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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반 8년간 재범률 0…소년원 선생님의 ‘205호실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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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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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경기도 의왕 서울소년원에서 윤두남 교사가 아이들에게 제빵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 서울소년원]

경기도 의왕시 고봉중·고등학교의 다른 이름은 서울소년원이다. 지난 12일 이곳에 김민수(가명·22)씨가 카네이션과 감사편지를 들고 찾아왔다. 제과제빵반 윤두남(42) 교사가 김씨를 맞았다. 윤 교사는 김씨의 손부터 찬찬히 살펴봤다. “손이 많이 다쳤네… 번거롭더라도 오븐을 사용할 땐 장갑을 끼는 습관을 들여야지.” 김씨가 멋쩍게 웃었다. 오랜만에 듣는 스승의 잔소리가 싫지만은 않은 눈치였다.

서울소년원 윤두남 제과제빵 교사
‘실수로 잠시 넘어진 이들’ 보듬어
제자 1000여 명 모범적 사회생활
반항아에 맞아 병원 신세 질 때도
“애들이 그럴 수 있지” 희망 안 놓아

김씨의 부모님은 그가 태어난 직후 이혼을 했다. 6세 때 새어머니가 생겼지만 갈등이 심했다. 2009년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김씨의 방황은 더 심해졌다. 또래들과 어울려 집 밖을 전전하는 ‘가출팸’ 생활을 하다 특수절도죄를 저질러 2011년 5월 서울소년원에 오게 됐다. 제빵반에 처음 지원했을 땐 “대충 시간만 때우다 나가자”는 게 김씨 생각이었다. 윤 교사는 당시 김씨와 김씨를 면회 온 새어머니를 함께 만났다.

“민수야, 어머니께 네가 변할 수 있다는 모습을 검정고시 합격증과 제과제빵 자격증으로 보여 주렴. 그리고 어머니도 민수가 시험에 합격하면 민수를 친자식처럼 대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윤 교사의 정성에 김씨는 조금씩 마음을 돌렸다. 팔뚝에 있던 문신도 지웠다. 1년여 만에 검정고시 합격증, 제과제빵 기능사와 바리스타 2급 자격증까지 땄다. 모범적인 생활로 9개월 일찍 소년원을 나가게 됐다. 한 달 뒤인 2012년 9월 김씨는 대기업 제빵회사에 취업했다. 새어머니와 관계도 좋아지고 아버지도 건강을 회복했다. 김씨의 꿈은 고급 레스토랑의 메인 셰프가 되는 것이다. 윤 교사는 지금도 가끔씩 김씨의 일터로 찾아가 격려할 만큼 그를 각별하게 여긴다.

윤 교사는 “군 입대를 앞두고 직접 만든 빵을 선물하러 온 제자, 가정을 꾸린 뒤 감사편지를 써서 건네준 제자 등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잊지 않고 찾아오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윤 교사는 제주도 출신이다. 200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년원 제빵 교사가 됐다. 대학 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제주도의 특급 호텔에 근무하면서 일본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친구가 “제주소년원(한길정보산업학교)에서 제빵 교사를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줬다. 소년원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지원했다고 한다.

윤 교사의 가르침을 받고 소년원을 나간 학생들은 제법 많이 취업에 성공했다. 살길이 마련되자 재범률도 크게 줄었다. 윤 교사는 2007년 서울소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듬해 제빵반을 개설했다. 윤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칠 교실은 서울소년원 2층 ‘205호실’로 배정됐다. 학생들이 많아 두 반으로 나눴다. 과거에는 자동차정비·정보기술(IT)·측량을 가르치는 반에 학생들이 몰렸지만 어느덧 빵과 커피를 만드는 제빵반이 최고 인기 수업이 됐다.

윤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205호실 학생의 지난 8년간 재범률은 ‘제로(0)’에 가깝다. 통상 소년원을 거친 이들 가운데 20%가량은 재범을 저질러 성인 교도소에 수감된다. 하지만 205호실을 졸업한 1000여 명 대부분은 지금까지도 모범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고봉중·고교 교사와 학부모들은 ‘205호실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매년 스승의 날마다 윤 교사의 휴대전화엔 스승의 안부를 묻는 문자가 쏟아진다. 이런 제자들 때문에 윤 교사는 13년째 같은 휴대전화 번호를 쓰고 있다.

윤 교사는 2014년 법무부가 전국소년원 교사 3명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교사상’을 받았다. 지난해 11월엔 반항하는 학생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5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하지만 윤 교사는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다”며 가볍게 웃어넘겼다. 소년원을 떠나진 않을 거라는 말과 함께.

이날 김씨가 준 카네이션을 왼쪽 가슴에 단 윤 교사가 힘줘 말했다. “빵처럼 인생도 ‘숙성’이 필요한 법입니다. 소년원 아이들은 실수로 잠시 넘어졌을 뿐이죠. 이곳에서 숙성을 거쳐 어엿한 사회인으로 커 갈 겁니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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