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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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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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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
작곡가·서울시오페라단 단장

하나의 성부로만 만들어진 음악을 모노포니(단성부 음악)라고 한다. 혼자 부르는 노래는 모노포니다. 노래만이 아니라 악기로 연주해도 혼자 하는 가락은 모노포니다. 드라마의 달밤 장면에 자주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대금의 ‘청성곡’은 이러한 종류의 음악 중 백미 편이라 하겠다. 또 타악기만으로 반주하면서 혼자 온갖 역할과 다양한 가락으로 이야기를 엮어 가는 판소리는 고도로 발달한 모노포니의 예다.

혼자 음악을 끌고가서도 안 되고 끌려만 가도 안 돼
연음은 자기 차례가 오면 자신의 음악 뽐낼 줄도 알아야

여럿이 부른다고 해도 하나의 가락을 같이 부르면, 즉 성부가 하나이면 모노포니다. 옛날 가톨릭교회에서 부르던 그레고리오 성가가 좋은 예다. 그런데 여럿이 부르다 보면 아무래도 성부가 갈라지게 돼 있어 다양한 형태의 다성부 음악이 생긴다. 서양에서는 처음에 주된 선율에 일정한 화음을 얹어 비슷하게 따라가는 방식이 시도됐다. 이 방식은 후에 각 성부가 독립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방식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것을 폴리포니(다성 음악)라고 부른다.

16세기에 절정을 이루는 이 양식의 핵심은 모든 성부가 동등한 비중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각 성부는 번갈아 가면서 주선율을 부른다. 그때 다른 성부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이를 도와준다. 즉 ‘대위’한다. 결과적으로 각 성부가 주선율을 모방하는 것처럼 보이므로 이러한 음악 양식을 모방대위법이라고 한다.

모방대위법은 협치라는 이상에는 잘 맞지만 몇 가지 약점이 있다. 모든 성부가 독자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사가 뒤섞여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 번갈아 한 번씩 주선율을 부르기 때문에 그만큼 진행이 더디다는 점이다. 이것은 오페라처럼 말이 잘 들리고 스토리 진행이 빨라야 하는 음악에서는 치명적이다. 그래서 오페라를 개발한 작곡가들은 다시 단선율 음악-이 시대에는 모노디라고 불렀다-으로 돌아갔다. 가사를 잘 반영하는 하나의 선율과 이를 뒷받침하는 화성으로 이뤄진 음악이다.

요즘도 일반 애호가에게 가장 친숙한 호모포니(화성 음악)는 모노디를 계승한 것이다. 폴리포니가 각 성부의 독립성을 중시한다면 호모포니는 성부 간의 어울림을 중시한다(‘호모’란 말은 동질적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어울림의 핵심은 화성, 즉 같이 울리는 음의 조화다. 애국가를 합창할 때 소프라노는 선율을 부르고 알토·테너·베이스는 화음으로 이를 뒷받침하는데 이것이 전형적인 호모포니다. 협치라기보다는 중심 리더십을 다른 파트가 보좌하는 스타일이다.

헤테로포니는 호모포니의 대척점에 있다(‘헤테로’는 이질적이란 뜻이다). 여기서는 음악가들이 각기 흥 나는 대로 음악을 만든다. 박자와 조(調) 정도의 울타리만 정하고 같이하는 연주자들의 음악을 들어가면서 적당히 맞춰 나간다. 옆의 색소폰이 기를 올리면 다른 악기들은 숙여 주고 피리가 멋진 새 가락을 뽑아내면 대금이 이를 받아 좀 더 음악을 추어올리는 식이다. 재즈나 시나위에서 흔히 보는 이 음악에는 작곡자가 없다. 따로 통치자가 없는 음악 세상이다. 다만 이 음악이 흥미진진하기 위해서는 참여하는 음악가들의 기량이 고르게 높아야 한다. 자기 혼자 음악을 끌고 가려 해도 안 되고 끌려가기만 해도 안 된다. 들고 날 때를 알 뿐만 아니라 차례가 오면 자신의 목소리를 뽐낼 줄 알아야 한다.

헤테로포니의 한 형태로 우리 음악에 연음(連音)이라는 방식이 있다. 여러 악기가 각각의 특성에 따라 숨이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움직임이 둔하면 둔하게 재빠르면 재빠르게 음악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제천’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아쟁은 굵은 가락을 이어 간다. 힘찬 피리는 주선율을 연주하지만 여백을 만들면서 종종 쉰다. 그 쉬는 공간을 다소 여린 대금이 이어받아 메워 주고 소금은 잔가락으로 그 공간을 장식한다. 대금과 소금의 호흡이 끝날 때쯤 다시 피리가 등장해 주선율을 이어 간다. 피리의 소리가 강해 중심으로 느낄 뿐이지 딱히 그것이 주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모든 악기가 비슷한 길을 나름의 방식으로 가는데 그 결과가 ‘수제천’이다.

음악에서는 구현되는 이런 세상이 현실에선 어디에 있는지,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궁금하다.

이건용 작곡가·서울시오페라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