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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심 배출 여전한데…쓰레기 실명제서 한발 뺀 수원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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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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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청 소속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원이 지난 3일 매탄4동 주택가 골목에서 종량제 봉투를 점검하고 있다. 분리배출해야 하는 재활용품이 종량제 봉투에 담겨 버려지고 있다. [사진 수원시]

“또 나왔네 또 나왔어. 이래서 우리 동네에 쓰레기 종량제 봉투 실명제가 꼭 필요해요.”

작년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 넘어
배출권 구입비 절감 위해 도입 검토
개인정보 유출 우려 일부 반발에
영통구서 실명제 대신 배출표시제
이름 안 적고 아파트 동까지만 표시

9일 오전 8시20분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에 있는 수원시자원회수시설(소각장) 반입장. 수원시자원회수시설 주민지원협의체 소속 주민 감시원 김순자(58·여)씨가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검수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4.5t 트럭에서 불린 20L 짜리 종량제 봉투 중 하나를 열어 보니 종량제 봉투에 넣으면 안 되는 플라스틱 페트병 3개와 검은색 비닐봉지 7개가 나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 곳에서 검수대상 종량제봉투 10개 중에 4개는 이처럼 분리 수거가 제대로 안된 양심불량 쓰레기 봉투가 나온다”고 말했다.

동료 감시원 이선엽(58·여)씨는 “검은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태우면 그 연기는 나와 내 자식들의 코로 들어간다.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주민들이 매일 오전 반입장에서 쓰레기 검수를 하는 이유는 환경오염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취지다. 주민들이 종량제 봉투에 넣어 배출한 비닐류에 민감해 하는 이유가 있다. 비닐류와 플라스틱은 1kg을 태울 때 온실가스 배출량이 2.762t(이산화탄소 환산톤)이다. 비닐류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종이(0.028t), 음식물(0.012t), 고무·가죽류(0.425t)보다 높다.

수원시는 지난해 15만1569t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정부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초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면서 정한 배출허용량(14만4486t)보다 7083t을 초과했다. 허용량을 초과할 경우 t당 1만8450원의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수원시는 올해 1억3000여만원어치를 구매했다. 분리수거만 잘해도 절약할 수 있는 세금이 낭비된 셈이다.

수원시는 그동안 동별 쓰레기 배출 감량에 따른 인센티브 제공 등의 대책을 시행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박덕화 수원시 영통구청장은 “ 4개 구청 중에서 영통구의 분리배출이 가장 잘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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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처럼 심각하자 수원시 영통구는 최근 ‘실명제 카드’에 관심의 눈길을 돌렸다. 강원도 평창군이 쓰레기 봉투 실명제를 도입해 배출량을 35% 줄이고 연간 2억원을 절감했다는 소식이 수원시 정책에 영향을 줬다. <본지 3월 29일자 12면>

이에 따라 수원시는 당초 1일부터 3개월간 영통구 전역(대상 인구 35만 명)에서 실명제를 시범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일부 주민의 반발에 부닥쳐 정책이 뒷걸음질치고 있다. 결국 실명제가 아니라 준(準)실명제인 배출표시제를 9일부터 6월 30일까지 약 2개월간 시범 도입하기로 했다. 시범 대상도 영통구 전역에서 영통2동 A아파트 단지 1600여 세대와 매탄4동 단독주택 밀집지역 400여 세대로 대폭 축소됐다. 아파트 거주자는 아파트 이름과 몇 동인지만 적게 했고, 일반주택은 도로명을 쓰레기 봉투에 적도록 했다.

시범 사업 기간에는 분리수거가 되지 않았더라도 별도의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들 지역의 음식점 등 업소는 시범 사업 대상에서도 빠졌다.

이 때문에 비양심 쓰레기 투기가 근절되지 않은 상황에서 친환경 정책을 과감하게 시행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여론의 눈치를 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길현 자원회수시설 주민지원협의체 위원장은 “일부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비양심 배출 실상을 보면 차마 반대하지 못할 것”이라며 “분리수거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실명제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명수·김민욱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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