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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망한 대우조선 보고도 또 낙하산 내려보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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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우리의 조선·해운업은 엄청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조선업 구조조정만으로도 2만여 명의 실직자가 발생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물론 세계 경제 불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기업의 방만한 운영 탓이 크지만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도 관리에 소홀했던 정부와 국책은행의 책임도 막중하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7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사실상 공기업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5조원대 적자를 숨겨 오다 부채비율이 7300%를 넘어선 부실 덩어리로 전락해 생존 자체가 불투명하다.

대우조선의 대주주는 산업은행이다. 그런데 산은은 회장이 임명될 때마다 ‘낙하산’ 시비에 휩싸인다. 전임 홍기택 회장에 이어 올 2월 취임한 이동걸 회장도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었다. 대구 출신으로 박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던 영남대를 졸업했는데,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 후보 지지 선언으로 늘 ‘TK 낙하산’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산은의 낙하산 전통은 자회사에도 전파된다. 지분 5% 이상을 투자한 370여 자회사에 정치권 인사와 은행 출신을 포진시켰다. 망해 가는 대우조선에도 퇴직 간부들이 고액의 연봉이 달린 낙하산을 타고 내려앉았다니 기업이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낙하산의 적폐가 암덩어리가 된 꼴이다.

그런데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또 도졌다. 4·13 총선 이후 ‘정피아(정치권 마피아)’들이 공공기업·기관에 내리꽂히는 공습이 시작된 것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연말까지 임기가 끝나는 공공기관장은 81명이다. 여기에 감사·고문 자리 등을 합하면 200개 가까이 된다고 한다. 낙하산 투하는 현란하다. 전문성과 업무 관련성은 물론 도덕성과도 무관해 보인다. 한국전력 상임감사에는 세월호 부실수사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성한 전 경찰청장이 선임됐고, 비상임 감사에는 총선 낙선자인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이 재선임됐다. 두 사람의 이력과 한전과의 업무 연관성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게다가 호화 해외 출장으로 사임한 방석호 아리랑TV 전 사장 후임에 김구철 아리랑TV 상임고문 내정설까지 나돈다. 그는 『여풍당당 박근혜』라는 책을 집필한 ‘친박’ 인사다. 이처럼 공기업 임원 자리를 정피아들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구태에 국민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국민의당이 어제 19대 마지막 임시회에서 낙하산 금지법을 통과시키자고 주장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국회의원·당협위원장·공천 신청자 등의 공공기관 임원 임명을 금지하자는 것이다. 퇴직 공직자의 3년 내 민간기업 취업을 제한하는 관피아법이 시행 중인 만큼 실효성을 검토해 볼 만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의 의지다. 낙하산 인사를 뿌리뽑겠다고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정파·친소를 가리지 말고 전문성·능력·도덕성만 보는 대승적 발탁으로 공공개혁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대우조선 사태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