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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불편한 소설? 200쪽짜리 질문으로 봐줬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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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국의 소설 독자들에게 오는 16일은 손꼽아 기다려진다. 소설가 한강(46)의 연작장편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가 최종 후보작 6편에 포함된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이 이날 수상자를 발표해서다.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의 ‘자매상’인 맨부커인터내셔널은 2005년 생겨 연륜은 짧다. 하지만 앨리스 먼로, 필립 로스 등 노벨상 수상자 혹은 비슷한 레벨의 작가들을 잇따라 수상자로 배출하면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16일 수상자 발표 앞두고 인터뷰

상을 못 받더라도 기쁜 일, 당연히 기꺼워야 할 한씨는 마냥 그렇지는 못한 듯했다. 심경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청하자 2, 3일 후에야 답을 했다. 즉답을 꺼린 이유는 후보작 『채식주의자』에 대한 심적 부담 때문이었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세 중편을 묶은 『채식주의자』는 극단적 채식주의에 빠진 여주인공 영혜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각각 남편, 형부, 언니의 시점에서 그린 작품이다.

이런 것뿐이면 문제 없겠으나 탐미주의로 읽힐 수 있는 성적인 사건을 담은 ‘몽고반점’의 내용이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듯했다. 독자들이 작가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였다. 지난달 말 한씨를 만났다.

어떤 점이 부담스럽나.
“‘채식주의자’를 2004년 여름 ‘창작과비평’에 발표한 후 ‘내용이 불편하다’는 독자의 항의 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몽고반점’은 특히 오해를 많이 샀다. 2005년 이상문학상을 받아 수상작품집에 실려 많이 읽혔는데, 탐미주의적 작품으로 여기는 독자가 많았다. 출판사가 책을 더 팔기 위해 선정적으로 포장한 측면도 있다. 당시에 상처 받았고 나중에는 좀 지쳤다. 2007년 단행본으로 세 편의 연작이 묶여 나왔을 때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이유도 이 소설이 제대로 읽힐 수 있을지 염려스러워서였다. 이제는 지나간 책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다시 관심을 받게 돼 또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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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 맨부커인터내셔널상 최종심에 오른 장편 『채식주의자』에 대해 “인간의 폭력성을 거부해 식물이 되려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했다. [tkwls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독특하고 강렬한 작품이라는 평이 많다.
“중편들을 따로따로 읽었을 때와 모아서 장편으로 읽었을 때 서로 다르게 읽히도록 작품을 구상했다. 하나씩 읽으면 알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모아 놓으면 어떤 전체적 맥락이 생기는 소설이다. 세 편의 연작에서 영혜는 화자로서 목소리를 갖지 않는다. 대신 그녀를 관찰하는 세 사람에 의해 혐오, 몰이해, 욕망, 연민, 기묘한 동일시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 그 어긋나는 오해의 시선들 속에서 끈질기게 미끄러져 달아나는 영혜의 진실을 독자들이 상상하여 움켜쥘 수 있기를 바랬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전체가 하나의 의문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200쪽짜리 질문이다. 소설을 하나의 질문으로 생각하고 읽는다면 세상에 어려운 소설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답하기 어렵거나 불편하거나 고통스러운 질문들 속에 오래 머무르려 애쓴다. 내게는 소설 쓰기가 그 방법이다.”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었나.
“영혜는 육식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폭력을 거부하고, 마지막에는 더 이상 자신이 인류의 일원이 아니라고 여긴다. 식물이 되는 중이라고 믿으며 모든 음식을 거부한다. 그런 영혜를 통해 인간의 폭력과 결백의 가능성에 대해 묻고 싶었다. 한 인간으로서 폭력을 완벽하게 거부하는 게 가능한가. 완전히 결백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런 질문들을 하고 싶었다.”
영혜가 선택한 건 결국 자기 파괴다. 수동적인 여성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거부하며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뿌리 뽑으려 하는 사람, 무서운 결단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그토록 애쓰는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속에서는 죽음에 다가가고 있다. 소설 속에서 작가인 나와 가장 입장이 비슷한 인물은 영혜의 언니 인혜다. 모든 사태를 직시하고 이해하려 애쓰며 그 과정에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점에서다. 인혜는 죽어가는 영혜를 살리기 위해 끝까지 애쓰는 인물이기도 하다. 소설을 쓰면서 영혜를 바라보는 내 태도가 그랬다. 그래서 영혜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앰뷸런스의 차창 밖을 항의하듯 바라보는 인혜의 시선으로 소설을 끝맺었다.”
데보라 스미스의 영어 번역이 빼어나다는 평가가 많다.
“나는 작품에서 톤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데보라도 그 점을 중시하는 사람이어서 대화가 잘 통했다.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영혜의 이탤릭체 독백 부분은 시처럼 쓴 것이었는데 데보라가 정확히 그 느낌을 살려 놀라웠다.”
이번 최종 후보 선정의 의미를 얘기한다면.
“나는 아무런 대중성이나 상업성 없이 조용히 글을 쓰는 사람이다. 운 좋게 훌륭한 번역자와 편집자를 만났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낯설지 않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는 묵묵히 훌륭한 작품을 쓰는 동료 선후배 작가가 너무 많다.”
◆한강=1970년 광주광역시 출생. 연세대 국문과. 1993년 시로, 이듬해 소설로 등단했다. 시적인 문체로 인간 내면의 고통과 상처를 건드리는 작품을 많이 써왔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장편 『소년이 온다』. 황순원문학상·동리문학상 등 수상.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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