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부모 간호 위해 일과 결혼도 포기한 효녀…김숙현씨 대통령 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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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병든 부모를 20년 넘게 돌본 효녀가 있다. 6일 울산 종하체육관에서 열리는 ‘제44회 어버이날 기념행사’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김숙현(59)씨가 그 주인공이다.

김씨는 서울 상명여고와 영국 크로이던 대학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젊은 시절 통역 일을 했다. 주로 외국 출장을 가는 국내 기업인과 동행하며 통역과 비서 역할을 했다. 틈틈이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일자리를 구해 몇 개월씩 머물기도 했다.

그러던 중 38세가 되던 1994년 김씨의 인생에 큰 파도가 몰려왔다. 신부전증을 앓던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돼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뒤 김씨는 자신이 누리던 삶을 미련 없이 포기했다. 김씨는 “2남 1녀로 오빠와 남동생이 있었지만 부모님을 모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래서 내가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모셔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후 김씨는 그동안 모은 돈 등으로 경기도 안성의 한 호숫가 옆에 부모님과 함께 살 집을 지었다. 의사가 “지금은 공기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라고 해서다. 김씨는 통역 대신 번역 일 등을 하며 근근이 생활비를 벌기도 했다. 다행히 어머니의 병세도 크게 호전돼 마음의 근심도 조금 덜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겼다. 전립선암이 발병해 거동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 친척의 보증을 섰다가 돈을 떼여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

결국 김씨는 10년간 살던 안성의 집을 팔고 부모님을 모시고 지인이 병원을 운영하는 충북 진천으로 갔다. 그러나 아버지의 치료비 등 병원비가 문제였다. 결국, 김씨는 진천의 한 플라스틱 용기 제조공장에 입사해 생산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혼자 번 돈으로 부모님의 치료비와 약값, 생활비를 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2013년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에 있는 조카의 집 근처로 또 이사를 했다. 이곳에서는 펜션과 모텔의 청소 일을 파트타임으로 하면서 병원비 등을 마련했다. 김씨는 “영어회화가 능통해 비교적 처우가 괜찮은 기업에 취업할 기회가 있었지만 몸이 편찮은 부모님 곁을 오랜 시간 비울 수가 없어 이 같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극진한 간호에도 아버지는 지난 2월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마지막 소원이 있다. 홀로 남은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김씨는 “어머니가 최근 외출을 했다가 낙상 사고를 당해 너무 속상하다”며 “어머니가 아프지 않고 오래 함께 사셨으면 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라고 말했다.

울산=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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