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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은 원천기술의 총합, 미·일과 10년 기술격차 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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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호 5 면

오준호 교수가 휴보를 끌어안고 있으니 마치 부자(父子)지간처럼 닮은꼴이다. 현재 오 교수가 만들고 있는 휴보는 키 1m20㎝의 일반 인간형 로봇 휴보와 키 1m70㎝의 재난대응용 DRC 휴보 두 가지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휴보 아빠’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KAIST 오준호(62) 교수를 언뜻 보면 일본 로봇 만화영화의 원조 ‘우주소년 아톰’이 떠오른다. 1m65㎝의 아담한 키, 동그란 얼굴, 살짝 ‘개구진’ 환한 웃음은 일본 최초의 로봇 만화영화 속 주인공 아톰을 쏙 닮았다. 사실 그는 첫인상처럼 재미와 호기심으로 가득 찬 과학자다. 대전 KAIST의 오 교수 연구실 ‘휴보랩’은 로봇 연구개발의 공간인 동시에 놀이터다. 연구실 건물 옥상은 제자들과 함께 만든 천체망원경이 자리 잡은 사설 천문대다. 그는 밤늦도록 연구실에 남아 별과 인공위성을 관측한다. 때때로 기타를 치고 플루트를 연주하는 음악가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는 공자의 말이 떠오른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다 보니 큰 열매가 맺었다. 올 들어 오 교수에게 상복(賞福)이 쏟아지고 있다. 관(官)과 민(民) 최고의 상이 그에게 몰리고 있다. 제49주년 과학의 날이던 지난달 21일 그는 과학기술 진흥에 기여한 공로로 과학기술 훈장 최고 등급인 창조장을 받았다. 다음달 1일에는 제26회 호암(湖巖)상 공학상을 받는다. 호암상은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호를 따서 1990년 제정된 상이다. 매년 학술, 예술 및 사회발전과 인류복지 증진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물을 선정해 시상한다. 상금만 3억원, 순금 50돈짜리 메달도 수여된다. 지난 10일 대전 KAIST 휴보랩을 찾아 오 교수를 인터뷰했다.


-상복이 터지셨다. “송구하다. 저보다 더 열심히 하시는 분도 많은데, 성과가 좋다고 큰 상 주는 것 좋지만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노력을 많이 하신 분들의 빛이 바랄까 봐 어깨가 무겁고 조심스럽다. 보다 더 책임 있게 연구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초대된 재난대응용 DRC 휴보.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세계재난로봇대회에서 우승한 챔피언이다(위 사진). 2005년에 공개한 알베르트 휴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얼굴 모습으로 화제가 됐었다(아래 사진). [중앙포토]

그가 만든 휴보는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총회장에 단독으로 초대돼 세계 정상의 정·재계 지도자들 앞에 섰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 포모나에서 열린 세계재난로봇대회(DRC)에서 미국과 일본 등의 최첨단 로봇들을 제치고 우승을 했다. 휴보에 이은 2등이 당초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팀이다. 이 회사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발로 차도 비틀거리다 균형을 잡는 군사용 로봇으로 유명한 곳이다. 2014년 구글이 인수해 화제가 됐다.


-바빠지셨겠다. 근황이 궁금하다. “그러잖아도 갑자기 바빠져 정신이 없다. 올 초 다보스뿐 아니라 최근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글로벌 콘퍼런스에 초청연사로 다녀왔다. 물론 휴보와 함께다. 국내에서도 바쁘다. 지난달 노르웨이 총리 방한 때를 비롯해 국가 행사에 수시로 불려다닌다. 삼성·현대·LG 등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미국·중국·인도 등 해외 투자자들도 많이 찾아온다. 당장 16일부터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국제로봇 콘퍼런스(ICRA)에도 가야 한다.”


-로봇 분야에서 한국과 미·일의 기술 격차는 어느 정도인가. “간단하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다. 미·일과 우리의 전반적인 기술 격차가 곧 로봇 기술의 격차라고 할 수 있다. 로봇 기술이란 여러 분야의 기술이 합쳐진 것이다. 우리는 원천 기술이 모자란다. 휴보에 들어가는 모터와 센서·감속기·자이로 등은 모두 외국 제품이다. 이런 원천 기술이나 부품을 얘기하자면 기술 격차는 10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을 무시할 수 없는 게 바로 이런 탄탄한 원천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우승을 할 수 있었나. “기술이 뛰어나다고 꼭 1등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로봇에 쓰이는 여러 기술 간의 균형이 더 중요하다. 대회에서 우승하려면 기계가 고장 나지 않고 전체 미션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최고의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기술이 뛰어나지만 그런 최고의 기술 상태를 한 시간 이상 유지할 수가 없다. 우리는 외국 부품을 가져와 썼지만, 자체 개발한 운영시스템(OS)과 알고리즘을 통해 최고의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향후 계획, 비전이 궁금하다. 휴보를 어떻게 진화시킬 계획인가. “거창한 것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올해 나의 연구 목표는 아주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휴보를 더 발전시키기보다는 완성도를 높이려고 한다. 소프트웨어도 더 잘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휴보를 좀 더 쉽게 쓸 수 있도록 보강하겠다. 로봇이 두 다리로 걷는 게 멋있어 보이지만, 이게 약점이 많다. 다음 휴보는 하체를 다리 대신 바퀴형으로 만들어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로봇 기술의 핵심인 감속기와 구동기에 관한 원천 연구도 계획하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같은 유압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대부분의 로봇 팔과 다리의 관절은 모터의 힘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들은 유압 시스템을 사용한다. 사람의 팔다리가 근육의 긴장과 이완을 통해 움직이는 것과 유사한 원리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이 마치 살아 있는 동물처럼 동작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정작 구글은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매각한다고 하는데. “아직 소문일 뿐이다. 적극적으로 팔기 위한 액션을 취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부터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일해온 로봇 연구자들과 구글에서 소프트웨어를 해온 사람들 간의 갈등이 흘러나온 것 같다. 로봇이란 게 양면성이 있다. 미래 시장 가능성은 크지만, 현재 돈벌이를 찾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모든 로봇 연구자들이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교수님의 휴보는 인간형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안드로이드 로봇의 역할이 뭔가. “나는 일반인들의 삶 속에서 안드로이드 로봇, 즉 사람과 닮은 다목적 로봇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기술력을 필요로 하고 그래서 너무 비싸다. 휴보 한 대의 판매가가 4억원이다. 로봇이 굳이 사람처럼 생겨야 할 이유도 없다. 로봇은 무인자동차처럼 기능별로 기계에 내장되는 형태로 발전하리라고 생각한다. 문지기 로봇이 왜 필요하나. 문에 그 기능을 넣으면 된다. 나는 휴보가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로봇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휴보는 로봇 기술 연구·교육용이나 일부 전시용 정도의 의미가 있다. 물론 우주나 재난구조 등 일부 특수목적을 위해서는 예외적으로 안드로이드 로봇이 필요할 수 있다고 본다.”


-인공지능 전문가 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수십 년 내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고 로봇과 인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포스트 휴먼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예측도 한다. “나는 2045년이 되어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의 손자 세대가 성인으로 살아갈 22세기 정도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나는 사람은 사람답고 로봇은 로봇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긍정적인 미래가 열릴 것이다. 로봇에겐 인간이 용인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율성만 허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로봇에 종속돼 지배당할 수 있다. ”


-너무 먼 얘기를 했다. 당장 우리나라 로봇기술 등 차세대 먹거리가 고민이다. 국책 과제로 수천억원을 쏟아붓고도 제대로 된 사업으로 이어진 게 없다. “100% 동감한다. 그 이유가 우리나라 국책연구 지원이 1970~80년대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연구과제 제안서를 쓸 때면 현황과 정량적인 목표치, 파급·기대효과 등 옛날 형식을 그대로 쓰게 한다. 그렇게 3년 안에 완성할 숙제만 한다. 사실상 이미 풀린 문제만 풀고, 감당할 정도만 제안하고 있는 셈이다. 도전다운 도전이 없다. 지금 없는 기술을 하려면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국책 과제 평가를 객관·정량적 평가에서 주관적 평가로 바꿔야 한다. 논문·특허 이런 것만 추구하다 보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평가는 만점을 받았는데, 정작 제품이 쓸모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이유다. 결과물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물을 둘러싼 페이퍼를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청와대에 불려가 회의를 해보면 대통령은 물론 장관도 휘하 관료들도 문제점을 다 알고 있다. 이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나는 전문가 시스템 도입을 주장한다. 각 분야 젊은 전문가 3000명을 뽑아 연구를 지원하고, 3년·5년 단위로 한 번만 그러나 철저히 평가하자. 이렇게 10~20년을 하면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키울 수 있다.”


오 교수는 언제부터 로봇 과학자를 꿈꿨을까. 그는 요즘 말로 소위 ‘엄친아’다. 부친은 연세대 오기형(1921~2008) 명예교수, 모친은 11·12대 국회의원과 한국여성정치연맹 총재를 역임한 김현자(88)씨다. 두 분 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교육학자다. 오 교수는 “두 분은 교육철학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라며 “자기 계발은 스스로 하는 것이며, 자신의 역량 또한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저를 그렇게 키우셨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비행기든 로봇이든 만들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신만의 설계집에 연필로 스케치를 하곤 했다. 만화 ‘아톰’ 역시 그가 스케치북에 숱하게 그려 넣은 소재였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의 꿈은 구체화됐다. 연세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것도 그 꿈이 커 나가는 과정이었다. 석사 과정까지 연세대에서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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