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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무식하고 무능한 리더도 죄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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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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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언제부터인가 교통사고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그럴듯한(근거 없는?) 조언들이 등장했다. 우선 사고가 나면 차에서 먼저 내리지 말고 가능한 한 핸들에 머리를 박고 강한 경적 소리로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 그리고 절대로 성급하게 사과하면 안 된다고 한다. 사과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자신의 과실 책임을 인정하게 된다는 얘기다. 언제부터 한국 사회가 사과를 하면 손해를 보게 됐을까?

원래 ‘죄송합니다’란 사과는 반드시 자신이 전적으로 잘못했을 때나 일부러 그랬을 때만 하는 것은 아니다. 혼잡한 지하철에서 급정거하는 바람에 중심을 잃어 다른 사람의 발을 밟아도 당연히 사과를 한다. 이 경우 직접적으로 피해를 준 사람은 자신이지만 그것은 절대 의도한 것도 아니고 책임 소재를 따져도 자신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어쩔 수 없었거나 모르고 그랬더라도, 우선은 사과한다. 일부 책임이 있다면 그 일부에 대한 사과이고, 그보다 아파하고 있는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렇게 너무나 당연한 사과와 반성이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다. 많은 불행한 사건에 대한 정부의 책임의식과 사과, 그 진정성 여부가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이다.

4월 16일은 세월호 2주기였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마음속으로도 세월호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고, 실제 진상 규명 작업도 현재 진행 중이다. 너무나 비극적인 사건이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의문점이 많아 갖가지 루머가 지금도 돌아다닌다. 하지만 그래도 믿고 싶다. 마치 루머처럼 정부나 일부 정치세력이 일부러 그런 사고를 냈다느니, 일부러 구조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고. 그동안의 언론 기사나 마침 2주기를 맞아 방영된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 그런 ‘일부러’ 루머는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정부와 그 관계자는 철저하게 무식했고 무능했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 위기 대응 절차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우왕좌왕하며 책임 모면과 자기 살길만 찾고 있었다. 게다가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는 순간에도 쓸데없는 정보나 물어보며 현장 사진이나 보내 달라고 매달리는 청와대와 그 사진을 보내고 있는 해경의 대화는 압권이었다. 승객을 구조하라는 하나 마나 한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하느라 이미 배가 침몰한 다음에야 승객의 안전을 묻고는, 그 순간에도 대통령 보고를 걱정하는 관계자의 모습은 무식과 무능의 절정을 보여 준다. 이게 무식과 무능으로 설명될 수 있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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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진심 어린 마음을 유달리 중시하는 심정 중심주의의 한국 사회는 무식이나 무능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다. 게다가 우리의 기성 세대는 과거 불행한 근대화 과정에서 거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 자체를 중시하고 무슨 잘못을 해도 능력이 없거나 몰랐다고 하면 좀 봐준다. 반대로, 알고도 그랬거나 노력하지 않았다는 비난은 혹독하다. 아마 세월호 청문회에 나온 대부분의 관련자가 ‘나는 몰랐다’와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답변만 반복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면서 진짜 나쁜 놈을 찾으려는 피해자 가족과 국민에게 자신은 최소한 그런 나쁜 놈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무식과 무능도 죄가 된다. 그래서 아무나 그런 자리에 갈 수도 없고 사회에서는 많은 권력과 권한, 혜택을 그들에게 부여한다. 청와대·정부·해경과 같은 기관에는 당연히 그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자리를 맡고 있을 거라고 믿기에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을 임명하는 것은 임명권자의 책임이다. 그래서 만약 최선을 다해도 해낼 능력이 없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 있다면 그건 임명권자 능력의 문제가 된다.

세월호 사건 직후 해경은 해체됐지만 사법 처벌을 받은 정부 책임자는 123정장 단 한 명이다. 그 외의 무식하고 무능했던 관계자들은 다 사라졌다. 원래 그 무능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던 잘못에 대한 반성이나 언급도 없었다. 무조건 더 많은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대로는 미래의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수도 없고, 더 잘 대응할 유능한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믿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세월호특별법의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이 개정이 의미 있으려면 나쁜 놈 때려잡기에 그치지 말고 이런 무능과 무식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도 마치 조금이라도 손해 볼까 무서워서 자동차 핸들에 머리를 처박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예의 없는 운전자처럼 행동해서는, 이 비극은 영원히 종결되지 않을 거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