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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세제 불안, 직접 만들어 쓸래요” 노케미족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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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상암동의 H대형마트 세제 코너. 주부 김보미(40)씨가 섬유유연제 뒤에 적힌 성분 표시를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었다. 김씨는 제품 하나하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둘 뒀다는 그는 “전에는 대기업이 만든 제품이면 의심 없이 샀는데 옥시 사태 이후 꼼꼼하게 살피게 된다”며 “애들도 있고 해서 최대한 인체에 무해하고 친환경성분이 들어 있는 제품을 구매하려 한다”고 말했다.

시판제품 화학성분 공유하고
베이킹소다 등 대체재 정보
온라인 카페, 모바일 앱 인기
최근 한 달 친환경 세탁세제 판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3% 늘어

딸과 함께 장을 보러 온 주부 박옥분(60)씨 역시 “물건을 살 때 옥시 제품은 일단 제외한다. 웬만한 화학제품은 다 친환경제품으로 바꿔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그는 “계피로 방향제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딸이랑 한번 만들어 보려 한다”고 덧붙였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이후 김씨나 박씨처럼 화학제품 사용 자체를 꺼리거나 친환경제품만 구입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들은 화학물질(chemicals)이 들어간 제품을 거부한다는 뜻에서 일명 ‘노케미(No-chemi)족’이라 불린다.

노케미족 가운데 상당수는 화학제품 대신 천연재료로 방향제·세제 등을 직접 만들어 쓴다. 샴푸·린스 대신 식초·천연비누를 사용하거나 아예 샴푸를 쓰지 않고 물로만 머리를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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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온라인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친환경 세탁 세제와 주방 세제의 최근 한 달(4월 13일~5월 12일)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63%, 78% 증가했다. 베이킹소다·구연산의 판매량도 45% 늘어났다. 베이킹소다와 구연산은 화학적으로 만든 세제나 탈취제를 대체할 수 있는 재료로 쓰인다.

온라인 카페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일상용품에 든 화학성분이나 화학제품 대체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노케미족도 많다. 지난 7일 네티즌(iill****)이 포털사이트 카페에 “옥시 제품은 이제 안 쓰려 한다”며 “변색된 수건이나 속옷을 세탁할 때 쓸 대체용 세제를 알려 달라”는 글을 남기자 “베이킹소다를 쓰라” 등의 답글이 수십 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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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성분 등을 표시해 주는 모바일 앱 ‘화해’.

화장품의 화학성분 등을 표시해주는 ‘화해(화장품을 해석하다)’ 앱(2013년 출시)도 최근 급속히 사용자가 늘어나 누적 다운로드가 200만 건이 넘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정선혜(27)씨는 “옥시 사태 이후 ‘화해’ 앱으로 유해성분을 먼저 확인하고 화장품을 구입한다”며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챙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케미족 사이에선 섬유탈취제의 유해성 논란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일부 섬유탈취제에 든 제4기 암모늄클로라이드가 폐에 치명적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임종한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는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섬유탈취제의 제품 이름)를 분무한 후 흡입해 폐에 들어가면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후 온라인 카페 등에는 “집에 있는 ○○○○를 다 버렸다” “어린이집에서 사용되지 않는지 걱정이다” 등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노케미족 확산에 대해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화학제품은 전문가가 아니면 정확한 위험 정도를 알기 힘들다. 따라서 한번 불신이 생기면 계속 커가게 된다. 옥시 사태 이후 소비자 스스로 위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고 말했다.

채승기·홍상지 기자 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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