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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구조조정 시급한데 성과급 잔치 KB금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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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태경
이태경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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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경제부문 기자

“KB의 위상 추락에 책임 있는 전 경영진에게 억대 성과급을 주다니요. 매일 실적 압박에 시달리며 야근하는 직원 입장에선 심리적 박탈감이 큽니다.”

서울의 한 KB국민은행 지점 직원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지난주 열린 KB금융지주 평가보상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소회다. 사외이사로 구성된 평가보상위는 임영록·어윤대 전 KB금융 회장,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에게 밀린 성과연동주식(스톡그랜트)을 포함한 성과급을 주기로 결정했다. 규모는 비공개이지만 전례를 봤을 때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어치의 KB금융 주식이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성과급을 받을 세 사람은 모두 내분의 당사자로 논란의 한복판에 있었다.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행장은 2014년 상반기 주전산기 교체 문제로 정면충돌했다. 결국 금융 당국이 개입했고 각각 직무정지(임 전 회장)와 문책경고(이 전 행장)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어윤대 전 회장 역시 재임 내내 사외이사와 마찰을 빚은 끝에 2013년 금융 당국에서 ‘주의적 경고’ 조치를 받았다. 어 회장의 측근(박동창 전 부사장)이 일부 사외이사 선임을 막기 위해 미국의 주주총회 분석기관 ISS에 미공개 정보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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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KB금융 임원 사이에서도 “징계 결정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성과급을 주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평가보상위는 “규정상 문제가 없다”며 지급을 강행했다. 징계를 감안해 임 전 회장에게는 회장 임기 1년2개월치를 뺀 KB금융 사장 시절의 성과급만 주고 이 전 행장에겐 약속한 성과급의 절반만 주기로 했으니 괜찮다는 논리다. 어 전 회장은 원래 성과급을 그대로 받는다. 박동창 전 부사장이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한 징계취소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이런 결정은 성과연동주식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다. ‘재임 중 성과가 좋지 않으면 퇴임 후 성과급을 주지 않을 수 있다(금융지주 모범규준)’는 명확한 근거 조항이 있다. 이들 전 경영진의 내분으로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동안 KB는 고객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실적이 악화됐다. 한때 1등 은행(리딩뱅크)으로 불렸던 KB는 1인당 생산성 꼴찌 은행이라는 오명을 썼다. 전 경영진의 성과를 제대로 반영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지금은 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큰 산을 넘기 위해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충당금을 쌓아야 할 때다. 그래야 부실기업을 퇴출해도 은행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을 세워도 모자란 마당에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KB 이사회와 경영진을 이해해줄 주주와 고객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이태경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