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의 위상 추락에 책임 있는 전 경영진에게 억대 성과급을 주다니요. 매일 실적 압박에 시달리며 야근하는 직원 입장에선 심리적 박탈감이 큽니다.”
서울의 한 KB국민은행 지점 직원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지난주 열린 KB금융지주 평가보상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소회다. 사외이사로 구성된 평가보상위는 임영록·어윤대 전 KB금융 회장,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에게 밀린 성과연동주식(스톡그랜트)을 포함한 성과급을 주기로 결정했다. 규모는 비공개이지만 전례를 봤을 때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어치의 KB금융 주식이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성과급을 받을 세 사람은 모두 내분의 당사자로 논란의 한복판에 있었다.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행장은 2014년 상반기 주전산기 교체 문제로 정면충돌했다. 결국 금융 당국이 개입했고 각각 직무정지(임 전 회장)와 문책경고(이 전 행장)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어윤대 전 회장 역시 재임 내내 사외이사와 마찰을 빚은 끝에 2013년 금융 당국에서 ‘주의적 경고’ 조치를 받았다. 어 회장의 측근(박동창 전 부사장)이 일부 사외이사 선임을 막기 위해 미국의 주주총회 분석기관 ISS에 미공개 정보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KB금융 임원 사이에서도 “징계 결정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성과급을 주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평가보상위는 “규정상 문제가 없다”며 지급을 강행했다. 징계를 감안해 임 전 회장에게는 회장 임기 1년2개월치를 뺀 KB금융 사장 시절의 성과급만 주고 이 전 행장에겐 약속한 성과급의 절반만 주기로 했으니 괜찮다는 논리다. 어 전 회장은 원래 성과급을 그대로 받는다. 박동창 전 부사장이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한 징계취소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이런 결정은 성과연동주식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다. ‘재임 중 성과가 좋지 않으면 퇴임 후 성과급을 주지 않을 수 있다(금융지주 모범규준)’는 명확한 근거 조항이 있다. 이들 전 경영진의 내분으로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동안 KB는 고객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실적이 악화됐다. 한때 1등 은행(리딩뱅크)으로 불렸던 KB는 1인당 생산성 꼴찌 은행이라는 오명을 썼다. 전 경영진의 성과를 제대로 반영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지금은 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큰 산을 넘기 위해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충당금을 쌓아야 할 때다. 그래야 부실기업을 퇴출해도 은행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을 세워도 모자란 마당에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KB 이사회와 경영진을 이해해줄 주주와 고객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이태경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