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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나홍진 감독의 '곡성(哭聲)'을 읽는 세 가지 시선…③장성란 기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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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풍경과 오컬트 장르의 짜릿한 충돌

<스포일러 주의>

장장 156분 동안 관객의 목을 서서히 조이기라도 하는 것 같다. 나홍진(42) 감독의 신작 ‘곡성(哭聲)’(5월 11일 개봉, 이하 ‘곡성’)은 전남 곡성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사건들의 원인을 묻는 이야기이자, 주인공인 경찰 종구(곽도원)가 딸 효진(김환희)을 지키려 발버둥치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점차 과연 누구를 의심하고 무엇을 믿을 것인가의 문제로 치닫는다. 영화의 결말이 던지는 물음은 극장 문을 빠져나온 뒤에도 한참 관객의 머릿속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과연 이 영화의 그 이야기를, 그 물음을, 그 빽빽한 긴장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세 필자가 서로 다른 시선으로 ‘곡성’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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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哭聲)`의 나홍진 감독[중앙포토]

‘곡성’은 나홍진이 관객을 제대로 긴장시킬 줄 아는 감독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똑똑히 보여 준다.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치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풍경이 자아내는 엄청난 사실감과 생동감 때문이다. 나 감독의 영화는 적당히 ‘척하는’ 법이 없다. 지극히 사실적인 연기와 연출 그리고 미술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이 풍경을 진짜라 믿게 만든다. ‘추격자’의 사이코패스 살인마 지영민과 그를 쫓는 전직 형사 엄중호(김윤석)는 서울 망원동 골목골목을 정말 죽어라 뛰어다녔고, ‘황해’는 주인공 김구남(하정우)이 겪는 고난을 한국영화 사상 가장 처참하게 그려 냈다. ‘곡성’도 마찬가지다. 전남 곡성이 배경인 이 영화는 한국 시골 마을의 허름한 모습과 단조로운 일상의 분위기를 세공해 보인다.

나 감독의 영화는 사실적 풍경에 장르적 쾌감을 과감하게 접붙인다. ‘추격자’는 서울 뒷골목을 누비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이야기였고, ‘황해’는 극 후반으로 갈수록 여느 블록버스터 부럽지 않은 액션과 자동차 추격전을 벌였다. ‘곡성’은 지극히 사실적인 한국의 시골 풍경과 함께 좀비영화 또는 오컬트영화(Occult Film·초자연적 현상을 그린 영화)적 쾌감을 결합한다. 일본인이 시뻘건 눈으로 동물 시체를 파먹는 꿈을 꾸게 된 종구. 현실에서는 온몸에 원인 모를 두드러기가 난 사람들이 좀비처럼 걸어 다니고, 심지어 죽었다 살아나기도 한다.

‘곡성’은 한국적 현실 안에서 형이상학적인 물음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과연 이 마을, 특히 효진에게 닥친 불운은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그 물음은 과학의 영역을 가뿐히 뛰어넘어 무속과 종교, 선과 악, 믿음과 불신의 차원까지 확대된다. 마찬가지로 마귀에 씐 소녀를 구하는 ‘검은 사제들’(2015, 장재현 감독)과 비교하면, ‘곡성’이 얼마나 한국적 사실감을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다. ‘검은 사제들’은 가톨릭 구마(驅魔) 의식 자체의 다이내믹함을 볼거리로 삼은 한국영화였다. ‘곡성’은 그 의식을 철저히 우리 현실에 맞게 변형해 보여 준다. 무당 일광이 굿판을 벌이고, 같은 시각 다른 곳에서 일본인은 자신만의 의식을 시작한다. 그 두 제의를 교차 편집한 장면이 이 영화의 첫 번째 절정을 이룬다. 물론 가톨릭 부제와 신부도 등장한다. 그중 어느 하나가 극의 패권을 잡기보다 ‘곡성’ 속 해답 없는 지옥도의 풍경을 이루는 데 모두 이바지한다.

그토록 흥미로운 장르적 실험을 거친 끝에,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주제를 꺼내 보인다. 일본인과 일광 그리고 정체불명의 여인 중 딸을 살리기 위해 종구가 믿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야기는 한층 복잡해진다. 셋 중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할까. 그 물음 자체는 흥미롭지만, 이 영화가 그 물음을 장르적 실험만큼이나 충분히 탐구했는가는 의문이다. 나 감독은 ‘곡성’의 언론 시사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범죄의 피해자가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물었을 때, 그저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까. 운명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런 의문에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과연 ‘곡성’의 결말이 그 의문을 풀어 줄 충분한 답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장선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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