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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축구와 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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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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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중국의 ‘축구굴기 35개년 계획’이 일전에 발표됐다. 선수 5000만 명을 양성해 2050년에 세계 최강 대열에 진입한다는 목표다. 일개 스포츠 종목 육성에도 35년 앞을 보다니 역시 중국은 중국이다. 35년이라면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일어서는 데 걸린 시간과 맞먹는다. 이 목표는 과연 실현 가능할까. 입 있는 사람들은 술잔을 들이키며, 손 있는 사람들은 자판을 두들기며 갑론을박을 펼쳤다. 그중 한 신문 만평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만평 속의 축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선수들 다 사오면 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 프로축구의 상위권 팀들은 스페인이나 잉글랜드 리그에서 뛰던 선수들이 즐비한 호화군단이다. 그 덕에 아시아 지역 클럽대항전인 챔피언스리그는 광저우 헝다가 2013년과 2015년 이미 평정했다.

필자가 보기엔 지금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앙정부의 방침이 떨어지자 중국의 스카우터(중국 기업)들은 거액의 이적료(가격)를 제시하며 점 찍어 둔 외국인 선수(해외 기업)들을 데려오고 있다. 중국은 올 1분기 글로벌 M&A 실적 1위를 기록했다. 430억 달러(약 50조원)에 사들인 세계 최대의 종자(種子)기업 신젠타 등 업계를 놀라게 한 일이 수두룩하다.

중국은 왜 M&A에 공을 들이는 것일까. 이 역시 축구에 답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해외 지도자와 스타 선수를 영입해 함께 땀 흘리고 뒹굴며 기량을 익히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아직 기반이 취약한 반도체 메모리 분야의 기업 사냥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나섰다. 기술뿐만 아니라 M&A가 성사되면 브랜드와 시장까지 딸려온다. 스타 플레이어를 모셔오면 팬들이 따라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레노보가 IBM 등 7건의 M&A로 노트북 매출 글로벌 1위가 됐다.

물론 스카우트만 한다고 우승컵이 저절로 따라오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M&A는 국내 기술 기반을 다지고 부단하게 혁신 노력을 하는 전제 위에서 효과가 배가된다. 중국 제조업은 축구보다 10년 앞선 2025년에 독일·일본과 어깨를 겨룬다는 목표인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미 앞서가는 분야도 나타났다. 창안자동차가 개발한 전기자동차는 운전자 없이 자율주행만으로 고속도로 2000㎞를 달려 내륙도시 충칭(重慶)에서 베이징 모터쇼 행사장에 도착했다. 국내 업계 관계자는 “설령 우리가 그런 자동차를 개발했더라도 도로교통법에 규정이 없다는 등 각종 규제 때문에 그런 실험은 엄두도 못 낸다. 중국은 이번에 아주 풍부한 데이터를 축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쯤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중국 축구가 세계 강국은커녕 한국 축구를 따라오겠어?”라고 자신할 때가 아니다. 축구에서의 자신감은 실전에서도 플러스 요인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자만하고 한눈 팔다간 큰코 다치기 쉬운 게 기술 개발이요, 기업 경영이다.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