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식의 야구노트] 몸쪽·바깥쪽 다 때린다, 강정호 신무기 ‘몸통 스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기사 이미지

틀. 지난 2월 미국 플로리다주 브레이든턴에서 만난 강정호(29·피츠버그 파이리츠)는 야구선수들이 좀처럼 쓰지 않는 ‘틀’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왼다리를 들었다가 내딛는 타격폼(레그킥)에 대해 인터뷰를 하던 중 “이제 타격의 틀이 잡혔으니 다리를 들고 안 들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병호처럼 허리회전 활용해 타격
155㎞ 몸쪽 직구 받아쳐 4호 홈런
지난해엔 바깥쪽 높은 공에 강점
레그킥 약점 보완해 또 한번 진화

당시 강정호가 했던 말은 잘 와닿지 않았다. 틀을 문자 그대로만 이해했던 탓이다. 지난해 9월 수비 도중 왼 무릎을 크게 다친 그는 수술과 재활훈련을 마치고 지난 7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원정경기에 출전했다. 232일 만의 메이저리그(MLB) 복귀전에서 그는 연타석 홈런을 터뜨렸다.

기사 이미지

강정호는 올 시즌 8경기에서 타율 0.292, 홈런 4개를 기록 중이다. 아직 24타수 밖에 되지 않지만 장타율은 0.875에 이른다. 남들보다 출발이 한 달쯤 늦었고, 몸상태가 100%가 아닐 텐데도 그는 무섭게 치고 있다. 그가 말한 ‘틀’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건 MLB에서 생존하는 매뉴얼이자, 자기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다.

폼. 강정호는 16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경기에서 9회 상대 마무리 투수 헥터 론돈으로부터 좌월 솔로홈런을 뽑아냈다. 슬라이더 6개가 잇따라 날아드는 동안 차분히 기다렸던 그는 7구째 빠른 공(시속 155㎞)이 몸쪽으로 파고드는 걸 놓치지 않았다.

MLB 전문가인 송재우 해설위원과 대니얼 김 해설위원(이상 MBC 스포츠플러스)에게 이 장면 분석을 요청했더니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마치 박병호(30·미네소타 트윈스)의 몸통 스윙을 보는 것 같았다.”

강정호가 슬라이더를 건드리지 않자 론돈은 풀카운트에서 빠른 공을 선택했다. 송 위원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강정호가 ‘실투를 때린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아주 빠른 공이 몸쪽으로 꽉 차게 들어갔다. 양팔이 상체에서 붙은 채 몸통 회전력으로 홈런을 날리는 박병호의 스윙을 강정호가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실투만 받아쳐서는 30홈런 이상을 칠 수 없다. 강정호의 타격 폼은 완성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폼은 틀보다는 작은 개념이다. 틀이 잡힌 이상, 폼은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존. 지난해 이맘때 강정호는 레그킥 논란에 시달렸다. 하체를 움직여 중심이동(weight shift)을 하면 파워를 모았다가 폭발하기에 유리하다. 그러나 왼다리를 드는 순간 타격 타이밍과 코스가 결정되기 때문에 예상 밖의 공에는 쉽게 당한다. 강정호를 비롯해 아시아 타자들이 대부분 레그킥을 쓰지만 많은 MLB 타자들은 양다리를 땅에 붙인 채 허리회전(rotational swing)을 한다. 그래서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공에 잘 대처할 수 있다.

송 위원은 “지난해 7월까지 피츠버그 코치들이 강정호에게 레그킥을 하지 말라고 주문한 것으로 들었다. 이젠 누구도 강정호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며 “올해 강정호는 항상 왼다리를 들었다가 친다. 홈런 4개도 레그킥을 하면서 스트라이크존 좌·우를 잘 공략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현재 피츠버그 타선에서 경계대상 1호가 강정호다. 투수들이 최대한 신중하게 공을 던지지만 강정호는 좌·우로 제구가 잘된 공도 장타로 만들어낸다. 지난해 강정호의 히팅존은 바깥쪽 높은 쪽에 형성됐다. 올 시즌 ‘강정호 존’은 더욱 넓어졌다.

꿈. 강정호는 16일 컵스전에서 7회 결승 2루타, 9회 쐐기포를 날리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클린트 허들 피츠버그 감독은 “강정호의 활약이 믿을 수 없다고? 아니다. 그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특별한 선수”라고 말했다. 한국 프로야구 타자 최초로 MLB에 진출한 강정호는 1년 만에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 됐다. 그를 따라 박병호·이대호(시애틀 매리너스)·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미국에 진출했다.

이제 강정호는 MLB에 적응하는 단계를 벗어났다. 투수들을 자기영역으로 끌어들여서 싸우고 있다. 김 위원은 “강정호의 홈런은 정말 중요한 순간에 터진다. 모두가 인정할 만한 실력을 보여줬고, 자신감도 넘친다”며 “꿈 같은 얘기라고 할지 몰라도 강정호는 머지않아 피츠버그의 간판선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