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성부로만 만들어진 음악을 모노포니(단성부 음악)라고 한다. 혼자 부르는 노래는 모노포니다. 노래만이 아니라 악기로 연주해도 혼자 하는 가락은 모노포니다. 드라마의 달밤 장면에 자주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대금의 ‘청성곡’은 이러한 종류의 음악 중 백미 편이라 하겠다. 또 타악기만으로 반주하면서 혼자 온갖 역할과 다양한 가락으로 이야기를 엮어 가는 판소리는 고도로 발달한 모노포니의 예다.
혼자 음악을 끌고가서도 안 되고 끌려만 가도 안 돼
연음은 자기 차례가 오면 자신의 음악 뽐낼 줄도 알아야
여럿이 부른다고 해도 하나의 가락을 같이 부르면, 즉 성부가 하나이면 모노포니다. 옛날 가톨릭교회에서 부르던 그레고리오 성가가 좋은 예다. 그런데 여럿이 부르다 보면 아무래도 성부가 갈라지게 돼 있어 다양한 형태의 다성부 음악이 생긴다. 서양에서는 처음에 주된 선율에 일정한 화음을 얹어 비슷하게 따라가는 방식이 시도됐다. 이 방식은 후에 각 성부가 독립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방식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것을 폴리포니(다성 음악)라고 부른다.
16세기에 절정을 이루는 이 양식의 핵심은 모든 성부가 동등한 비중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각 성부는 번갈아 가면서 주선율을 부른다. 그때 다른 성부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이를 도와준다. 즉 ‘대위’한다. 결과적으로 각 성부가 주선율을 모방하는 것처럼 보이므로 이러한 음악 양식을 모방대위법이라고 한다.
모방대위법은 협치라는 이상에는 잘 맞지만 몇 가지 약점이 있다. 모든 성부가 독자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사가 뒤섞여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 번갈아 한 번씩 주선율을 부르기 때문에 그만큼 진행이 더디다는 점이다. 이것은 오페라처럼 말이 잘 들리고 스토리 진행이 빨라야 하는 음악에서는 치명적이다. 그래서 오페라를 개발한 작곡가들은 다시 단선율 음악-이 시대에는 모노디라고 불렀다-으로 돌아갔다. 가사를 잘 반영하는 하나의 선율과 이를 뒷받침하는 화성으로 이뤄진 음악이다.
요즘도 일반 애호가에게 가장 친숙한 호모포니(화성 음악)는 모노디를 계승한 것이다. 폴리포니가 각 성부의 독립성을 중시한다면 호모포니는 성부 간의 어울림을 중시한다(‘호모’란 말은 동질적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어울림의 핵심은 화성, 즉 같이 울리는 음의 조화다. 애국가를 합창할 때 소프라노는 선율을 부르고 알토·테너·베이스는 화음으로 이를 뒷받침하는데 이것이 전형적인 호모포니다. 협치라기보다는 중심 리더십을 다른 파트가 보좌하는 스타일이다.
헤테로포니는 호모포니의 대척점에 있다(‘헤테로’는 이질적이란 뜻이다). 여기서는 음악가들이 각기 흥 나는 대로 음악을 만든다. 박자와 조(調) 정도의 울타리만 정하고 같이하는 연주자들의 음악을 들어가면서 적당히 맞춰 나간다. 옆의 색소폰이 기를 올리면 다른 악기들은 숙여 주고 피리가 멋진 새 가락을 뽑아내면 대금이 이를 받아 좀 더 음악을 추어올리는 식이다. 재즈나 시나위에서 흔히 보는 이 음악에는 작곡자가 없다. 따로 통치자가 없는 음악 세상이다. 다만 이 음악이 흥미진진하기 위해서는 참여하는 음악가들의 기량이 고르게 높아야 한다. 자기 혼자 음악을 끌고 가려 해도 안 되고 끌려가기만 해도 안 된다. 들고 날 때를 알 뿐만 아니라 차례가 오면 자신의 목소리를 뽐낼 줄 알아야 한다.
헤테로포니의 한 형태로 우리 음악에 연음(連音)이라는 방식이 있다. 여러 악기가 각각의 특성에 따라 숨이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움직임이 둔하면 둔하게 재빠르면 재빠르게 음악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제천’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아쟁은 굵은 가락을 이어 간다. 힘찬 피리는 주선율을 연주하지만 여백을 만들면서 종종 쉰다. 그 쉬는 공간을 다소 여린 대금이 이어받아 메워 주고 소금은 잔가락으로 그 공간을 장식한다. 대금과 소금의 호흡이 끝날 때쯤 다시 피리가 등장해 주선율을 이어 간다. 피리의 소리가 강해 중심으로 느낄 뿐이지 딱히 그것이 주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모든 악기가 비슷한 길을 나름의 방식으로 가는데 그 결과가 ‘수제천’이다.
음악에서는 구현되는 이런 세상이 현실에선 어디에 있는지,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궁금하다.
이건용 작곡가·서울시오페라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