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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 구조조정 A to Z “이르면 다음 주 현대상선 용선료 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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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에 S.O.S를 보낸 한진해운 [중앙DB]

S.O.S.

선박이나 항공기가 조난이나 항로 이탈 등 위기 상황일 때 구조를 요청하는 메시지입니다. 지난달 22일 한진해운은 정부와 채권단에 S.O.S.를 타전했습니다. 장기간의 해운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한 겁니다. 지난 수요일(4일) 채권단이 조건부 자율협약을 가결하기까지 해운업계는 정말이지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중앙일보를 비롯한 주요 일간지 1면은 해운업 얘기로 가득했죠. 숨 가쁘게 달려온 해운업 구조조정은 어디까지 왔을까요. 그리고 앞으로 남은 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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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더 급박한 상황이 전개될 현대상선 [중앙DB]

해운업을 비롯한 주요 업종 구조조정 이야기는 그 전부터 솔솔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중앙일보도 지난달 18일자로 조선·철강·해운 등 위기론이 거론되는 업종의 구조조정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죠.


▶관련기사 MB 때부터 미룬 구조조정 … 옥포조선 수주 1척, 동부제철 스톱



자율협약을 신청한 한진해운이 어떤 과정을 겪을지는 현대상선 선례를 보면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현대그룹은 이미 지난 2013년 12월 22일 3조3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후 2년여 기간 동안 현대부산신항만이나 현대증권, 해외 자회사인 로열탱커 등을 차근차근 매각했죠. 계열사 매각과 더불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매각하고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발행하는 등 닥치는 대로 유동성을 확보했다고 보면 됩니다.

더불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200억원, 그의 모친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 100억원 규모의 사재를 내놨습니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는 감자도 결정했고요. 보통주 2억2950만주를 3280만주로, 우선주 1300만주를 180만주로 7대 1 병합하는 내용입니다. 주식 병합을 통해 자본금도 크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현대상선은 올해 2월 2일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했고,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3월 29일 자율협약을 승인했습니다. 정리하면, 채권단이 자율협약을 승인하기 까지 현대상선은 ▶오너 사재출연, ▶자산매각, ▶감자 등 크게 3가지 사안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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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책임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전 한진해운 회장) [사진=이코노미스트]

이런 전례를 볼 때 한진해운도 상기 3가지 사안이 관건입니다. 한진해운은 이미 지난달 25일 4112억원 규모의 터미널, 사옥 유동화 등 자산 매각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추가로 360억원 가량을 절감할 수 있는 비상경영안도 내놓았고요.

하지만 채권단은 한진해운 부채비율을 축소하기 위해 추가로 자산 매각도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스페인 알헤시라스 터미널, 부산신항만터미널, 평택컨테이너너미널 등 알짜 자산은 어느 정도 매각해 팔 자산이 많지 않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도 벌크선사업부문, 컨테이너 전용터미널, 물류센터 정도는 매각 가능한 자산으로 꼽힙니다.

더불어 채권단은 주식 투자자들의 희생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을 신청한 25일 한진해운 주가가 하한가를 친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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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를 통해 조단위 자금을 지원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왼쪽)과 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사진=이코노미스트]

다만 오너 일가가 사재를 출연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조단위 부채가 쌓인 상황에서 오너 일가가 수십~수백억원을 내놓는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죠. 그래도 채권단은 ‘상징적인’ 의미로 어느 정도의 출혈은 요구할 듯합니다. 박은경 삼성증권 책임연구위원은 “채권단 입장에서는 300억원 이상을 한진해운 오너 일가에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문제는 ‘얼마’가 아니라 ‘누구에게’ 받느냐입니다. 박 책임연구위원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그간 계열사를 통해 한진해운에 2조1000억원 가량을 쏟아 부어 ‘할 만큼 했다’는 입장이고, 경영 위기에 직접적인 책임론이 거론되는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은 법적으로 완전히 갈라선 회사에 사채를 출연할 의무가 없다”며 채권단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예상했습니다.


▶관련기사 현정은 300억 내놨는데 … 조양호엔 “더 강한 자구책을”



그렇다면 앞으로 벌어질 일은 무엇일까요. 크게 보면 ▶용선료 협상과 ▶사채권자 채무조정 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대상선은 22개 선주들과 용선료를 협상해 상당한 진전을 보인 것으로 알려집니다. 금융당국은 이달 20일까지 인하 협상을 도출해내지 못할 경우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현대상선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협상 중인 듯합니다.

그래도 현대상선은 수개월 동안 용선료를 협상했지만, 한진해운은 더 시간이 촉박합니다. 아직 해외 선주들과 협상을 시작하지도 않은데다, 현대상선에 비해 용선 규모도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해 한진해운이 보유한 151척의 배중 용선한 배는 총 91척으로, 1조146억원의 용선료를 지불했습니다.

더불어 사채권자 채무 조정도 난관입니다. 현대상선은 6월 사채권자들과 채무조정협상을 앞두고 있습니다. 한진해운도 6월 1900억원 공모 사채 만기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1조1000억원어치 공·사모 채권을 막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회사채 유예를 위한 사채권자 집회는 오는 19일 열립니다. 모두 쉽지 않은 난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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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기 맞은 세계 해운 동맹 [중앙DB]

양사가 모두 순조롭게 채무구조를 개선하더라도 해운동맹(얼라이언스)에 편입되지 못하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컨테이너 선사는 세계적으로 글로벌 체인을 구축해 화물을 운반하기 때문이죠. 개별 기업이 전 세계 항구에 취항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요 해운사들은 해운동맹(얼라이언스)을 구축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빠지게 되는 순간 지역 선사로 전락해버립니다. 해운동맹 편입 여부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생사를 쥐고 있다는 말이죠.


▶관련기사 한국, 빅2 해운동맹 못 낄 위기 … “재무구조 개선 급하다”



현재 세계 해운동맹은 덴마크 머스크와 이탈리아·스위스 합작 MSC가 결성한 ‘2M’을 비롯해 프랑스 CMA-CGM을 중심으로 한 ‘O3’, 한진해운이 포함된 ‘CKYHE’, 현대상선이 포함된 ‘G6’ 등 4대 동맹 체제입니다. 주요 원양 항로의 99%를 이 4대 동맹이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CMA-CGM과 중국 코스코(COSCO), 대만 에버그린, 홍콩 OOCL 등 4개 해운사가 기존 동맹에서 탈퇴하면서 기존 구도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내년 4월 ‘오션 얼라이언스’란 새로운 해운동맹을 출범합니다. 이렇게 되면 해운 업계는 덴마크·스위스의 2M과 프랑스·중화권 중심의 오션 얼라이언스로 재편됩니다. 향후 발주량까지 고려하면 TEU(1TEU: 20피트 컨테이너 1대) 기준 2M은 33.6%, 오션 얼라이언스는 37%를 점유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양대 해운 동맹에 끼지 못했다는 겁니다. G6 동맹에서 2개사가 빠진 G4 체제가 되면, 시장점유율이 11.5%로 쪼그라듭니다. CKYHE 동맹은 비중이 가장 큰 2개사가 빠지면서 사실상 동맹 해체 상황이고요. 때문에 남은 해운사들이 제3의 해운동맹을 구성한다는둥, G4에 일부 선사가 편입된다는 둥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관련기사 [위기의 국내 해운업 어디로 가나] 6월 안에 한진해운·현대상선 항로 결판



거센 파고에 부닥친 우리나라 해운업은 어디로 갈까요. 감히 소견을 말씀드리자면, SK하이닉스 구조조정 사례처럼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제가 쓴 칼럼입니다.


▶관련기사 [현장에서] 2조 적자서 5조 흑자…SK하이닉스 구조조정 배워라



지난 40년간 100여 개 나라에 물류 거점을 구축해 놓은 국가적 전략 산업이 해운업인 만큼, 보다 대계(大計)를 보고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소견입니다. LNG선·벌크전용선·신항만 등 핵심 자산 매각은 피하고, 경쟁력 있는 신형 선박을 도입하자는 거죠. 그래야 치킨 게임 이후를 대비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전제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용선료 협상을 성공적으로 유도하고 사채권자 채무를 조정하는 일입니다. 현대상선은 사채권자 집회를 이달 말에서 늦어도 다음달 초에 개최합니다. 빠르면 다음 주 사채권자 집회 일정을 공고할 예정입니다. 용선료 협상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달 10일~20일 사이에 용선료 협상이 마무리되는데요, 역시 이르면 다음 주 협상 결과가 흘러나올 수도 있습니다. 연휴 이전 화제가 한진해운이었다면, 연후 이후에는 현대상선이 화제를 모을 전망입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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