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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취재-한일 양국 ‘동병상련’ 연구]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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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인, 명사들의 잇단 불륜사건으로 떠들썩… 한국은 배우자 간통 상대 민사소송과 신상 폭로가 새로운 트렌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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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한일 양국은 불륜과 이에 따르는 각종 스캔이 늘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된다.

올해 정초부터 일본을 강타한 유행어는 ‘ゲス不倫(게스후린=비열 불륜)’이었다. 그 발단은 인기 여배우 겸 가수 벳키의 불륜 스캔들이다. 영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벳키(31)는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성실함과 솔직 담백한 성격으로 남성뿐 아니라 젊은 여성들에게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인기 스타다.

비열불륜과 혼외연애, 응징과 보복 판친다

그런데 지난 1월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은 그녀와 유부남 가수의 불륜 의혹을 특종 보도하면서 이혼서류를 ‘졸업논문’이라고 칭하며 이혼을 재촉하는 그녀와 상대 남성의 라인(네이버의 인스턴트 메시지)의 대화내용을 공개했다. 벳키는 기자회견을 통해 “친구 사이다.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겠다”라고 스캔들 진화에 나섰지만, 직후 <슈칸분슌>은 후속 보도를 통해 기자회견 전날 두 사람이 라인에서 나눴던 적나라한 대화내용을 새롭게 공개하면서 반격에 나섰다. “친구라고 밀어붙이자”, “오히려 당당하게 사귈 수 있게 되었어, 분슌 고마워!” 등의 내용이다. 사람들을 기만하고 세상을 우습게 보는 듯한 대화 내용이 대중의 노여움을 사면서 결국 벳키는 10개의 광고계약이 전부 취소된 것은 물론, 소속사로부터 연예계 활동 전면중지 처분을 받고 현재 근신 중이다. 벳키의 상대남이 게스기와미노 오토메(ゲス極みの乙女: 비천하기 그지없는 소녀)라는 4인조 혼성그룹의 리더인 까닭에 매스컴 등이 벳키의 불륜을 ‘게스후린(ゲス不倫=비열 불륜)’이라고 야유하면서 이 말이 대대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이번에는 나가타쵸의 게스후린이 아베 내각을 뒤흔들었다.


l ‘게스후린(ゲス不倫=비열 불륜)’ 대대적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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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베스트셀러 <오체불만족(五體不滿足)>의 저자인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충격적인 불륜 사실을 보도한 일본의 주간지 <슈칸분슌>.

미야자키 겐스케(35)는 188㎝의 장신에 부드러운 마스크로 여성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2선의 자민당 중원 의원이다. “헤이트 스피치를 법으로 규제하는 것에 반대한다”,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등의 강경 우익적인 발언으로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의 젊은 매파를 대표하는 유망주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23일 국회의사당 옆에 위치한 히에 신사에서 거행된 미야자키 의원과 같은 자민당 소속 가네코 메구미(37) 중의원 의원과의 결혼식에는 아베 총리와 스가 관방장관, 이부기 중의원 의장을 비롯한 정계 중진이 대거 참석하며 매스컴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야자키 의원은 이 자리에서 “현재 임신 중인 아내가 출산하는 내년 2월 일본 남성의 육아 실천을 촉진하기 위해서 육아 휴직을 하겠다”며 국회 회기 중 1개월간의 육아휴직을 선언했다.

아베 정권은 기혼남성을 대상으로 한 육아휴직 지원을 주요 정책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많은 일본 남성은 직장의 눈치를 보느라 휴직을 신청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미야자키 의원은 국회의원 최초로 남성 육아 휴직을 신청하여 출생률 감소로 고민하는 일본 사회 전체가 육아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려고 한 것이다. 이 발언으로 미야자키 의원은 일약 화제의 중심인물이 되었고, 아베 총리를 필두로 많은 의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마야자키 의원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영업자 등 육아휴직이 곤란한 경우를 위한 법률정비 공부회’ 등을 만들며 이를 자신의 대표적인 정치소신으로 만드는 작업을 계속했다.

1월에 접어들자 고령 출산인 가네코 의원은 격렬한 진통으로 인해 1월 14일부터 병원에 긴급 입원, 2월 5일에 무사히 남아를 출산했다. 드디어 미야자키 의원이 국회의원 최초로 남성 육아휴직을 취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2월 10일에 발간된 <슈칸분슌>은 충격적인 기사를 게재했다. 가네코 의원이 긴급 입원 중이던 1월 30일에서 31일에 걸쳐 미야자키 의원이 탤런트 출신 여성과 1박 2일의 교토 불륜 여행을 다녀왔다는 것이었다. 기사에는 두 사람의 불륜장면을 촬영한 사진까지 개재되었다.

이 보도로 일본 열도가 분노로 들끓으며 자민당 본부와 총리관저에까지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결국 2월 12일 미아쟈키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와 의원직 사퇴의 뜻을 밝혔으며, 아베 총리까지 직접 나서서 “자민당 총재로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의원직을 사퇴한 미야자키는 부인과 아들과 떨어져 모처에서 칩거에 들어갔지만 그 후로도 매스컴에서는 학창시절부터 유명했던 그의 여성편력을 끈질기게 보도하고 있다. 초등학교 동창이 등장해서 그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여학생의 팬티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는 등 변태적 행각의 에피소드를 폭로하기도 했다.


l 리버럴한 입장이었던 사회분위기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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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륜 스캔들로 물의를 빚은 선천성 사지절단 장애인 오토다케 히로타다. 일본 사회는 유명인의 불륜에 대해서는 가혹한 메스를 들이댄다.

설상가상으로 3월에는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공천이 확실시되던 오토다케 히로타다(39)의 불륜스캔들이 다시 한 번 자민당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발행부수가 500만 부를 넘는 밀리언셀러로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된 <오체불만족>의 저자인 오토다케는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없는 ‘선천성 사지절단증’이라는 중증장애를 극복하고 작가, 강사, 사회사업가로서 정력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인간승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헌법 개정과 국방군 창설을 아베정권의 목표로 삼고 있는 자민당은 그를 주목했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헌법 개정에 비판적인 국민들, 특히 여성표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하여 약자를 대변하는 그를 비례대표로 공천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복지문제 등으로 관심을 돌려 선거쟁점을 희석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부인 이외의 5명의 여성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스캔들이 주간지에 의해서 폭로되었다.

오토다케는 발 빠르게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사실을 전면 시인하며 본인은 물론, 아내의 사과문까지 게재했다. 그러나 “아내로서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 남편은 물론 저 역시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하는 아내의 불필요한 사과문이 오히려 여성 유권자들의 반발을 사게 되면서 자민당은 깊은 고민이 빠졌다. ‘자민당=불륜정당’의 이미지가 고착되면 목표로 했던 여성 유권자의 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판단 아래 결국 오토다케의 공천은 취소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일본사회는 전통적으로 불륜에 대해 너그러운 분위기가 있지만, 상대가 유명인이나 정치가라면 반응이 달라진다” <슈칸겐다이((週刊現代)>의 한 기자는 이들의 불륜이 국민들로부터 강한 비난에 직면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번 불륜 스캔들을 앞장서서 비난한 것이 주부를 대상으로 한 와이드 정보 프로그램들이다. 마약과 더불어 유명인사의 단골 스캔들인 불륜은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TV가 반복적으로 자극적인 정보를 쏟아내면서 사회 분위기가 이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다. 더구나 매스컴들이 불륜에 ‘게스이(ゲスい=저속하다, 비열하다)’라는 단어를 덧붙임으로써 ‘불륜은 역시 비열하고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는 점이 강하게 부각되어 불륜에 대해서 다소 리버럴한 입장이었던 사회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기자의 지적처럼 일본 사회가 불륜에 대해 비교적 너그럽다는 것은 각종 조사결과에서도 알 수 있다. 미국의 퓨(Pew) 리서치 센터가 2013년에 실시한 ‘세계 40개국의 불륜허용도 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은 미국이나 영국보다도 불륜 허용도가 높은 나라로 나타났다. 불륜 허용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프랑스로, 응답자의 약 47%만이 “불륜을 용서받지 못할 행위”로 생각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서 독일과 인도,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 5위 안에 들었으며, 일본은 10위로 중국(16위), 영국(17위), 한국(25위), 미국(26위) 등보다 불륜에 대해 관대하다.(자료 Pew Global Attitudes Project의 ‘2013 spring survey’)


l 혼외연애의 성공비결은 알리바이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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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에서는 주부들을 중심으로 불륜을 지칭하는 ‘혼외 연애’란 말이 유행한다.

올해 2월에 ‘매치알람’이라는 인터넷 연애정보업체가 1465명의 20~30대 독신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앙케이트에서도 남성의 39.9%, 여성의 36.2%가 “좋아한다면 (불륜이라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14년 일본 주부층을 사로잡았던 드라마 <메꽃(晝顔)-평일 오후 3시의 연인들>의 방송국 홈페이지에서 실시한 앙케이트 조사결과다. 드라마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는 무려 67%가 “배우자의 불륜을 용서할 수 있다”고 대답했으며, 70%가 “불륜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비슷한 시기에 치러진 주부 대상 잡지인 <후징코론(婦人公論)>의 독자 앙케이트에서도 “바람을 핀 경험이 있다”는 주부가 65.5%이며, 이들 중 70% 이상이 “바람을 피운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반면 바람을 핀 경험이 있는 남성의 80%는 죄책감을 느낀다고 대답,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편집장인 미키 테츠오 씨는 “아내 측은 대부분 죄의식이 없었다. 아내들의 입장에서 보면 남편의 바람기는 더럽지만, 자신의 경우는 어쩔 수 없는 ‘순애’이며 비극의 여주인공이 된 듯한 감각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륜하면 기혼남성과 미혼여성의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일본에서는 기혼자들끼리의 불륜이 압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주부들을 중심으로 불륜을 지칭하는 ‘혼외연애’라고 하는 신조어가 유행한다. 논픽션 작가인 가메야마 사나에에 따르면 혼외연애란, 어감이 좋지 않은 ‘더블불륜(W不倫=기혼남과 기혼녀의 불륜)’을 대체하기 위해 매스컴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혼외연애의 당사자들은 자신이 ‘불륜’이 아니라 배우자 이외의 상대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남녀 문제를 전문분야로 삼고 있는 가메야마는 15년간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정리한 저서 <혼외연애>에서 일본 주부들의 적나라한 혼외연애 실태를 밝혔다.

우선 혼외연애에 빠지는 연령층은 40대 전반이 가장 많다고 한다.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해서 손이 덜 가게 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등 집 밖에서의 활동이 늘어나는 나이다. 신체적으로는 폐경기 전조증상이 나타나면서 노화에 대한 두려움과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시기이기도 하다. 만남의 기회와 장소로는 직장(상사 혹은 동료), 문화센터, SNS, 동창회, 같은 동네 등이 많다고 한다. 특히 같은 동네처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 만남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오히려 발각되기 어렵다. 언제든지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감정을 키워나가기에 유리하다고 한다.

혼외연애에 빠진 주부들은 알리바이 공작을 위해 친구나 친정엄마, 여동생 등 적어도 한 명에게는 모든 것을 솔직히 고백해놓는다고 한다. 여러 명의 동네 친구가 ‘연애상조회’를 만들어 서로 알리바이를 만들어주고 혼외연애에서 발생하는 트러블 등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케이스도 있다. 더구나 여성은 남성에 비해 용의주도한 거짓말이 능숙하기 때문에 남편들이 눈치 채는 것이 쉽지 않다. 평소 아내에 대한 무관심과 ‘내 아내는 당연히 아니다’라고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 역시 아내의 불륜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미키 편집장은 그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아내가 46.3%인데 비해 남편은 겨우 5.5%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거의 대부분의 남편이 아내의 바람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의 바람은 금방 탄로나지만 아내의 바람은 필사적으로 숨기기 때문에 눈치 채기 쉽지 않다. ‘사실 우리 아이는 남편의 아이가 아니다’라는 독자 투고는 옛날부터 존재했지만, 요즘엔 섹스리스 부부도 많고, 더욱이 여성이 자신의 욕망에 대해 긍정적인 경향이 강해지면서 이전보다도 남편 이외의 남성과 섹스 하는 주부가 늘어나고 있다. 부부 사이가 좋은데도 바람을 피우는 아내도 적지 않다.”


l 배우자의 불륜상대에게 민사소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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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간통죄 폐지 의견을 낸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간통죄 폐지 이후 상간녀나 상간남에 대한 민사상의 위자료 청구소송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 사회로 눈을 돌려보자. 지난해 2월 26일 헌법재판소는 간통을 저지른 당사자들에게 2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하는 형법 241조에 대해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유로 위헌판결을 내렸다. 1953년 대한민국 형법 제정 후 62년간 존속됐던 ‘간통죄’가 폐지된 순간이다. 당시 간통죄 폐지에 대한 국민정서는 반대 의견이 훨씬 우세했으며 간통죄가 폐지되면 불륜이 성행하고 이혼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로부터 1년 우리 사회는 불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우선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간통죄 폐지로 이혼소송이 늘어나는 일은 없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5년에 접수된 이혼 소송은 3만 9372건으로 2014년 4만 1050건보다 오히려 약 4%가 줄었다. 한 법조 관계자는 “예전엔 간통죄로 인한 형사 처벌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민사상 책임만 물을 수 있다. 더구나 정신적인 상처에 비해 위자료 액수가 비현실적으로 낮고 자녀에 대한 친권·양육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배우자에 대한 이혼소송이 줄어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추정했다. 김앤서 부부법률사무소의 김병조 변호사는 “이혼은 소송보다는 협의나 합의로 가는 경향이 있는 반면, 상간녀(간통 상대녀)나 상간남(간통 상대남)에 대한 민사상의 위자료 청구소송이 많이 늘어났다.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상간자들이 반성은커녕 오히려 뻔뻔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에 (불륜) 피해자들은 배우자보다 상간 상대가 더 밉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 위치한 S 나이트클럽은 30~40대 전용의 성인나이트클럽이다. 테이블 당 기본요금이 20만~30만원으로 룸살롱보다 저렴하고 ‘즉석만남’의 메카로 소문이 자자해서 특히 중년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매일 밤 수백 명의 남녀가 새로운 만남을 꿈꾸며 이곳을 찾는다. 대기업 부장인 A씨(52)는 이곳에서 31세의 대학 강사 B씨와 즉석만남을 가진 후 당일 밤부터 연애(?)를 시작했다. 두세 달에 한 번씩은 신상 백이며 구두를 안겨줘야 하고 가끔 용돈도 쥐어줘야 하지만 젊고 섹스에 적극적인 그녀 덕분에 자신 역시 청춘으로 돌아간 듯한 희열까지 느꼈다.

그러나 사귄 지 반년쯤 접어들자 B씨가 아내와의 이혼을 요구해오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으로 두 사람의 적나라한 사진을 보내오는 등 A씨를 압박해왔다. A씨는 당황했다. 가정을 깨는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점 집요하게 이혼을 재촉하는 B씨가 두려워진 A씨는 조심스럽게 이별 이야기를 꺼냈고 분노한 그녀는 A씨의 아내를 찾아가 두 사람의 관계를 폭로했다. 그런데 A씨의 아내는 A씨와의 이혼소송 대신 B씨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에 들어갔다.


l 명예훼손 휘말리면 불륜 피해자가 가해자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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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도 대담해졌다. 남편의 바람기에 눈물짓던 아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젠 맞바람에 선수치기 바람까지 일삼는다. 2003년 개봉돼 화제가 됐던 영화 <바람난 가족>의 한 장면.

대법원 판례 검색에서 확인되는 불륜 상대방에 대한 위자료 청구소송은 간통죄 폐지 이전에는 매월 10건 미만이었지만, 2015년 봄부터 점차로 늘어나 11월부터는 매달 30~40건이나 된다. 자녀문제와 경제적인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이혼 소송을 꺼리는 불륜 피해자들이 배우자가 아닌 불륜 상대를 상대로 정신적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배우자의 불륜 상대에게 민사적으로 위자료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1000만원~ 3000만원까지 위자료로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실제 법원이 인정한 위자로 액수는 1000만∼1500만원 선이다. 간통죄 폐지 이전에는 상당한 합의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만족할 만한 보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불륜 상대방의 신상을 털어 인터넷이나 SNS 등에 공개해 망신을 주는 방법으로 복수를 꾀하려는 불륜 피해자들도 늘고 있다. 지난 3월 한 증권사의 사내불륜이 해당 기업을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회사 과장과 여직원이 불륜관계인 것을 확인한 여직원의 남편이 아내의 휴대폰에 등록된 모든 연락처에 불륜 사실을 문자로 알리고 두 사람의 불륜증거인 카카오톡 내용을 함께 전송한 것이다. 그는 또 직장 게시판을 통해 “불륜으로 인해 청렴결백한 직장 이미지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으니 처벌을 부탁한다”며 자신의 아내와 상간남의 해고를 주장했다. 현재 당사자들은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그들의 신상과 대화내용은 아직도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가고 있다.

얼마 전에도 모 대기업 직원의 아내가 사원들이 공유하는 단체 카톡방에 남편과 동료 여사원의 불륜을 고발하면서 상대여성에 대한 신상을 공개해서 외부까지 퍼져 나간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공개적인 복수는 자칫 명예훼손에 휘말려 오히려 불륜 피해자가 가해자로 전락할 수 있다. 실제로 2014년 8월 서울중앙지법은 남편과 회사 동료와의 불륜관계를 사내에 폭로한 여성에게 명예훼손 유죄판결을 내려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판례도 존재한다.

김병조 변호사는 “명예훼손행위와 더불어 배우자의 비밀번호를 취득해서 동의 없이 핸드폰의 잠금장치를 풀어서 메일이나 SNS 등을 열어보고 증거를 확보하려 하는 것 역시 형법상 ‘비밀침해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형법상 비밀침해죄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당사자 간의 대화나 문자 등은 증거로 인정될 수 있으니 불륜이 의심되는 경우는 착실하게 이런 증거들을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간통죄 폐지 이후 불륜 피해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 등에 비해 가정파탄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대가가 지나치게 가볍게 평가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해인법률사무소의 배금자 대표변호사는 “당초 헌법재판소에서 간통죄를 폐지할 때 형사처벌이 없어져도 간통행위는 이혼소송에서 위자료를 산정하거나 양육권 친권자 결정에 반영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위자료가 올라가지 않았고 양육권이나 친권자 결정에서 간통행위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판사들이 매기는 위자료 수준이 일반적으로 너무 낮기 때문에 피해자에게는 보상적인 효과도 없고 가해자는 오히려 웃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배 변호사는 “적어도 가정을 깬 유책 배우자에 대한 위자료는 징벌적 배상제도를 법제화해서 강제하지 않고는 위자료 금액이 올라갈 것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병조 변호사 역시 “현재 서울지방법원에서는 최고 5000만원까지 위자료를 받을 수 있지만 이는 배우자와 상간자의 연대보상이다. 불륜으로 인해 큰 상처를 받은 입장에서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 액수”라며 “보상액수가 적어도 1억원까지 올라가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서울신문>이 2015년 9월 전국의 기혼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혼남성의 39.9%, 기혼여성의 10.8%가 외도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신문이 종합한 외도 경험이 있는 남녀의 특징을 살펴보면 남성의 경우는 50대, 월급 700만원 이상, 직업은 관리경영직, 자녀는 3명 이상이 가장 많았다. 여성의 경우는 40대와 50대, 월급은 100만원 이상~300만원 이하, 서비스 혹은 판매직에 종사하며 자녀는 2명이 가장 많았다. 외도 상대를 만난 곳은 나이트클럽과 인터넷 사이트가 가장 많았으며 배우자와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한 경우가 절대적으로 높았다. 한편 간통죄 폐지에 대한 의견으로는 기혼 남성의 38.8%, 기혼 여성의 57.8%가 간통죄 부활을 주장했다.(서울신문 2015년 9월 14일 기사)


l 빈말이라도 좋으니 상대의 외모 칭찬해야


정신과 병원과 법원에서 오랫동안 부부 문제를 상담해온 곽소현 경기대학교 교수는 중년층에서 외도가 많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중년 여성들은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면서 엄마에서 여성으로 다시 돌아오지만 남편이 더 이상 자신을 여성으로 대해주지 않는 듯한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낀다. 일에 몰두하던 남성들도 중년이 되면서 직장과 가정에서 정서적인 연대가 약화되는 듯한 두려움을 많이 느끼게 된다. 이러한 중년의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상대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의지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저서 <사랑의 기원>에서 현대인의 사랑과 결혼, 불륜에 대해 심리적인 분석을 꾀했던 곽 교수는 불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혼자들의 책임의식을 강조했다. 그는 “불륜에 빠지기 않기 위해서는 사랑은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 다른 형태로 변화되며 신혼의 사랑과 중년의 사랑, 노년의 사랑은 다르다는 점을 받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또한 “불륜이 두 사람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고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아내는 누나의 심정으로 남편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남편은 아내의 노력과 희생에 대한 감사와 아내의 여성성을 칭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름답다거나 사랑스럽다 등의 말을 싫어하는 여성은 없다. 빈말이라도 아내의 외모를 자주 칭찬해주는 것이 좋다”는 지혜를 그는 제안한다.

- 김경철 일본 고단샤(講談社) 서울통신원(뉴스 잡지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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