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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사령관이 아들을 죽이려 하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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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전쟁 통계 [ABC 뉴스]

2014년 12월 28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종료를 선언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시작된 아프간전은 13년이라는 미국 역사상 최장 기간 전쟁 기록을 세우며 끝났다. 종전 선언은 나왔고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은 사살됐지만 아프간의 전쟁은 진행형이다.

국경없는의사회(MSF)가 운영하는 쿤두즈 병원이 폭격 당하고 정부군과 반군의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종전 이후에도 미 중앙정보국(CIA)는 아프간에 공공연히 개입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 당시 사용한 사적 e메일에서 CIA에 고용된 아프간인을 언급하기도 했다.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대위가 유엔 직원을 구출하기 위해 작전을 펼친 곳도 바로 아프가니스탄이 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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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쿤두즈에서 폭격당한 MSF 운영 병원 [MSF]

뉴욕타임스(NYT)는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 전쟁의 한 장면을 보도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기 위해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반인륜적인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 북부 파르야브주 정부군 사령관인 압둘 바시르는 13일 밤 카이사르 지역 작전 수행을 위해 총을 챙겼다. 탈레반에 가입한 아들 사이드 무함마드(22)가 다른 탈레반 전투원들과 머무르고 있다는 정보를 확인해서다.

깊은 밤 작전지역 건물 앞에 도착한 바시르 사령관은 부대원들에게 진입 명령을 내렸다. 3층으로 진입했을 때 건물은 비어 있었다. 바시르 사령관은 대원들과 함께 2층으로 진입했고 아들 무함마드가 도망치는 걸 목격했다. 바시르 사령관은 망설이지 않고 소련제 칼라슈니코프 소총을 발사했다. 아들은 창문으로 떨어졌고 그는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전 후 확인한 3명의 탈레반 시신에서 아들은 발견할 수 없었다. 바시르 사령관은 “사살했다고 생각했는데, 머리에 부상을 입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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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에서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을 수행해 온 미군의 작전 장면
[마린콥스]

카불대학의 파줄라 자랄 정치학 교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같은 가족이 서로 다른 진영에 서서 싸우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라며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전투를 벌이는 건 수천건이나 될 것”이라고 말했다.

40대인 압둘 바시르 사령관도 고등학교 1학년이던 15살에 총을 들었다. 소련의 분해는 아프가니스탄의 힘의 공백을 가져왔고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이 시작된 거다. 2001년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이 터진 후엔 탈레반 소탕에 화력을 집중했다. 바시르 사령관은 “최소 150명 이상의 탈레반을 내 손으로 사살 했다”고 말했다.

비극은 5년 전 잉태됐다. 고등학생이던 아들 사이드 무함마드가 탈레반과 관련된 지역 모임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바시르 사령관이 다른 지역 전투에 나간 동안 사이드 무함마드는 탈레반의 정식 전투원이 됐고 아버지의 소총 한정과 42개의 탄창을 훔쳐 달아났다.

바시르 사령관은 분노했지만 아들이기에 용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다른 지역 주민들을 통해 아들을 설득했고 아들은 결국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아들이 탈레반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군에 입대시켰고 사이드 무함마드는 2년 반 동안 복무했다.

아들이 제대한 후에도 바시르 사령관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파르야브주는 탈레반에 둘러 쌓여 있었고 아들의 배신은 치명적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지난해 아들은 아버지의 의심을 견디지 못하고 탈레반으로 다시 도망쳤다. 둘째 아들인 압둘 라만(20)도 함께 탈레반에 가입했다.

바시르 사령관은 아들에게 몇 차례 회유를 권유했지만 아들은 “나를 죽여라”는 답만 돌려보냈다. 결국 아들이 돌아올 희망이 없다는 판단을 한 그는 아들을 직접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어두운 밤 작전을 감행했다. NYT는 “결국 아들 무함마드는 살아남았지만 사령관의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바시르 사령관은 “그는 탈레반이고, 나는 탈레반에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며 “그를 다시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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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세력권 [헤리티지 재단]

바시르 사령관 가족의 비극 뒤에는 아프가니스탄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이 있다. 1980년대 소련이 아프간을 세력권에 둔 시기 미국은 CIA를 통해 무장세력 무자히딘을 지원했는데 이 자금과 무기가 탈레반 태동의 원인이 됐다.

탈레반은 1996년 아프간의 권력을 잡고 이슬람근본주의를 강조하며 세력을 떨쳤지만 결국 미국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이 개입하며 정권에서 축출됐다. 하지만 미국이 이라크전을 수행하며 아프간에 대한 관심이 줄었고 여전히 국토의 절반이 탈레반의 영향권에 놓여 잇는 상황이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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