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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발전" vs "조선총독부 건물이냐" 세종로 콘서트홀 건립 시민토론회

중앙일보

입력

현재 서울시에는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 등 2개의 클래식 전용홀이 있다. OECD 주요 도시인 파리(15), 뉴욕(18), 도쿄(15), 런던 (10)보다 크게 적은 수다, 아시아 주요도시인 싱가포르(8), 베이징(8), 상하이(4), 홍콩(2)과도 비교되는 수치다.

현존하는 두 개의 클래식 전용홀이 모두 강남에 있기 때문에 균형발전을 위해 강북권에 건립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서울시향이 상주하게 될 2천석 규모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 건립에는 폭 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2014년 서울시가 실시한 클래식 콘서트홀 건립에 관한 시민 여론조사 결과 일반시민 80% 이상이 클래식 음악에 관심 있고, 67%가 클래식 전용홀 건립에 찬성하는 결과가 나왔다.

쟁점은 건립 부지다.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로공원 자리를 둘러싸고 적정성 논란이 이어졌다.
건립에 반대한 단체는 크게 세 곳이다. 한글학회는 세종로공원 내 조선어학회 한글말수호기념탑과 한글글자마당 등 조형물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정보통신역사학회도 반대를 표명했다. 1992년 KT(당시 한국통신)가 제작한 전기통신발상지 기념탑이 세종로공원에 있기 때문이다 .

9일 오후 2시 서울시청 태평홀에서 시민토론회가 열렸다.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 건립 홍보와 의견 청취를 위해 서울시가 마련한 자리였다.

토론회에 앞서 고홍석 서울시문화본부장이 콘서트홀 건립과 관련해 경과를 설명했다. 고 본부장은 “토론 과정을 통해 의견을 청취하고 최적의 장소에 최적의 시설을 짓는 게 시의 방침”이라며 “10여 년 전부터 논의했던 문제이기 때문에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무한정 연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종덕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장은 기조연설에서 세종문화회관을 비롯해 여러 기관의 대표를 역임한 경험을 바탕으로 콘서트홀 건립에 찬성하는 소신을 밝혔다. 이어 최흥식 서울시향 대표가 발언했다. 최 대표는 “후손의 풍요로운 문화의 터를 확보하는 의미가 있다”며 “음악이 각박한 세상을 여유 있게 만든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박대우 문화정책과장은 콘서트홀 관련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서울시 클래식 콘서트홀 건립 비전과 목표’라는 주제를 발표했다.

박 과장은 “국내 클래식 음악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클래식 음악 관객 수는 5백만 명 이상, 서울시는 그중 38%인 180만 명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새로 건립된 홀에 서울시향이 상주할 때 현재 30~40회 정기공연을 100~130회로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 티켓 값을 더 낮춰서 저렴한 가격에 높은 수준의 클래식 연주를 들을 수 있다”고 콘서트홀 건립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어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오병권 대전문화예술의전당 관장, 김종택 한글학회 이사장, 김부종 한국정보통신역사학회 회장, 유윤종 동아일보 문화기획팀장, 이영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 등 패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세종문화회관에 1984년 입사해 2014년 정년퇴임까지 서울시향에서 기획을 맡은 오병권 관장은 “악단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연 문화 전체를 위해 전용홀이 있어야 한다”며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또 “전용홀이 있으면 세종문화회관의 음향반사판을 떼어내고 뮤지컬, 오페라, 발레의 장기 공연이 가능해 공연문화 발전에 도움이 된다. 음악가였던 세종대왕께서도 콘서트홀 건립을 바라실 것”이라 했다.

건립에 반대하는 김종택 한글학회 이사장은 큰 입장 차이를 노출하며 건립 예정부지에 있는 한글 글자마당과 조선어학회 선열 추모탑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대 그리스가 철학ㆍ문화ㆍ에술을 했던 건 희랍문자 때문이었다. 지금 세계에 흐르는 한류도 한글의 위대한 힘 때문”이라며 “그렇게 음악이 좋으면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짓듯이 경복궁에다 콘서트홀을 지으면 되지 않겠냐”고도 말했다.

역시 반대 입장인 김부중 한국정보통신 역사학회 회장은 “세종로 공원은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다. 서울의 찬가 노래비와 조병화 시비도 있다”며 “이런 곳에 콘서트홀을 짓는 건 자가당착이다. 사람들이 몰리면 교통지옥이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유윤종 동아일보문화사업팀장은 지도를 곁들여 외국 전용홀의 입지를 설명했다. 주요 홀들은 하나같이 왕궁이나 유흥가 등 유동인구가 막대한 곳에 집중돼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 관객 수가 오페라를 제외하고도 504만명, 프로야구 관객은 670여만 명이다. 뉴스로도 보고 방송 중계로도 듣는 야구 팬처럼. 클래식 음악 애호가도 음반으로도 라디오로도 듣는다. 한국의 콘서트고어 숫자는 결코 적지 않다”며 “OECD 평균 연간 노동시간인 1770시간을 훌쩍 넘기는 2285시간 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퇴근 후에 찾아가려면 교통의 중심에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팀장은 “관현악은 한 국가 문화계의 역량이 집중된 인프라 수준의 상징”이라 강조하며 “유자 왕, 랑랑 등 뛰어난 개인이 눈에 띄던 중국 음악계의 역점이 점차 오케스트라로 옮겨가는 중이다. 중국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영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이 패널 가운데 마지막으로 발표를 했다. 그는 “전통문화와 서양문화의 충돌은 늘 있어왔다. 우리는 슬기롭게 융합의 방도를 찾았다”며 “홀 안에 박물관처럼 세종대왕의 업적을 음악과 연결시킬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21세기 세종대왕을 더 잘 기리는 장소가 나올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예고와 달리 패널간의 토론은 없었다. 참석한 시민들의 질문을 받고 토론회는 마무리됐다.

서울시가 추진중인 ‘콘서트홀 건립 사업’은 2014년 타당성 조사를 거쳐 작년 6월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10월 서울시 투자심사위원회를 통과한 이후 시민의견 수렴 위한 설문조사, 공청회, 시민단체(한글학회, 정보통신단체 등) 면담 등이 잇달아 진행됐다. 오는 8월에는 중앙 투심위 심사가 예정돼 있다.

서울시는 콘서트홀 건립 사업 기간을 2014~2020년으로 잡고 있다. 총 사업비는 1천912억원이다. 40% 이상은 민간자본을 끌어올 계획이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ㆍ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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