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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까지 EBS 교재서 출제, 교과서 사라진 고교 교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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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일반고 D고 1학년은 국·영·수 교재로 EBS 『올림포스』를 쓴다. 이 책은 고교 1·2학년 수능 대비용 EBS 교재다. 2·3학년은 EBS 수능 연계 교재인 『수능특강』을 쓴다. 이 학교 2학년 박모(17)양은 “교과서도 배우기는 하는데 지난주 끝난 영어 중간고사에선 교과서를 바탕으로 한 문제는 고작 2개뿐이었고 나머지는 EBS 교재에서 변형돼 나왔다”고 말했다.

“교과서로는 수능 대비 안 돼”
고1·2학년까지 EBS 교재 수업
교사 “학생·학부모 요구 커 불가피”
교육부 “교장이 판단해 조절 필요”

고교 수업이나 시험 출제에서 EBS 교재가 교과서를 밀어내고 있다. 수능 시험을 앞둔 고3 교실은 물론이고 고 1·2도 마찬가지다. 내신 점수를 좌우하는 중간·기말고사 시험문제도 교과서가 아닌 EBS 교재나 수능 기출문제, 그 밖의 수능 문제집 등에서 출제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전국적이다. 충북 일반고 B고는 1·2·3학년생 모두 EBS 『수능특강』과 각종 부교재로 배우고 교과서는 3년 내내 사용하지 않는다. 이 학교 2학년 김모(17)양은 “ 2학년 땐 아예 교과서를 사지 않았다. 교과서를 안 사도 학교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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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교재가 교과서를 대체하는 현상의 근본 원인은 수능시험의 EBS 교재 연계 출제에 있다. 연계 출제는 교육부가 사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을 살린다는 취지로 도입됐으며, 2017학년도의 경우 연계율은 70%다. 연계 출제로 인해 교과서가 밀려나는 현상은 2014년 조사된 적이 있다. 당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회선(새누리당) 의원은 시·도교육청의 ‘EBS 교재 사용 현황’을 분석해 전국 1807개 일반고 중 약 64.5%가 정규 수업에 EBS 교재를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지적 이후에도 EBS 교재 활용이 1·2학년까지 확대되고 있을 뿐 아니라 내신 시험 문제 역시 수능 교재에서 출제되는 등 교과서 대체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서울 S여고 장모 교사는 “3학년 1학기에 EBS 교재를 교과서와 병행하기 시작해 2학기 때는 EBS 교재로만 수업한다”면서 “100명 중 99명은 EBS 교재 수업을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교사는 “교과서 중심으로 수업을 하고 싶어도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가 커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성적 상위권 아이들이 모인 일부 외고 등에선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서울 E외국어고 재학생인 3학년 이모양은 “교과서로는 수능에 대비할 수 없어서인지 학교에서 교과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솔직히 교과서 대금이 아깝다”고 말했다.

비평준화 지역인 제주도의 F여고는 1·2학년은 교과서로 수업하지만 사회탐구·수학 등 몇몇 과목의 시험 문제는 EBS 교재와 수능 기출문제에서 나온다. 이 학교 3학년 이모양은 “변별력을 위해서라는데 중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을 해 온 애들이 유리한 게 사실이다. 선행이 활성화되지 않은 변두리 중학교에서 온 아이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단기간에 수능형 내신을 따라잡기 힘들다며 아예 공부를 포기하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강성철 교육과정운영과장은 “교과서 외 다른 교육자료를 사용하는 건 교사 재량이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활용 범위나 분량을 심의해서 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EBS 교재를 과도하게 활용한다면 학교장이 판단해 조절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청소년 매체 TONG 의 익명 채팅 형식의 기사 ‘복면토크(http://tong.joins.com/?p=22409)’에서 교과서가 사라진 고교 교실 실태에 대한 청소년들의 적나라한 증언을 만나볼 수 있다.

◆TONG(teen on generation)=중앙일보가 전국 400여 명의 청소년기자와 함께 만드는 온라인 뉴스 채널. TONG(http://tong.joins.com)에 접속하면 된다.

이경희·박정경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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