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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스트레스 테스트 vs 행동하는 용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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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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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요즘 벤 버냉키의 『행동하는 용기』를 다시 읽는다고 한다. 버냉키는 금융위기가 절정일 때 미국 중앙은행(Fed) 총재를 지냈다. 책은 버냉키가 왜 전통·이론·명분보다 현실·실질·행동을 택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버냉키는 양적완화와 제로금리, 경제 교과서에 없는 수단으로 미국 경제를 되살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중앙은행과 재무부는
2인3각일 때 더 빛났다

버냉키는 중앙은행의 독립성 못지않게 정부와의 협력도 중시했다. 존 폴슨,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과 밀당을 통해 함께 위기를 극복했다. 구제금융을 위해 의회 설득에도 동참했다.

그러나 이 총재가 이 책에서 받은 감흥은 이런 게 아닌 듯하다. 이 총재는 사석에서 “버냉키도 재무부 요청으로 구조조정에 참여하면서 수치심을 느끼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대목에 특히 공감했다고 한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조선·해운 구조조정에 한은이 돈을 찍어 도와주라는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은 것이다. 같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감흥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같은 이슬이라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벌이 마시면 꿀이 된다’는 불가의 비유도 있잖은가.

이 총재의 고심은 충분히 이해한다. ‘한국판 양적완화’는 명분·전통·이론에 어긋난다. 현실·실질·행동에 가깝지만 정답이란 확신도 없다. 이 총재 말처럼 중앙은행의 발권력은 아주 특별한 경우, 엄격하게 사용해야 한다. 중앙은행이 헤프게 돈을 찍어대면 나라가 거덜나기 십상이다. 그럼 어떤 경우가 특별한가. 이번 조선·해운 구조조정은 특별한 경우인가 아닌가.

이쯤에서 이 총재에게 가이트너의 회고록 『스트레스 테스트』 일독을 권한다. 자기 자랑이 과하다는 점에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은 책이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한가운데에서 미국 정치와 경제가 어떤 선택을 했나, 규제당국은 어떻게 화합하고 조율했나를 낱낱이 적어놓았다는 점에서 소중한 기록이다. 버냉키의 『행동하는 용기』와는 요(凹)와 철(凸)의 관계이기도 하다.

가이트너는 버냉키의 대척점에 있었다. 하지만 둘은 끊임없이 소통했다. 지음(知音)의 백아와 종자기가 따로 없었다. 가이트너의 재무부는 은행의 스트레스 테스트와 자본 투입, 부실자산 매입용 자금 조달, 구제금융의 순서와 규모까지 모든 금융 전략을 버냉키의 Fed와 협의했다. 그는 세계가 미국의 금융 규제 당국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는 “미국의 규제 당국들이 아프가니스탄 부족들 간의 분쟁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합의가 이뤄지면 잡음이 없도록 “혈서로 서명하자”고도 했다. 정부 기관이 연합된 힘으로 위기 극복에 나섰다는 것 자체가 위기를 극복하는 첫 단추임을 가이트너와 버냉키는 잘 알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총재에게 당부컨대 이쯤에서 한국형 양적완화 논란은 접었으면 한다. 상의 한 번 없이 대놓고 윽박지르는 유일호 경제팀이 왜 안 밉고 안 섭섭하겠는가. 하지만 그만하면 됐다. 더 나가면 명분과 면피의 경계를 넘어서게 된다.

요즘은 매파들의 질타 목소리가 더 크고 많아진 듯하지만 굳이 공과를 따진다면 나는 한국판 양적완화가 공 7, 과 3쯤이라고 본다. 꺼져가던 구조조정의 불씨를 되살린 공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매파들의 주장은 명분도 있고 알기 쉽다. ‘구조조정 자금은 국회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통해 조달해야 권한과 책임이 한결 분명해진다.’ 그걸 누가 모르나. 그러나 명분에만 천착하면 실질과 행동을 잃을 수 있다.

벤 버냉키는 조용하고 화합하는 인물이지만 2008년 1월 “더는 Fed의 매파를 존중해줄 수 없다”고 했다. 위기가 심화하는데 매파들이 Fed가 원칙대로 가만히 있기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버냉키는 “내가 교수형을 당한다면 그들의 판단을 따르다가 당하지는 않을 것이고 나 자신의 판단에 책임지고 매달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역시 『스트레스 테스트』에 나오는 얘기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