의학과 과장을 맡고 있는 이 분야 전문가다. 환경성 질환, 화학물질관리, 직업성 호흡기질환, 고엽제를 주로 연구해 온 소신 있는 학자다. 환경 속의 독성물질이나 요인이 공중보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는 환경독성보건학회 회장으로서 관련 분야를 맡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한 업무도 맡아 왔다.

글=채인택 논설위원
사진=오종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